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에 오줌을 싸버렸다

창피함이 추억으로

by 식이타임

나름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아마 그랬을 거다. 혼나는 걸 싫어했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크한 듯 따뜻했던 담임선생님이 좋았다. 그랬던 내가 큰 시련을 겪은 건 국어 교과서를 두고 온 날이었다. 하필 나를 제외하고도 교과서를 안 가져온 친구들이 많았고 화가 나신 선생님은 교과서 없는 사람은 교실 뒤로 나가라고 하셨다.


이럴수가 나가자마자 오줌이 마려웠다. 안 그래도 혼나고 있는데 화장실 간다고 하면 더 화내시겠지? 주먹을 꽉 쥐며 참았다. 남은 수업시간은 30분. 나는 반에서 키가 네 번째로 작았고 방광도 네 번째로 작았을 게 분명하다. 인생 최대의 팽창 범위를 기록한 방광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말 그대로 지려버렸다. 하필이면 그날은 오줌까지 노랬다.


노란 물이 교실바닥을 적셔가자 옆에 서 있던 녀석이 선생님에게 일러바쳤다.

"선생님!!! 00이 오줌 쌌어요."


선생님은 급하게 자신의 체육복 바지를 빌려주셨고 나는 자전거 페달에 부끄러운 마음을 힘껏 실어 집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왜 왔냐."라고 질문하는 엄마한테는 놀다가 바지가 젖어버렸다고 대충 둘러댔다.


"어떻게 다시 들어가지.."


교실 문 앞을 서성였다. 바지에 오줌 싼 놈이라고 놀림당할까 봐 걱정됐다. 유치원 시절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서 이불에 싼 적은 있지만 4학년 씩이나 된 이상 창피함을 면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뒷문을 여는 순간 교실은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평온한 분위기였다. 그 누구도 나를 놀리지 않았으며 교실 바닥도 깨끗했다. 궁금한 마음이 들어 집에 가는 길 친구에게 물어봤다.


"뭐라고 했길래 아무도 날 안 놀렸어?"

"선생님이 싼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어. 화장실에 안 보내준 선생님 잘못이니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됐고 화장실은 미리미리 잘 간다. 살다 보니 바지에 오줌을 싼 것보다 더 숨고 싶은 일들을 만나기도 했다. 조금 슬픈 사실은 이젠 내가 싼 오줌 대신 쌌다고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네가 싼 똥 네가 치우고 내가 싼 똥 내가 치워야 하는 게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어디라도 숨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날이 생각난다. 시간이 흐르니 창피했던 기억도 추억으로 남았다. 지금은 바지에 오줌 싸 봤던 경험에게 감사. 놀림받지 않게 지켜준 선생님에게 감사. 내가 싼 거 내가 치우려고 애쓰는 나에게도 감사하다.


종종, 창피한 일을 마주하는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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