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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민 Oct 28. 2024

명랑

#2(241028)


 오늘은 두 가지의 다른 상황에서 발하는 나의 명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명랑은 외부적인 명랑이다. 이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전형적인 놀이를 할 때 튀어나온다. 전형적인 놀이란 남들이 다 하기 때문에 안 하면 아쉬운 시기별 필수 코스들이다. 봄에는 벚꽃놀이, 여름에는 물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 겨울에는 눈싸움 같은 스테디부터 포토 부스에서 '인생네컷' 찍기, 두바이 초콜릿 먹어보기, 인기 있는 릴스 찍기 등의 유행도 포함된다. 이와 같은 크고 작은 유행은 찰나의 유명세에 몰려들어 자신의 개성이 없어진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또 막상 우르르 몰려가 즐기다 보면 남들이 다 하는 데엔 이유가 있구나 싶다. 그 보편적이고 보장된 쾌락에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들뜨고 신이 난다. 결국 중요한 건 안정감 속에서 그 순간 한바탕 웃는 것일까. 그런 웃음들이 나에게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나의 기분을 끌어올려 줄 순 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가장 그리워할 순간이다.

 이런 명랑에서 중요한 건 평화를 유지하는 것, 혹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두는 것이다. 미운 마음 없이 동화되기 위해서는 심적이든 물리적이든 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늘 평화의 이면에는 가려진 폭력이 존재한다. 학창 시절, 내가 즐겁게 놀고 떠들던 순간에는 소외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반대로 내가 소외되는 순간에도 다른 친구들은 명랑한 시간을 보낸다. 무리의 단위로 작동하는 학창 시절에서 개인으로 지내며, 사회 내에서 명랑과 폭력이 공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내가 당사자가 아님에도 소외가 발생하는 사회에서 명랑함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두 번째 명랑함은 내부적인 명랑이다. 이는 혼자 개인적인 놀이를 할 때 튀어나온다. 개인적인 놀이는 남들의 동참을 이끌기 어려운 놀이다. 동전으로 군대를 만들어 싸움을 시뮬레이션하는 전쟁놀이, 연상되는 그림을 무작위로 이어서 그리기, 이불을 모아 만들어진 덩어리를 성으로 삼아 그 안에서의 활동을 상상하는 놀이, 음악을 들으며 눈꺼풀 안쪽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감상하기 등.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일 때 더 몰입되는, 가끔은 혼자 빵 터져 웃게 되는 놀이들이다. 이런 놀이의 즐거움은 공동체의 안전이 아닌 개인을 지킬 작은 여유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또한 나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기분을 차분하게 만든다. 외로움을 이기는 스스로 발하는 명랑함이다.

 내부적인 명랑은 외부적인 명랑에 비해 강도가 약하지만 잘 유실되지 않는다. 폭력에 다가갈수록 명랑함은 멀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형적인 상품과 이벤트는 폭력과 소외의 맥락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나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무지함에도, 사실을 마주할 때 겁이 나 무지 속에 파묻혀 숨고 싶어진다. 이는 오히려 아직 세상을 덜 파악했기에 겁을 내기가 쉬운 것 같다. 사회의 규칙에 익숙해진다면, 지금보다 많이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선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마주하며 무뎌질 수도 있고, 부서지고 재건되어 강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분명한 건, 무지한 나는 더 많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안고 살 것이란 사실이다. 그러니 사실 경험하고 알게 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결국엔 나는 두 가지의 명랑을 하나로 합치고 싶다. 더 큰 단위로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나는 내부적인 명랑을 간직한 사람의 눈을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에 담긴 소중한 것들을 소개할 때, 목소리는 조심스럽지만 눈빛은 무섭게 빛내고 있다. 나는 그런 소중한 것들을 외부적인 명랑처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함께 하되, 폭력과 소외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요즘 가까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런 고민들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느낀다. 겪는 어려움이 다 같진 않더라도 다들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두려워 머뭇거린 사람은 나였고, 그런 나를 이끌어 준 사람들은 나의 친구들이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탄 것도, 점심시간에 몰래 월담한 것도,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난 것도, 비밀을 고백한 것 또한 그러했다. 무서운 만큼 성장했던 기억들처럼, 또다시 눈 감고 저질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당장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고 꾸준히 작업을 해나가는 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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