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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롹커가 되다 !!

선글라스로 버틴 일주일

by 고요한밤

1. 11/25 토요일 오후


평소 알고 지내던 M 언니와

같은 시간 라운딩을 하게 되었다.

전날 처음으로 다른 곳에 깜빡 두고 와서

다시 되찾아온 진녹색 선글라스 케이스는

일부러 카트 앞 잘 보이는 자리에 두었다.

마침 해가 나길래 도수 있는 선글라스를 꺼내어 끼고

평상시 쓰는 다초점 안경은

잘 싸서 케이스에 넣어두었다.

시작홀 근처에서 언니의 카트와 마주쳐 인사하고서

언니는 언니 카트로 내 전화기와 선글라스 케이스를 옮기고

나는 내 카트로 언니 가방을 옮기려고 하다가

결국 내 카트로 합쳐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언니가 빨간 내 전화기만 원위치해놓았던 건지

그 과정에서 어디 떨어진 건지

암튼 전반 9홀 중 중반까지만도 실종을 알아채지 못했다.

언니의 전화기 커버 색이 진녹색이어서

당연히 내 안경케이스가 카트 앞에 놓인 걸로 생각했다.

오후 5시면 해가 지고 어두워지므로

4시쯤 그냥 안경으로 바꿔써야지 하고 살폈는데

문제의 그 케이스가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일단 프로샵에 전화를 해놓곤

9번 홀까지만 치고 찾으러 가면

누군가가 주워서 분실물로 갖다 줬겠거니

마음을 편히 가지기로 했다.

하지만 4:30에 부랴부랴 가보았더니

아무것도 분실물로 들어와 있지 않았고,

해가 지고 급격히 깜깜해지고 있었으므로

선글라스를 낀 채로 5분 거리 집으로 후다닥 귀가하였다.


2. 11/23 일요일


집에 와서 예전에 꼈던 안경들이 있나 뒤져보니

몇 달 전 이제 다시 낄 일이 있겠냐며

구형 안경들과 날짜가 다 된 콘택트렌즈들을 버려버린 기억.

그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프로샵과 카트관리소를 찾았으나

여전히 들어온 물건이 없는 상태였다.

교회에 선글라스 끼고 앉아있기 뭐해서 교회 가는 대신

시내 쇼핑몰의 대형 안경원으로 갔다.

미국은 반드시 2년 내 유효 기간의

검안의를 통한 시력검사 정식 처방전이 필요하다.

매년 한국 갈 때마다 단골 안경원을 거쳐 안경을 맞췄기에

유효한 처방전도 없고 안과 보험도 없이 지냈던 나.

연말까지 검안과 안경맞춤 사전예약이 밀려있다길래

설마 어느 정도일까 했더니.

검안은 2-3주, 안경 만드는 데도 그 정도 걸린단다. 흐억.

그전에 누군가가 극적으로 내 안경케이스를 찾아주리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일요일이라 검안의가 없거나 오픈 안한 곳이 많으므로

월요일에 바로 검안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리라 다짐하며.


3. 11/24 월요일


다행히 아침 날씨는 화창했다.

골프장은 유지보수로 쉬는 날이고.

직접 몇 군데 안경점 방문을 해보았으나

당일 검사는 당연히 자리가 없고

가장 빠른 예약이 열흘에서 3주 사이 가능하다는 답변뿐.

검안 비용만도 안경 값이 나올 정도라

추수감사절 식사도 준비해야 하고

식재료 장보기와 청소도 해야 하는데

계속 어두운 선글라스를 낀 채로 낮에만 외출가능하니

어이가 없어 한숨만 푹푹 쉬었다.

결국 오후 5시, 한국시간 화요일 오전 10시에 맞춰

서울 안경원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고

다초점 렌즈는 직접 방문해야 하지만

멀리만 보이는 일반 렌즈는 제작발송이 가능하다시며

렌즈 오더에 하루가 걸리므로

다음날 같은 시간에 다시 전화를 하라 하셨다.


4. 11/25 화요일


프로샵 스탭과 카트관리소 스탭들 다 붙잡고 물어봐도

녹색 안경케이스는 들어오지 않았단 답변뿐.

비싼 명품 선글라스 종류도 아니고

누가 봐도 일상용 도수 높은 안경이라

가져가 봐야 아무 짝에 소용도 없을 텐데.

하루 내내 꿀꿀하게 있다가 오후 5시 서울로 전화했다.

사장님은 렌즈가 잘 도착했다며

안경테 골라놓은 거에 무려 20분 만에 완성을 해주셨다.

퀵으로 1시간 만에 남동생 회사로 배송시켜

국제특송 제일 빠른 걸로 부치는 것까진 성공.

대한민국 만쉐!! 그러나 여기가 문제!!

특송업체가 토일요일은 배송을 안하는 데다가

추수감사절 연휴까지 겹쳐서

배송예정일이 12/1 월요일로 뜬다. 오 마이갓.


5. 11/28 금요일


결국 추수감사절 저녁마저 선글라스 낀 채였으니

계속 앱으로 패키지 위치 확인을 하고 있었는데.

금요일 아침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산호세 인근 배송센터로 도착했다고 떴다.

12시쯤 드디어 out for delivery로 상태가 바뀌고

배송예정일도 12/1에서 11/28로 갑자기 바뀌었다.

1시쯤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안경값만큼의 배송비를 치르고 나서

그동안 잃었던 광명을 찾았다 ㅠㅠ

잃어버린 안경케이스는 여전히 못 찾은 상태이다.

이제는 결코 다시 분실하지 않으리.

항상 내 얼굴에 함께하는,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안경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길고도 긴 한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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