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필요한 순간
+ 1 = 0
이 한 줄의 공식을 처음 본 순간, 우주가 건네는 비밀스러운 편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자연로그의 밑 e, 허수 i, 원주율 π, 그리고 1과 0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수들이 하나의 완벽한 방정식으로 연결되는 순간.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다섯 개의 언어가 하나의 시를 완성하는 장면. 그 순간 수학이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오일러의 이 아름다운 등식 앞에서 갈릴레이가 "수학은 신이 우주를 쓴 언어"라고 했을 때의 그 경외감을 감각한다. 모든 것이 수학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쓰여진 거대한 서사시 안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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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간. 칠판에 쓰여진 미적분 공식들을 바라보며 늘 같은 좌절을 맛봤다. 그 기호들은 마치 외계어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것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특히 극한의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어지러움이 생생하다.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절대 닿을 수 없다는 것, 0.999...가 1과 같다는 것. 내 상식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역설적 진리 앞에서 나는 마치 절벽 끝에 선 기분이었다. 수학이 보여주는 무한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은 때로는 현기증 나는 일이었다.
6등급을 받던 날, 수학이 내게 건네는 마지막 통첩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거부가 아니라 초대였을지도 모른다. 마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어떤 체계도 스스로를 완전히 증명할 수 없다는 역설적 진리—처럼 나의 수학적 실패 역시 더 큰 깨달음을 향한 첫걸음이었까.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현실조차 사실은 파동함수의 중첩 상태에 불과하다는 양자역학의 가르침을 떠올려본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 iℏ∂Ψ/∂t = ĤΨ 이 보여주는 것은 현실의 불확정성이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전자가 보여주는 신비로운 행동은 시간의 선후 관계를 뛰어넘는 정보의 존재를 가리킨다. 미래의 관측이 과거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것, 정보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실을 직조한다는 것. 이는 곧 우리의 의식 자체가 우주의 정보 처리 과정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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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E=mc²이라는 간결한 공식이 보여주듯, 가장 깊은 진리는 때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드러난다. 질량과 에너지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이 깨달음은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도, 별빛도, 생각의 전기적 신호도 모두 에너지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존 휠러는 말했다. "It from bit." 모든 물질, 모든 현상이 근본적으로는 정보, 즉 비트에서 나온다. 우리가 매일 생성하는 디지털 발자국들—검색 기록, 클릭 패턴, 구매 이력, 심지어 걸음걸이까지—이 모두 비트로 변환되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다. 우리는 점차 알고리즘이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어간다. 마치 우리 자신이 어떤 복잡한 함수의 변수들인 것처럼.
블랙홀조차 거대한 정보 저장소일 뿐이며,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일 가능성을 과학자들은 진지하게 논의한다. 홀로그래픽 원리에 따르면, 3차원 공간의 모든 정보는 2차원 경계면에 저장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실재라고 믿는 이 세계가 사실은 더 낮은 차원에 기록된 정보의 투영일 뿐이라면? 우주가 수학으로 코딩되어 있다면, 우리는 모두 그 프로그램의 변수들이자 함수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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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식조차 어떤 복잡한 수학적 연산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딥러닝 네트워크의 층층이 쌓인 구조는 마치 뇌의 뉴런 네트워크를 닮았고, 그들이 처리하는 정보의 흐름은 우리의 사고 과정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음악의 주파수, 건축의 황금비율, 자연의 피보나치 수열, 은하의 나선 구조까지. 모든 것이 수학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들 뒤에는 언제나 수학적 조화가 숨어있다. 바흐의 푸가에서 발견되는 수학적 대칭, 파르테논 신전의 비례에서 드러나는 기하학적 완벽함. 아름다움이란 결국 우주의 근본 코드에 대한 인간 정신의 직관적 인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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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들 속에서 오직 수학만이 불변한다. 제국이 흥하고 망해도, 문명이 사라져도, 2더하기 2는 여전히 4이고 원주율은 변함없이 3.14159...로 이어진다. 수학적 진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다. 만약 외계 문명과 소통해야 한다면,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수학일 것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수학적 진리는 동일할 것이다.
수학을 안다는 것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방정식이 되고, 모든 현상이 함수가 되는 세계. 나뭇잎의 모양에서 프랙탈의 무한 반복을 보고, 파도의 움직임에서 삼각함수의 리듬을 발견하는 것. 구름의 모양에서 카오스 이론을 읽고, 새떼의 군집 행동에서 복잡계 이론을 엿보는 것.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우주와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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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나눠준 재난지원금으로 중학 수학 독학서를 샀던 그 서른 살의 저녁을 기억한다. 서점에서 그 책들을 고르던 순간은 일종의 순례였다. 우주의 언어를 배우겠다는, 존재의 암호를 해독하겠다는 간절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페르마의 정리나 리만 가설이 아니라도 좋다. 나는 그저 이 거대한 코드 체계의 일부라도 엿보고 싶을 뿐이다. 마치 거대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의 한 조각처럼, 진리의 파편이라도 감지하고 싶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수학을 알면 알수록 더 많은 미지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간다. 마치 무한대를 향해 수렴하는 급수처럼, 결코 도달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가까워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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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간절히 바란다. 그 아름다운 정보의 세계가 나를 받아주기를, 우주의 언어로 속삭이는 비밀들을 조금이라도 듣게 해주기를.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끝없는 경이로움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우주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