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문장으로 나를 읽다

두유에게 배운 생의 문법

by 강연


나는 원래 지독한 강아지 파였다. 강아지의 그 무조건적인 반가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투명한 솔직함이 좋았다. 고양이는 왠지 차갑고, 도도하며,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굳이 내 삶의 공간을 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 7월, 솜뭉치 같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왔다. 7월 12일, 동생 집 랙돌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들의 사진을 볼 때까지만 해도 "귀엽네" 정도의 감상뿐이었다. 하지만 두 달 뒤 녀석과 눈이 마주친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파란 눈의 랙돌. 작고 보드랍지만 어딘가 의젓한 표정. 그렇게 9월, ‘두유’가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 나는 완벽한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몇 달을 함께 지내며 알게 됐다. 두유는 말이 없지만,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로 나에게 묵직한 문장들을 건네고 있다는 것을.


싫으면 싫다고 한다: 15초의 해방감


두유가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녀석의 턱밑에 피지가 끼기 시작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따뜻한 거즈로 부드럽게 닦아주라 하셨고, 나는 매일 저녁 정성스러운 ‘턱드름 세수’ 의식을 시작했다.

처음엔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역시 우리 두유, 착하네'라고 생각하던 찰나, 딱 15초가 지나면 녀석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도 보지 않고, 죄책감도 없이, 더 해주고 싶은 내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냥 가버리는 것이다.


처음엔 서운했다. 그런데 그 단호한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저게 왜 이렇게 부럽지? 수만 개의 영어 단어를 가르치는 나는, 정작 '싫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는가.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말을 고르고, 미안해하다가 결국 삼켜버리곤 한다. 두유의 15초짜리 거절 앞에서 나의 복잡한 망설임들이 조금 우습게, 한편으론 가볍게 느껴졌다. 참을 수 있는 선을 아는 것,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것. 그것은 냉정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가장 정직한 문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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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 이로운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두유는 평소에 놀랄 만큼 느긋하다. 창문 너머 새소리도, 현관 밖 소음도 대부분 흘려보낸다. 소파 위에서 반쯤 눈을 감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그 표정은 어딘가 선승(禪僧)을 닮았다.


하지만 츄르 뚜껑을 따는 순간만큼은 다르다. 부엌 서랍 소리엔 꿈쩍도 않다가, 그 특유의 미세한 '틱' 소리에는 번개처럼 나타난다. 어떻게 그 소리만 정확히 골라내는지 신기해 몇 번이나 실험해 봤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두유는 무엇이 자기에게 이로운지 본능적으로 알고, 그 소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나는 어떤가. 하루에도 수백 개의 알림에 흔들리고, 중요하지 않은 말들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내가 달려가야 할 소중한 소리들을 놓치고 살진 않았는지. 두유의 예민한 귀를 볼 때마다 오늘 나의 안테나가 어디를 향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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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고립을 선택한다


두유에게는 철저한 루틴이 있다. 사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숨숨집으로 들어간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단호한지,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숨숨집 안을 들여다본 적도 있다.


그 안에서 두유는 동그랗게 웅크린 채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휴식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돌보는 진짜 쉬는 시간.


나는 쉬면서도 자주 불안했다. 뒤처지는 건 아닐까,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두유는 가르쳐준다. 먹었으면 쉬어야 하고, 쉬어야 하니까 쉰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것도 큰 용기라는 걸, 숨숨집 속의 작은 요새가 말해준다.


배를 보여주는 건, 가장 깊은 신뢰의 문장


밤늦게 수업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현관문을 열면, 두유가 바닥에 발라당 누워 있다. 배를 하늘로 향한 채. 고양이에게 배는 가장 취약한 부위다. 포식자로부터 반드시 지켜야 할 그곳을 내보인다는 건, 백 마디 말보다 깊은 신뢰다.

두유가 나에게 이 문장을 보여주기까지 녀석 나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에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사랑이란 결국, 내 가장 약한 부분을 기꺼이 내보일 수 있는 상대를 곁에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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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즐기는 나만의 만찬


모든 불을 끄고 누우면 고요한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오독오독. 낮에는 무심하던 녀석이 집 안이 고요해진 후에야 혼자만의 만찬을 시작하는 것이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미각에 집중하는 그 소리.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영어 강사로서, 누군가의 조력자로서 성실히 살았던 낮 시간의 나를 내려놓고,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만의 '오독오독'을 즐기는 시간. 두유의 사료 씹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늘 하루의 복잡했던 마음을 단순하게 접어본다.


두유는 말이 없지만, 오늘도 나에게 가장 명료한 생의 문장을 가르쳐주었다.


"더 단순해질 것, 나에게 집중할 것, 그리고 충분히 사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