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 마신 아인슈타인

1화

by 김도현

큰집까지는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었고 그들은 네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차 안에서 한참을 조잘대던 첫째가 오도 가도 못하는 정체 속에서 결국 내뱉었다.

“오줌 마려워.”


어머니가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못 참겠어?”


첫째는 대답 대신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옆자리에 굴러다니던 빈 생수병을 뒷좌석으로 툭 던지며 뱉었다.

“여기다 싸라.”


옆자리에 앉은 둘째는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첫째는 망설임 없이 생수통을 가득 채웠고, 묘한 자괴감에 빠졌다가 이내 씩 웃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우고 잠든 동생의 어깨를 흔들었다.

“야. 야, 일어나 봐.”


“왜.”

둘째는 짜증 섞인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녀는 젓가락 놀이를 하자고 꼬드겼다.

손을 내밀며 힐끗 보자, 동생은 언제 잤냐는 듯 눈을 말똥 하게 뜨며 달려들었다.

“또.”


게임이 끝날 때마다 동생은 손을 들이밀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게임을 받아주며 동생의 목이 타들어가길 기다렸다.

마침내 동생이 입을 열었다.

“물.”


그녀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물병을 내밀었다.

“자.”


동생은 병을 받으려다 멈칫하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


“보리차야. 진짜 비싼 거.”

동생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한 모금 마신 뒤 그녀를 노려보자, 그녀는 그럴듯한 말들을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엄마 아빠도 먹고 맛있다 그랬어. 네가 아직 어려서 맛을 모르는 거지. 싫음 줘, 내가 다 마실게.”

그녀가 뺏으려는 시늉을 하자, 동생은 다급히 손을 뿌리치고 ‘물’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기어코 한마디를 보탰다.

“맛있다.”


그녀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자 동생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방금 마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그는 토하려는 고양이처럼 몸을 들썩였다. 일렁이는 동생의 눈동자 속으로 드디어 큰집의 대문이 비쳤다.


실실 웃으며 현관을 여는 첫째의 머리에 꿀밤이 꽂혔다. 어머니였다.

“동생 놀리니까 좋드나.”


첫째는 능글거리며 대꾸했다.

“엄마도 보고 있었던 거 알거든?”


어머니의 말문을 틀어막듯 친척들이 우르르 마중 나왔다.

큰집은 말 그대로 컸지만 서른 명을 담기엔 턱없이 좁아 보였다.


거실 풍경은 칼로 그은 듯 선명하게 나뉘었다.

남자들은 소파를 점령한 채 TV 속 뉴스를 안주 삼아 송편을 씹었고,

여자들은 거실 한구석에 모여 앉아서 전을 굽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대화의 중심에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딸이 이번에 학교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동서, 둘째는 벌써 일곱 살인데 말도 제대로 못 해서 어떡해?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어머니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에이 형님, 아인슈타인도 말 늦게 했다잖아요.”


아인슈타인. 구석에서 문제집을 풀던 첫째는 피식 웃었다.


대화의 주도권이 넘어가자 어머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시각, 둘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주방 구석으로 도망쳤다. 그곳엔 난생처음 보는, 불도 빛도 없이 물을 끓여내는 유리 상자가 있었다. 거실에선 명절 특집 방송 소리로 왁자지껄했지만, 둘째는 오직 그 기괴한 기계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그는 손을 올렸다.


—치이익.

황급히 손을 떼자 손바닥이 하얗게 부풀어 올라 물집이 잡혔다. 일곱 살, 울어도 되는 나이였다.

그러나 하얀 물집이 신기해 울음은 터져 나왔다가 삼켜졌다가를 반복했다.

결국 울음은 작은어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터졌다.

“꺄아아악! 애 손 좀 봐!”


순식간에 온 식구가 몰려들었다.


큰어머니가 둘째의 손목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하이구... 우리 아인슈타인 다쳐서 우짜노! 동서, 애 좀 잘 보지 그랬어.”


어머니는 목부터 귀까지 붉게 물든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어머니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비켜보그라.”


할아버지는 화분에서 알로에를 잘라 아이의 손에 붙였다.

“며칠 있으면 나을끼다.”


아버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소파로 돌아갔고,

둘째는 우는 것도 잊은 채 멀어지는 어머니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어느새 차 키를 챙겨 사라져 있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