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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식 Feb 14. 2023

힘들면 그만둬도 돼.

회사를 그만둔지 만 9개월이 지났다.


작년 10월말쯤 몸이 많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일상생활을 할수 없는 지경에 이른것을 깨닫고 회사를 정리하였다.


7년가까이 다녔던 회사였는데 작년초부터 몸도 마음도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굴뜩같았지만, 여러 상황에 밀리며 결국 몸이 다 망가져서야 떠밀리듯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몸이 아파서 회사를 그만뒀지만 전부터 쉬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기에 속으로는 내심 기뻤다. 몸이 많이 아프긴했지만, 이제 쉬면서 못해본 것도 하고 실컷 놀수 있겠다 싶었고, 반년정도 쉬면서 놀다보면 몸도 낫고 여행도 다닐수 있겠지 싶었었는데..  근데 착각, 큰 착각이었다. 


회사를 그만둔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동안 얼마나 몸도 마음도 망가져 있었는지 그때까지도 몰랐던거다. 


쉬면서 몸이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댐이 억지로 견디다가 결국 물의 무게에 무너져내리듯, 몸도 마음도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이게 아닌데...


견디기 힘들정도로 많이 아프긴했지만 조금 쉬면 곧 돌아올꺼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곤죽이 된것만 같았다. 탈진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로 바닥으로 꺼지고 있었다.   


나 스스로 내상태를 인식하고 대처하는데에만 몇개월이 걸린거같다. 재작년 봄쯤,  위장 문제와 여러 증상들로 비슷한 상황을 거쳐온 터라 이번에 훨씬 더 아프긴하지만 조금더 고생하면 나을꺼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실상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심각하게 흘러갔는데도 나스스로조차 쉽게 생각했던것 같다.


몸은 날이 갈수록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고 음식을 거의 섭취할수가 없었고 엄마말고는 누구도 만날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여러가지의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지 처음으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문병 온 친한 친구를 맞이하는것조차 몸은 스트레스로 느끼고 반응했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하던 모든 일들에 몸은 스트레스이고 부담이라고 표시를 하며 온몸으로 증상들을 드러내기에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보았지만 많은 검사에도 정확한 병명조차 없는 상황이고 약은 이미 듣지않은지가 오래되었을 뿐더러, 위가 극도로 약해져서 약조차 소화시킬수없는 상황이라 어떤 약도 먹을수가 없었다.  더욱이 주변에 내상태나 병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 너무나 막막하고 두려웠다. 위가 아무리 안좋다해도 한달에 6kg이 빠진다는건 들어보지도 못했고 초기에 심하게 아플때는 하루밤사이 1kg이 빠졌었다.


사람이 자는것도 영양소가 있어야한다는걸 그때 느꼈다. 미음도 먹을수 없는 날에는 배고프다는 말로는 담을수 없는, 견디기 고통스러운 허기가 온몸을 휘감고 밤새 한숨도 잘수가 없었는데, 뭐라고 설명할수없는 통증이 밀려오고 그렇게 밤을 보내고나면 여지없이 몸무게가 빠져있었다. 다이어트할때는 그렇게도 안빠지던 1kg이 어찌 그렇게 쉽게 빠지는지 지금도 알수가 없다. 


 

현재 나는 발병때보다 19kg이 빠진 상태이다.


먹을수있는게 몇가지 안되긴하지만 요즘은 세끼 다 챙겨먹고 가벼운 일상생활도 할정도로 몸이 좋아져서, 살은 빠졌지만 되려 처음보다 컨디션은 낫다. 다만 아직도 위상태가 왔다갔다해서 먹을양만큼 못먹으면 살이 빠진다.


그래서 열심히 챙겨먹는건 내일상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늘 식욕이 왕성하던 나는 평생을 큰키에 한덩치하며 살아왔기에, 10kg정도 빠졌을때까지는 아픈건 싫지만 살빠진건 내심 좋았었다. 갑자기 빠진 살이라 아주 예쁘진 않았지만, 내몸에도 이런 곡선이 존재하는구나 하면서 이옷저옷을 꺼내입어보고 옷걸이가 좋아진 내몸에 만족해할때도 있었다. 근데 20kg 가까이 빠진 지금, 아침마다 몸무게를 재어보며 몸무게가 더는 줄지않기를, 나아서 5kg정도만 살이 찌기를 바란다. 상대적으로 더 말라서 갈비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체를 보며 내인생에 이런 몸을 가지는 날도 있구나 싶다. 

 


아침에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지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특성화고를 나온 아이들이 현장실습생으로 근무하다 자의로 타의로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된 현실에 대해 쓴 에세이집인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나오는 대다수의 사례는 내가 몰랐던 얘기이고 몇가지는 뉴스에서 들었지만 저런일이 있구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얘기였다. 내가 읽었던 부분은 청소년들이 현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에서 노동에 착취당하다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의식하던 의식하지않던 나는 대학을 나왔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저런 비참한 이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자라고 안위하며 무관심하게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고통과 현실에 너무 무관심하게, 방관자로 살고 있는 내모습이 비춰져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책을 읽으며 한부분이 와닿았다.


현장실습생으로 장시간의 노동과 작업장내 폭력에 시달리던 동준군이 어머니께 어려움을 호소하였을때 '세상사는게 원래 그렇게 힘든거다'라고 말했던것이,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아들에게 얘기해주지 못한것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던 동준군 어머니의 말이다.


노동현장에서 자살을 선택할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에 비한다면 내 경우는 사치일수 있수 있지만, 나 역시 야근으로 몸이 아프고 회사서 억울한일로 마음이 무너질때마다 내 자신에게 '다 이렇게 산다. 억울하고 힘들지만 이겨내고 참아야된다'라고 알게 모르게 얘기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프다고 발악을 하는 내 몸과 마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도 아픈거지? 그것도 이렇게 심하게,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리 아파도 내가 맡은 일을, 자리를, 역할을 감당하는게 당연하고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참고 참고 또 참았다.


처음 아픈 몇개월 동안은 이런 생각들이 나를 혼란스럽고 힘들게 한것같다. '왜 아픈거지? 뭘했다고 아픈거지? 그것도 이렇게 심하게?'


지금 돌아보면 내가 내 자신을 몰아붙였던거 같다.


다른 사람의 아픔은 이해해주고 아프면 쉬라고 하면서, 나자신에게는 아파도 어쩔수없어, 난 감당해야해 라며 내몸이, 내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소리를 오랫동안 무시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몸이 무쇠가 아닌데, 심하게 쓰면 병이 나는건데, 나는 그러면 안되는 사람이고 그렇게 안될 사람일 것처럼 생각했던것 같다.

아프면서 생각해보니 내몸이, 내마음이 여러번 신호를 보냈는데 어쩔수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신호를 무시한게 보였다.  



지금 나는 내 몸의 신호에 아주 예민하다.


죽도록 아파보니 싫어도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는 살수없는 몸상태이기 때문에 잘듣고 잘돌보며 살려고 하는데 아직도 밀어붙이던 습관이 나올때도 있다. 이놈의 습관.

내자아는 내몸과 내마음과 하나인데, 마치 폭군처럼 내몸과 내마음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며 그게 옳은 것이란 미명하에 마음대로 끌고다니며 못살게 굴었는가싶다. 물론 내자신의 의지만 아니라 내가 몸 담고 있는 사회와 공동체 분위기, 내가 살아온 상황과 처한 현실등이 '어쩔수없어~'를 더더욱 강화시킨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지금 내자신을 보면 탈선한 기차처럼 느껴진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려왔는데, 겉도 여러곳이 부서지고 기관실에 연료도 떨어져서 움직일수 없는 기차같다. 쉬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 가끔씩 훅훅 올라오지만 아직 내 몸도 마음도 달릴 힘이 없다고 말해서 기다리고 있다.


사실은 찾고 있다. 몸이 고쳐지고 마음에 새로운 연료가 부어지길.

몸도 마음도 이토록 망가지기까지 열심히 달려온 길에서 멈춰 선 지금, 나는 예전에 걸었던 그길로 다시 갈 힘도 없고 다시 가고 싶지도 않은데, 내가 지금 가진 능력으로는 몸이 고쳐져도 지금껏 걸었던 그길밖에 갈 수 없을것 같다. 그래서 달리다가 탈선한 이길이 아니라 진짜 길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꼭 찾고 싶은 그길을 나는 찾고 있다.


내가 멈춰선 게 그길을 찾기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할수있도록 꼭 그 길을 찾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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