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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상록2 30화

예술하는 삶

빅매직

by 조융한삶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시했듯, 삶은 자체로 예술이다. 우리의 존재는 끊임없는 창조와 재창조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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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옷장 앞에 서는 순간부터 예술은 시작된다. 오늘의 날씨와 기분, 만날 사람들과 가야 할 장소를 종합하여 하나의 시각적 언어를 구상한다. 셔츠 하나가 때로는 침묵의 미학이 되고, 때로는 절제된 우아함이 된다. 패션은 나를 둘러싼 가장 가까운 건축이자, 세상과 만나는 첫 번째 인사다.


커피를 내리는 아침의 의식에서 나는 감각의 지휘자가 된다. 원두의 향을 맡으며 오늘 하루의 톤을 설정하고, 물이 끓는 소리는 시간의 리듬을 만든다. 첫 모금의 온도와 쓴맛 사이에서 각성과 위안의 경계를 탐색한다.


글을 쓸 때는 언어라는 물질과 씨름한다. 단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문장들이 서로 호흡을 맞춰가는 순간을 기다린다. 요리할 때는 불과 재료, 시간이 만나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연금술을 목격한다.


산책은 도시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읽어내는 행위다. 발걸음의 리듬이 사유의 박자가 되고, 길모퉁이마다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명상은 내면의 소음을 정돈하여 순수한 현재에 도달하려는 시도다. 이 모든 일상의 조각들이 하나의 생활 예술품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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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복합적인 예술 형태다. 두 개의 의식이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만나 제3의 의미를 창조해내는 과정이다. 여기서 예술가는 동시에 연주자이자 청중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다. 그의 내면 풍경 속으로 상상력을 통해 여행을 떠나야 한다. 말의 표면 아래 흐르는 감정의 지류들을 감지하고, 침묵의 무게를 가늠하며, 적절한 순간에 내 목소리를 얹는다.


진정한 대화에서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 일어난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상대방의 질문을 통해 떠오르고, 그의 경험이 내 기억의 서랍을 열어젖힌다. 마치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기본 선율은 있지만 그 순간의 화학작용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탄생한다.


디지털 시대의 가속화된 소통 환경에서 깊은 대화는 점점 희소해진다. 즉석 답변과 실시간 반응이 강요되는 문화 속에서, 침묵의 여백을 허용하고 천천히 익어가는 생각을 기다려주는 대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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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는 힘의 경제학이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물리학적 우아함을 추구한다. 상대방의 힘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고 재방향하여 나의 기술로 전환시킨다. 이는 현대 사회의 경쟁 논리에 대한 몸의 철학적 응답이기도 하다.


매트 위에서 나는 몸의 언어학자가 된다. 여기서 문법은 작용점과 타이밍이고, 어휘는 가드·패스와 서브미션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는 것은 시를 해석하는 것과 같다. 그의 무게중심의 미묘한 변화, 호흡의 패턴, 근육의 긴장도—이 모든 것이 그가 다음에 쓸 '문장'을 예고한다.


수백 시간의 훈련을 통해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 의식적 사고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위험을 감지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직관적 지능이 발달한다. 이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참여하는 통합적 경험이다.


스파링 후의 땀방울들은 내가 그 순간에 얼마나 완전히 현재에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불안도 없이,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접촉과 반응만이 존재하는 순수한 현재성의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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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나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가능성의 안내자가 된다. 한 명의 학습자와 마주하는 순간, 그의 호기심과 내 경험이 만나 새로운 이해의 지평이 열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함께 탐구해나가는 과정이다.


학습자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화가가 황금시간대의 빛을 잡아내는 것과 같다. 이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할 때의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면 고도로 예민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강력한 교육적 도구가 된다. 성급한 설명 대신 학습자 스스로 답을 찾아갈 시간을 주는 것, 그 여백 속에서 진정한 학습이 일어난다. 이는 조각가가 돌 속에서 형상을 발견해내듯, 학습자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지혜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의 만남에서 나는 새로운 교육 언어를 배운다. 그들의 멀티태스킹적 사고방식과 시각적 정보 처리 능력을 이해하며, 전통적인 선형적 설명 방식을 넘어선 다차원적 소통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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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재능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반복과 섬세한 관찰, 끝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서서히 완성되어간다. 요리할 때 칼을 쥐는 손의 각도를 조금씩 조정해가며 완벽한 채썰기를 추구하고, 대화할 때 상대방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집중한다.


실패는 성장의 필수 재료다. 어색했던 대화, 실패한 기술, 전달되지 않았던 수업—이 모든 실패들을 통해 다음번에는 조금 더 나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현대의 알고리즘 문화는 즉각적인 만족과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진정한 예술적 성장은 느린 익어감의 과정을 거친다. 매일 조금씩 쌓여가는 경험과 통찰이 어느 순간 질적 도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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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무한한 연결망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더욱 고립시킨다. 수많은 정보의 노이즈 속에서 진정한 소통과 깊은 몰입의 경험은 점점 희소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일상의 예술적 실천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다.


손으로 직접 만드는 요리, 몸과 몸이 부딪히는 주짓수, 눈을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이런 아날로그적 경험들이 디지털 유목민으로 떠도는 우리에게 존재의 무게와 깊이를 되찾아준다.


그리하여 누구나 이미 예술가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설계하는 순간부터, 타인과 마주하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든 순간이 창작이다. 다만 그것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갈고닦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다시 바우만의 통찰처럼,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을 재창조한다. 어떤 말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몸짓을 취할 것인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이 모든 선택들이 모여 우리 삶이라는 작품을 만들어간다.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할지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을 예술가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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