식이 타임(時記time), 나를 쓰게 만든 당신
어느 날 후배가 '가입하면 한 달 동안 무료래!'라며 '밀리의 서재'라는 앱을 소개해줬다. '책은 종이지!'라는 고지식한 철학을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가입화면에 있는 '필명'이라는 글자가 나를 설레게 했다.
필명.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
할아버지의 유산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는 내게 매일 일기를 쓰게 하셨다.(물론, 학교 숙제이기도 했지만) 초저녁에 잠이 든 날에도 어김없이 나를 깨우셨다. 덕분에 눈물을 적시며 쓴 일기가 꽤나 있다. 한 편의 일기를 작성하면 할아버지는 짤막한 감상평을 전해주시곤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앞으로는 이렇게 쓰면 더 좋을 것 같다.'라는 내용이었다. 귀찮을법한 일을 몇 년 동안이나 해주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노력 덕분일까?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음은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쏠쏠한 유산이 되었다. 연애편지를 쓸 때, 복잡한 청춘시절의 마음을 정리할 때에도.
고마운 사람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 사람들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도덕 선생님(1년 동안은 나의 담임선생님)은 교과서를 던지고 흥미로운 주제로 수업을 하셨다. 우연히 선생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고 시시때때로 들어가 염탐하곤 했다. 주제는 일상적인 것 부터 '결혼관', '시사적인 주제', 심지어 청춘남녀의 '원나잇에 대한 생각.'까지 넓은 범위를 넘나들었다. 덕분에 나도 블로그에 관심있는 주제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인연을 이어오던 은사님과 성인이 되어 만났다. 은사님은 "이거 네 거야." 라며 주성록(당시 1주일에 1번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주제로 쓰던 일기)을 주셨다.
"성인이 되고 주면 의미 있을것 같아서 가지고 있었어,
글도 잘 썼고."
'글도 잘 썼고.' 큰 울림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긴 주성록을 다시 펼쳐보았다. '나를 태우지 않고 떠나간 버스아저씨가 미웠던 이야기.' '야구하다가 친구랑 싸웠던 이야기.' '광우병 소에 대한 의견.' 등 유치해서 오그라들기도 했지만 솔직한 글이었다.
은사님은 몇 년 뒤 책을 출간했다. 블로그에서도 느껴졌던 솔직함이 책을 출간한 후기에서 느껴졌다.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글이었다. 책을 읽으며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도 책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훗날.'
마음이 뜨거운 사람
이런 나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자극해준 선배가 있다. 요즘 들어 마주치는 일이 잦아진 선배. 기자였던 선배는 현재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는데 바쁜 삶이지만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으로.) '사무직에 종사하기 때문에 그저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는 삶이 아닐까.' 섣부르게 판단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만큼 선배는 앞으로의 꿈을 희망차게 말했다. 꿈은 현실로 만들어가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안에 있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영국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퍼거슨 감독 경기에는 큰 특징이 있다. 90분이 흐르고 추가시간이 주어진 상황, 퍼거슨 감독은 짧은 추가시간 동안 극적인 승리나 무승부를 만들어내는 명장이었다. 사람들은 그 기가막힌 시간을 '퍼기타임'이라고 불렀다. 짧지만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시간. 나의 이름 끝글자 '식'을 인용해서 '식이타임'으로 명명(사실은 축구게임에서 만든 닉네임이지만).
찰나의 순간,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래서 '막막함.', '따분함.'이 지배한 마음을 '행복함.','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쓰고 싶은 나의 일상 속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채워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