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 동료의 진짜 안부전화
얼마 전, 예전 직장 동료로부터 연락 한 통을 받았다. 내가 퇴사하기 직전 한 달간 함께했던 동료 영어 강사 한 분의 소식이었다. 무단결근 끝에 퇴사 처리되었다던 그는, 알고 보니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전신마비라는 가혹한 운명 앞에 서 있었다.
고작 한 달. 여름방학 특강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서먹한 첫인사를 나누며 점심을 먹던 그 짧은 시간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가 툭 던졌던 말 한마디가 유독 가슴을 때린다.
"이직할 때마다 공백기가 있잖아요. 그럴 때 두어 번 쿠팡 알바로 버텼는데, 진짜 큰 도움이 됐어요. 쿠팡 무시하면 안 됩니다."
호쾌하게 웃던 그의 모습 곁에서, 다른 동료는 "우리 남편은 몸이 약해서 하라고 해도 못 해요"라며 가벼운 농담을 던졌었다. 그날의 대화는 삶의 벼랑 끝에서 서로를 지탱하던 작은 위로이자,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벼랑 끝에서 손을 뻗을 때, 그 손을 잡아주는 존재는 시대마다 옷을 갈아입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한때 방송 광고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오던 러시 앤 캐시 같은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소리 없이 짐을 싸고 있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떠나는 자본의 속성이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빈자리는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어느새 그 자리에는 이제는 거대 플랫폼 쿠팡이 들어앉아 있었다.
'나중결제'라는 이름의 편리함, 그리고 당장 오늘 밤을 넘기기 위해 내 몸을 던질 수 있는 단기 노동의 기회.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였고,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몸을 의지할 마지막 보루였다. 자본의 국적이 바뀌고 시스템이 더 세련되게 변할 뿐, 서민들이 자신의 소비 정보와 개인 데이터를 내어주고, 새벽의 단기 알바 노동력으로 몸을 갈아 넣으며 당장의 생계를 메우는 구조는 여전하다는 서늘한 현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사고를 당한 그 영어 강사에게 쿠팡은 분명 고마운 구원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학원비를 대고, 이직의 공백기를 버티게 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으리라. 하지만 돌아보면, 그 구원은 우리들의 절박함을 먹고 자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이기도 했다.
몸이 약해서 쿠팡 알바조차 못 할까 봐 걱정하던 여자 강사 동료의 남편 이야기와, 전신마비라는 절벽에 부딪힌 한 가장의 비극. 그것은 자본의 흐름 속에서 너무나 작고 미미한 숫자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리는 새벽 배송의 편리함 뒤에는, 그 거대한 플랫폼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등을 굽힌 수많은 가장의 발걸음이 쌓여 있다.
거대 자본은 국경을 넘나들며 이익을 좇아 움직인다. 대부업이 가고 플랫폼이 오듯, 시스템은 늘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파고들 것이다.
사고 소식을 듣고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한다. 우리는 편리함에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스템이 우리의 약점을 어떻게 수익화하는지 차갑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 눈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거대한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고 '나'라는 주체성을 지킬 수 있다.
이제는 다시는 쿠팡 알바를 뛸 수도, 교단에 설 수도 없게 된 그 동료의 쾌유를 빈다. 비록 자본은 차갑게 움직일지언정, 그를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만큼은 그 여름날의 점심시간처럼 따뜻한 온기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