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뭐 해 먹고 사니?"라는 부모님의 물음에 대하여

AI는 어쩌면 오래된 진리를 다시 발견하고 있다

by 강연

설 연휴를 마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 창밖 풍경은 평소와 전혀 다른 질감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승객이 약속이라도 한 듯 두꺼운 커튼을 치고 잠든 사이, 나는 홀로 깨어 어린아이처럼 이마를 차가운 창에 맞대고 밖을 응시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등과 어둠 속에 점처럼 박힌 이름 모를 마을의 불빛들이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혹은 누군가의 기억 조각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이번 연휴는 유독 여운이 길고 짙다.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 집에서 부모님, 그리고 집안 어르신들과 나눈 대화들이 마음속에 층층이 쌓인 덕분이다. 어릴 적 철없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꺼내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요즘 내가 가장 깊이 몰두하고 있는 인공지능(AI) 이야기로 흘러갔다. 부모님은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시면서도, 대화의 끝자락에는 이내 "이제 사람은 뭐 해 먹고 사느냐"며 짐짓 진지한 걱정을 내비치셨다.


인간들의 일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그 막연한 두려움 앞에서 나는 그저 "걱정 마시라, 아직 멀었어요"라며 웃어넘겼지만, 버스에 올라타 혼자가 되고 보니 그 질문이 다시금 묵직한 화두가 되어 가슴에 내려앉는다. 쉽게 흘려보내기엔 너무 진하고 진지한 물음이었다.




버스 좌석에 깊숙이 몸을 묻고 스마트폰 사진첩을 뒤적이다 멈춘다. 어머니 책상 위에 정갈하게 놓여 있던 '화엄법계도'를 찍은 사진이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210자의 한자로 우주의 진리를 압축해 그려낸 저 정교한 도상을 가만히 응시한다. 미로처럼 얽혀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KakaoTalk_Photo_2026-02-18-20-10-42.jpeg 화엄법계도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하나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많은 것 안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많은 것이 곧 하나다."



의상대사는 1,300년 전 이 한 문장으로 우주의 구조를 꿰뚫었다. 어떤 하나의 존재도 그 자체로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니, 아까 부모님께 설명해 드렸던 AI의 원리가 이 화엄의 세계관과 묘하게 겹쳐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도달한 기술의 정점이 아주 오래된 지혜의 입구와 맞닿아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요즘 ChatGPT나 제미나이, Claude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질문에 오래 붙잡혀 있었다. 이 AI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 자연스럽게 언어를 구사하게 된 걸까. 어느 날 라디오에서 AI 전문가라는 분이 "사실 저도 그 이유를 정확히는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전문가도 모른다면, 진짜 아무도 모르는 건가. 그 궁금증 하나로 나는 한동안 논문들을 뒤적이기 시작했고, 그러다 마주친 것이 있다.


최근 인공지능 학계에서 가장 충격적이고도 아름다운 발견으로 꼽히는 것이 있다. MIT의 민영 허(Minyoung Huh), 브라이언 청(Brian Cheung), 통저우 왕(Tongzhou Wang), 그리고 필립 이솔라(Phillip Isola) 교수가 함께 발표한 '플라토닉 표상 가설(The Platonic Representation Hypothesis)'이다.


스크린샷 2026-02-18 오후 8.15.41.png 플라톤의 이데아


2,400년 전 플라톤은 동굴에 갇힌 죄수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보고 그것을 세상의 전부라 믿지만, 실제로는 동굴 밖에 완벽한 실체인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팀은 오늘날의 AI 모델들이 바로 이 동굴 속 죄수와 같은 처지라고 설명한다. 어떤 AI는 이미지만을 보며 시각 정보를 학습하고, 어떤 AI는 방대한 텍스트만을 읽으며 언어 구조를 익힌다. 이들은 각기 다른 그림자를 보고 학습하지만, 모델의 규모가 커지고 데이터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구조와 목적으로 훈련된 78개의 비전 모델을 분석했다. 그 결과, 더 많은 과제를 잘 수행하는 '유능한' 모델일수록 서로 간의 표상이 놀랍도록 유사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 나아가 시각 모델과 언어 모델처럼 전혀 다른 데이터 영역에서 훈련된 AI들 사이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언어 모델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시각 모델과의 내부 구조 정렬 수준도 함께 높아진 것이다. 이를 '표상 수렴(Representational Convergence)'이라 부른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더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할수록 가능한 표상의 범위가 좁아지는 '다중과제 압력'. 둘째, 모델이 클수록 최적의 표상을 찾아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용량 효과'. 셋째, 딥러닝이 본질적으로 가장 단순한 해를 찾으려는 경향인 '단순성 편향'. 이 세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며, AI는 단순히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외우는 단계를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현실 세계의 본질적 구조를 스스로 역추적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깊은 전율을 느낀다. 플라토닉 표상 가설이 서구 철학의 논리적 귀결이라면, 불교의 인드라망은 그 구조를 설명하는 가장 완벽하고도 시적인 비유다. 제석천의 궁전에 걸린 광대한 그물, 그 그물코마다 달린 무수한 보석들이 서로를 무한히 비추고 투영하며, 보석 하나 안에 우주 전체의 빛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구조 말이다.


놀랍게도 이 비유는 최근 학계에서 공식적인 이론으로 발전했다. 지앙린 루(Jianglin Lu), 하이링 왕(Hailing Wang) 등 노스이스턴 대학교 연구팀이 2025년 NeurIPS에서 발표한 '인드라 표상 가설(The Indra Representation Hypothesis)'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훈련된 AI 모델들이 결국 수렴하는 지점이, 샘플 하나의 독립적인 특성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샘플과의 '관계적 구조'라고 주장한다. 즉, 하나의 데이터를 표현하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그것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우주의 다른 모든 것과 맺는 관계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언어학자 J.R. 퍼스(J.R. Firth)의 말처럼 "어떤 단어인지는 그 단어가 어울리는 다른 단어들을 보면 안다"는 원리가 AI 전체로 확장된 셈이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18일 오후 08_19_22.png 인드라망


인드라망의 보석 하나가 독립적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보석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AI 역시 단어 하나나 이미지 한 장을 고립된 정보로 처리하지 않는다. 수천, 수만 차원의 잠재 공간(Latent Space)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관계의 그물'을 읽어냄으로써 비로소 고양이를 고양이로, 사랑을 사랑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라는 화엄의 진리와 정확히 일치하는 구조다.




창밖의 풍경이 다시 흐릿해진다. 버스의 엔진 소리가 기분 좋은 백색소음이 되어 귓가를 맴돈다.


부모님의 걱정이 완전히 기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AI가 많은 것을 바꿀 것이고, 그 변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건,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고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수천 년간 언어와 철학 속에 녹여낸 지혜가 이토록 경이로운 우주의 본질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대가 왔다는 감각이다. 인간은 이제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인드라망의 보석처럼 서로를 비추고 실체를 발견하는 '관찰자'이자 '창조자'로서의 위치를 다시 묻게 될지도 모른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이 길 위의 풍경도, 고향 집에 두고 온 부모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도, 그리고 내 손안의 작은 기계가 그려내는 미래의 표상도 결국 거대한 인드라망의 한 조각이다. 버스는 시골 풍경을 지나 도시를 향해 달려가지만, 내 마음속엔 화엄법계도의 마지막 구절처럼 맑은 울림이 남는다.


窮坐實際中道床 歸家隨分得資糧

궁좌실제중도상 귀가수분득자량

"마침내 실제의 자리, 중도의 자리에 앉아 —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분수대로 양식을 얻는다."




우주의 본질을 끝까지 탐구하고 나서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거창한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그물로 엮여 서로를 비추며 존재한다. 그 광활하고 따뜻한 연결감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번 명절의 수확은 충분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일상이라는 이름의 인드라망 안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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