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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상록2 11화

서브스턴스를 좋아하세요...

Substance of Brahms

by 조융한삶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영화『서브스턴스』는 겉보기에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전자는 삼각관계 속 사랑과 갈등을 섬세한 감성으로 미묘하게 풀어내고, 후자는 젊음에 대한 집착과 늙음에 대한 공포를 신체 변형과 붕괴를 통해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두 작품은 모두 여성 주인공의 욕망과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50년대 프랑스에서 쓰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욕망의 제약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폴은 갈등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선택권을 행사한다. 반면 현대에 제작된 『서브스턴스』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노화에 대한 불안과 미의 압박을 더 과격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두 작품은 인간 내면의 심층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탐험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폴'은 중년의 위기라는 어두운 심연을 헤매고, 『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는 시간이라는 절대적 심판관 앞에서 몸부림치는 영혼의 초상화를 그려낸다. 두 작품은 장르적 차이를 넘어, 인간 내면의 보편적 주제—욕망, 결핍, 그리고 자기 이해—에서 깊이 교차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욕망의 불꽃이 내면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모습을 담아냈다면, 『서브스턴스』는 그 불꽃이 폭발하여 외피를 완전히 소진시키는 파국을 포착한다.


나는 융의 분석심리학과 라캉의 정신분석을 렌즈로 삼아, 두 작품에 나타난 욕망과 결핍, 그림자와 투사의 매커니즘을 해부하고, 이를 통한 자기 이해와 수용의 여정을 탐구하고자 한다.






1. 욕망, 결핍, 그림자



그녀들은 모두 거울을 마주한다. 거울은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통로이자, 자기 인식의 출발점이다. 라캉이 말한 '거울 단계'에서처럼, 인물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결핍을 응시한다. 이는 라캉의 상상계(the Imaginary)에서 작동하는 환상적 자아 이미지와, 실재계(the Real)의 채워질 수 없는 공백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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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39세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연인 로제와의 오랜 관계 속에서 감정적 무뎌짐을 경험한다. 소설에서 묘사된 그녀의 삶은 질서 정연했지만 어딘가 공허함이 느껴진다. 이 공허함은 그녀의 일상에 파인 구멍처럼,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존재한다.


25세 변호사 시몽과의 만남은 그녀의 침전된 세계를 뒤흔든다. 내면의 억압된 열정과 잠자던 욕망이 깨어난다. 폴의 내적갈등은 단순한 삼각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안정과 열정 사이의 내적 분열을 뜻한다. 확립된 자아와 잠재된 가능성 사이의 갈등이며, 존재의 근원적 균열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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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는 한때 스크린의 여왕이었으나, 시간이라는 가혹한 심판관에게 왕관을 빼앗긴 채 추방된 군주다. 그녀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짓는 장면은 나이 듦에 대한 공포와 상실감의 시각적 표현이다. 이 장면은 라캉의 상상계와 실재계의 고통스러운 충돌을 상징한다.


'수'와의 만남은 엘리자베스에게 제2의 인생을 선사한다. 이 만남은 단순한 과거 영광의 재현이 아니라, 존재의 재발견을 의미한다.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그녀의 몸부림은 현대인의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주입한 후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젊어진 모습(수)을 바라보는 장면은, 욕망의 대상(objet petit a)을 일시적으로 획득한 환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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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면, 그 그림자는 당신을 통제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자와 대면하지만, 그 통합에 실패한다.


폴은 사랑이라는 감정적 욕망 속에서 길을 잃는다. 여기서 그녀의 그림자는 질서와 안정이라는 페르소나 아래 숨겨진 정열과 모험의 욕구다.


엘리자베스는 젊음이라는 욕망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새로운 결핍의 심연으로 추락한다. 영화 중반, 수가 엘리자베스의 집을 장악하고 그녀의 정체성을 위협하기 시작하는 장면은, 그림자로 이양되는 통제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 투사, 이상화, 아니마·아니무스



라캉에 따르면, 욕망은 궁극적으로 타자의 욕망이다. 우리는 타인을 욕망하지 않는다.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욕망한다.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근본적 속성이며, 두 작품에서 인물들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다. 이는 상상계의 환상과, 상징계(the Symbolic)의 사회적 질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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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점에서 보면, 시몽에 대한 폴의 끌림은 그의 열정적인 시선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종의 나르시시즘적 회귀다. 시몽은 폴의 아니무스, 즉 내면의 남성적 원형에 가까운 존재로, 그녀의 억압된 활력과 열정의 구현체다. 그가 보여주는 "폭력적이고 아름다운 슬픔"은 폴이 내면에서 느끼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의 투사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시몽이 폴에게 던지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표면적으로는 음악 취향에 관한 물음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억압된 내면의 욕망에 균열을 만드는 열쇠다. 이는 라캉의 상징계로서의 언어가 무의식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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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에서 수는 엘리자베스의 아니마, 즉 이상화된 여성성의 도플갱어다. 엘리자베스는 수에게 과거의 영광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판타지를 투사한다. 영화에서 엘리자베스가 수의 젊은 몸을 질투하며 바라보는 장면들은 이러한 투사와 내적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자신감 상실과 불안을 외부로 돌리는 원시적 방어기제다.


수는 점차 독립된 정체성을 획득하며 엘리자베스를 위협한다. 이 위험성은 억압된 그림자가 의식을 압도함을 나타내는 알레고리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잠든 동안 수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파괴하는 모습은 그림자의 반란, 억압된 욕망의 폭발적 귀환을 상징한다.


'서브스턴스'라는 혈청은 젊음을 되찾게 해주지만, 동시에 그녀의 정체성을 분열시키는 축복이자 저주다. 수(젊은 자아)는 엘리자베스의 그림자, 즉 억압된 욕망과 두려움의 육화다. 라캉의 용어로 이는 '환유적 욕망(metonymic desire—하나의 대상 a가 획득되자마자 또 다른 결핍이 생성되는 순환)'의 끝없는 미끄러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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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 모두 투사와 이상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폴은 시몽이란 투사된 환영에 사로잡히고 싶으면서도, 잠식당하기를 거부하는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엘리자베스는 이상화된 자아로 인해 주체가 파열되며 존재론적 파국을 맞는다.






3. 화해, 개성화, 자기실현



융이 말한 '개성화'는 이러한 투사 현상에 대한 해독제다. 개성화란, 의식과 무의식,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통합해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완전한 개성화를 위해서는 투사된 내적 이미지를 회수하고, 타자에게 투영된 자기 이상을 철회해야 한다. 이는 투사된 환상에서 시작해, 그림자와 아니마/아니무스를 수용하고, 통합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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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로제와 시몽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자기 이해의 베일을 조금씩 벗겨낸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그녀가 자신의 선택을 성찰하는 모습은 개성화를 향해 다가가는 첫걸음을 상징한다. 그녀의 선택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이해를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엘리자베스는 지독한 자기 분열을 체험한다. 영화의 충격적 결말, 즉 엘리자베스와 수가 하나의 괴물 같은 존재로 합쳐지는 장면은, 개성화의 실패를 호러의 작법으로 나타낸 결과물이다. 이 장면에서 두 인물이 서로의 살을 파고들며 울부짖는 모습은 여성성의 분열된 자아가 낳는 고통의 극단적 표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파괴적 결합조차 역설적으로 '젊음과 나이 듦',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자아의 모든 측면을 마주하는 통합의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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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의 서로 다른 결말은 자기 이해와 수용의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폴의 사례는 고통스럽지만 점진적인 자기 인식의 과정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의 경로는 극단적이고 파괴적이지만 불가피한 자기 직면 단계를 제시한다. 이들의 여정은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의 질곡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치유를 위한 필수적 위기"의 서로 다른 얼굴들이다.






결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서브스턴스』는 욕망과 정체성의 복잡한 관계를 해석하는 현대적 신화다. 브람스의 선율과 서브스턴스의 혈청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이 상징물들은 내면의 미지를 마주하는 초대장이자, 자기 이해를 안내하는 지도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볼 때, 두 작품은 욕망의 본질과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욕망은 결핍에서 솟아나며, 일시적 충족은 또 다른 결핍의 씨앗을 품는다. 욕망의 대상(objet petit a)은 획득하는 순간 그 빛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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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폭풍우가 몰아치는 심해를 가로지르며 마침내 자신이라는 등대를 발견하는 항해다.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사건은 우리를 외부가 아니라 내면으로 이끈다. 생의 모든 경험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자기의 그림자와 화해하고, 투사의 장막을 걷어내어, 스스로를 통합하는 과정이다.


사랑 또한 타인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 심연을 향한 여정이며, 타인을 통해 펼쳐지는 자기 무의식의 반영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욕망과 두려움, 가능성과 한계라는 존재의 좌표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루하루는 출항이자 귀항이다. 존재의 근원을 향한 여정이며, 온전한 자아를 찾아가는 내면의 나침반이다. 스스로의 온전한 얼굴을 마주하기를 거듭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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