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계훈련 갔다가 죽을 뻔한 이야기

by 김도현

작계 : '군사작전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계획한 것을 이르는 말.


나는 예비군 5년차라 작계훈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반적으로 1~4년차 까지는 소집훈련을 하고, 5~8년차까지 작계훈련을 한다.)


처음 건물에 들어가서 받은 인상은 "이게 군대라고?" 였다.

면사무소 바로 옆에 초라하게 붙어있는 건물이 xx통합면대 였다.


폐건물처럼 보이는 외관과 달리 들어서자 따뜻한 믹스커피의 냄새가 났다.(아저씨 냄새가 났다는 뜻이다.)

"집에 보내줘."라고 말하는 눈깔을 하고 인사를 하는 상근 예비역의 고갯짓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면대장실에 들어서자 배가 빵빵하게 나온 면대장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5명정도의 청년이 동태눈깔을 하고 핸드폰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앉아만 있길래 결국 물었다. 오전훈련은 어떤 것이냐고.

그러자 면대장은 대답했다.

"할거 없어 그냥 앉아 있으면 돼."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럴거면 사람을 왜 불렀단 말인가.

공교롭게도 전날 핸드폰이 망가져 할게 없었던 나는 말했다.

"저는 집이 아주 가까운데 이럴거면 집에서 기다리다가 1시까지 오면 안되겠습니까?"


그러자 면대장이 말했다.

"원래는 본부중대 인원들은 오전훈련시간에 병과에 따라 나뉘는 자신의 할일을 외워야 하긴하는데...

의미가 없어서 그냥 안시키는거야... 일단은 앉아있어라."

면대장은 그 말을 하면서 씁쓸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안물어봤다.


그러자 면대장은 혼자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산을 줄일때 가장먼저 줄이는 곳이 어딘지 알아? 군대야. 그럼 군대에서 가장 먼저 줄이는 곳이 어딘지 알아? 지역방위군이야..."


그러면서 1시간 동안 말하기 시작했는 데, 내용은 대충 이랬다.

전쟁나면 본대에서 물자가지고 올 차가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차를 사는 대신 전쟁나면 차를 받기로 민간과 계약을 했다. 자신은 이거 못받을 거라 생각한다. 전쟁나면 그걸로 피난가기 바쁘지 뭔 군대에 차를 맡기냐, 화학전으로 가면 방독면써야하는데 물자를 안준다.

생화학무기 날라오면 1960년대처럼 비닐쓰고 싸우게 해야한다.

밥지을 방법이 없어서 집에가서 먹고 와야한다. 이게 뭔 군대냐.

예비군들 5년 지나면 살쪄서 옷도 안맞는 데 새로운 옷 줘야 맞지 않느냐, 이러고 뭔 싸움을 하냐.


심각한 얘기 같았지만,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워낙 깡촌이라 김정은이 치매를 걸리지 않는 이상 여기를 공격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동태눈깔을 읽었는지 면대장은 우리가 지켜야 할곳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변전소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곳이 파괴되면, 경남인지 부산인지가 한순간에 전기가 끊긴다고 들었다.


나는 질문했다.

"그렇게 중요한 곳을 예비군만으로 지킵니까?"


아. 그곳에는 이미 군대가 있었다.

괜히 진지하게 질문했네 하는 생각을 하며

남은 2시간 동안 디지털 디톡스를 톡톡히 받았다.


오전 훈련?이 끝나자 오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30명 정도?

시골동네인지라 젊은사람이 없어 여러면을 통합하여 하나의 면에서 작계훈련을 하는 듯 했다.


총을 받고 철모를 받고 탄띠를 받고 통합면대에는 인원을 수용할 자리가 없어

면장실 옆에 위치한 면사무소 회의실을 이용했다.


면대장은 면장실에 소음이 들릴까 눈치를 엄청봤다.

면대장이 면장의 눈치를 보는게 재밌었지만,

나름 면대장의 따뜻한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회의실을 못쓰면, 예비군들은 밖에서 설명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설명은 별로 길지 않았다. 2시에 설명이 끝나고, 3시 20분에 우리는 훈련장으로 출발했다.

훈련장까지는 40분 거리였다.

굽이진 길에 인도도 없었다.

가뜩이나 고령자 운전자가 많은 시골인데,

보호대책이라고는 뒤에 선 경광등을 든 상근 예비역 하나였다.


나는 그곳에서 대단한 훈련을 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고작 10분 훈련하려고 그곳으로 걸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욕설을 간신히 참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맨 앞줄이었다.

굽이치는길 과속을 하던 포터 운전자가 우리를 보고 바퀴에 끼이익 소리가 나도록 제동을 한후 돌아나갔다.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7시에 끝날 예정이었던 훈련이 5시 10분에 끝나지 않았다면, 민원을 넣었을 것이다.

나는 민원을 넣는 대신 면대장에게 훈련장으로 오가는 길이 너무 위험한 것 같다고 말하고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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