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딸 둘과 해냈다
아직도 퇴사 이야기인가 싶지만 직장을 그만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한달살이, 일년살이를 생각해 보았었다. 미국이나 유럽 어느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으나 혼자 갈 수도 없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자니 세네 배는 늘어나는 경비와 그곳에서 하게 될 나의 수고를 생각하니 빠르게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었다. 작년에는 직장을 그만둔 자체로 좋기도 했고 겨울방학엔 어린 두 딸과 야외활동에도 제한이 많으니 점점 여행을 뒤로 미루게 되었다. 올해 초, 실업급여수급 막바지에는 매주 구직활동을 했어야 했는데 그것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일할 생각도 없으면서 성에 안 차는 조건의 채용공고를 보다 보니 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그 회사를 그만두었나 후회도 했다. 퇴사허니문?이 끝나고 이런저런 생각에 우울감이 몰려올 때 정신 차려야겠다 생각을 하며 일단 제주도행 티켓부터 예매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여행 한 달 전 숙소를 예약하고 또 한참 지나서 렌터카를 예약했고 출발 3일 전부터는 일단 가볼 만한 곳들을 몽땅 지도에 저장했다.
제주도. 10년 전 첫째를 임신하고 남편과 동생, 나 셋이서 신나게 먹은 여행을 시작으로 매년 제주에 갔다.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과는 다른 기분이 들고 도착하면 우리 동네랑은 다른 날씨에 아주 멀리 떠나온 것 같은 느낌이 설레게 한다. 우리 세 식구가 매년 가다가 둘째 임신하고서는 첫째와 엄마, 나 셋이서 일주일을 보냈었고 둘째가 태어나고는 동생네 부부와 오기도 했고 내 친구들과도 몇 번씩 꾸준히 제주를 찾았다. 올해는 예정되어 있던 우리 가족여행으로 한번, 농촌유학을 하겠다며 면접을 본다고 당일치기로 한번, 기다리던 2주살이로 또 제주를 찾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과 하는 여행이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활동들을 많이 포기해야 하고 외식을 해도 아이들 입맛에 맞춰 찾아봐야 할 것이고 숙소에서 먹는다면 준비와 치우기까지 모두 내가 해야 할 일이며 빨래도 해야 하고 아무리 대충이어도 계획도 세워야 하고 나는 여행인지 노동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처음 3일은 남편이 함께했다.
- 여기까지가 7월에 다녀온 여행을 8월 말에 썼던 건데 지금은 12월 3일이다. 겨울이 되고 오늘이 가장 추운 날인데 이제야 한여름 여행일기를 쓰다니..
여행 3일 차였나 남편이 같이 있던 날이었다. 아침 일찍 바다에 나가서 놀다가 들어와서 늦은 낮잠을 자다가 깼는데 창밖이 너무 붉어서 무슨 일인가 창문을 열었더니 믿을 수 없이 멋진 노을이 지고 있었다. 혼자 나가서 보다 들어와서 남편을 깨워서 다시 나가봤는데 여전히 붉고 멋있었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남은 여행동안 노을을 많이 보았지만 그날처럼 붉은 하늘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얼마 전 저녁시간에 애들과 차를 타고 가다가 '얘들아 하늘 좀 봐 노을빛이 너무 이쁘다.' 했더니 둘째 소은이가 '맞아. 제주도 해지는 색이다.'라고 했다.
아이들은 언덕길을 오르다가, 산 이야기만 나와도 제주도에서 엄마 때문에 오름에 갔다가 울었다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내려와서 먹었던 한라봉 아이스크림이 진짜 맛있었다고 꼭 함께 말한다. 그날은 여행 중반쯤 매일 바다에 나가서 물놀이를 하다 지친 내가 더위를 피해서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을 갔던 날이었다. 박물관 오픈시간에 들어가서 점심도 먹고 박물관에 있는 모든 체험을 다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덥긴 했지만 날이 너무 좋았고 가는 길 바로 옆에 오름 주차장이 있길래 일단 가봤다. 코스도 짧고 가는 길도 쉽다길래 애들과 갔는데 늦은 오후여도 덥긴 더웠고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다 왔다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어르고 달래서 올라갔는데 오름 정상은 그늘 없으니 더욱더 더워서 애들은 울기까지 했다. 하도 덥다고 해서 내려오는 길은 숲 길로 내려왔는데 길이 좁다 무섭다 이 길이 맞냐 얼마나 물어보던지...
이렇게 아이들은 제주도를 기억하고 있다. 내년 여름에 또 갈까? 물어보면 가겠다면서 근데 오름은 안 갈 거라고 한다.
처음 일주일은 정말 더웠다. 해가 뜨면서부터 덥고 해가 져도 더웠다. 남편이 가고 처음으로 아이들이랑 셋이서 바다에 갔을 때 나까지 바다에 들어가면 차 키에 바리바리 들고 온 짐을 누가 집어가지 않을까 걱정하며 자리를 지켰는데 파라솔 밑에 앉아 있어도 너무 더웠다. 살 길은 물에 목 끝까지 들어가 있는 것뿐이었다. 물이 빠져서 얕으면 얕은 대로 땅 짚고 헤엄치며 놀고 물이 들어와서 깊으면 깊은 대로 파도를 넘으며 애들은 신나게 놀았다. 생각보다 모래놀이는 인기가 없었다. 물놀이에 지친 내가 모래에 앉아있으면 피서객들 소리와 파도소리를 뚫고 파도를 넘으며 꺅꺅 소리를 질러대는 소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그 소리가 귀에 맴돌 때가 있다. 파도가 올 타이밍에 맞춰서 숨을 참고 바닷물이 눈에 들어가면 세 번 눈을 깜빡이고 혼자 앞으로 나아가진 못하니 언니 발목을 잡고 떠다니던 소은이. 소현이는 겁이 없는지 제일 깊은 곳까지 잘도 헤엄쳐갔다. 혼자 스노클링도 했다가 헤엄도 쳤다가 동생도 매달고 다녔다가 참 바쁜 소현이었다.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곽지해수욕장.
제주도 동물원에 가고 싶다던 애들이랑 화조원에 갔는데 거기 있는 새들은 거의 야행성이라 자고 있었고 다른 동물들도 어지간히 더웠는지 다 그늘에 숨어있었다. 그래서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덕분에 독수리랑 매 불러오기 체험을 나랑 소현이가 다 할 수 있었다. 화조원에서 동물들을 잘 못 봤다고 또 동물원에 가자길래 새별프렌즈에 갔는데 그날은 엄청 덥고 습했다. 구슬 아이스크림을 안 사준다고 삐진 소은이랑 똑같이 생긴 당나귀가 있었는데 소현이랑 나랑 놀리다가 소은이는 더 화가 났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고 뛰면서 그냥 셋이 웃었던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엔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제주도로 귀농한 친구를 만나서 수다도 떨었다. 친구가 준 농사지은 밤호박과 간편식은 남은 여행동안 아주 일용한 양식이었다.
남편이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갈 때 배웅한다고 버스정류장에 갔는데 정류장에 걸어가면서부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남편과 십여 일 헤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나 혼자 여기에 남아서 내가 걱정하던 모든 것을 이제는 내가 다 해야 한다는 게 그때 실감이 났다. 결국 남편이 버스 타는 건 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남편이 나를 먼저 보내줬다. 며칠이 지나고 그런 긴장이 조금 풀렸을 때 숙소에서 저녁도 먹고 청소와 빨래도 다 하고 책을 보다가 이제 자야겠다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내 옆으로 지네가 지나갔다. 숙소를 정할 때, 이 숙소에서 벌레 한 마리 못 봤다는 리뷰가 결정적이었는데... 지네를 본 게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고 엄청 컸다.
숙소 주인한테 전화를 했다. 밤늦게 미안한데 침대에서 지네가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했더니 어딘가에 지네가 그려진 약통이 있다고 그걸 뿌리면 된다고 했다. 그 약통을 찾다가 지네가 또 나왔다. 다시 전화를 해서 지네는 쌍으로 다닌다던데 가족으로 다닌다던데 더 나올 거 같다고 너무 무서운데 못 잡겠다고 그랬더니 그럼 옆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한테 부탁해 볼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여자 셋이 지내는 집에 밤 중에 남자가 들어온다는 불안함보다 지네를 잡아주실 고마운 분이 꼭 와주셨으면 하고 간절하게 기다렸다. 그분이 고맙고 죄송하게도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잡으려고 하셨는데 한 마리는 놓쳤다. 다시 전화를 해서 여기서 자는 건 못하겠고 환불해 달라는 것도 아니니 근처에 갈만한 숙소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더니 숙소 주인께서 직접 다른 호텔을 예약해 주셔서 밤 중에 되는대로 짐을 싸서 아이들과 급히 도망쳐 나온 일이 생각난다. 자다 깨서 갑자기 짐을 들고 따라 나온 소은이,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엄마가 정신이 나가 보이니 오히려 침착하게 나를 챙겨주던 소현이가 생각난다. 다음 날 남은 짐을 챙기러 다시 숙소에 가는데 다들 씩씩한 척 지네 잡으러 가자고 갔지만 문 앞에서 문도 못 열고 약 먹고 뒤집어져있는 지네를 보고 또 놀래고 돌아 나오면서 지네 못 잡는 지네특공대라며 깔깔대던 날이 생각난다. 난 그 트라우마로 핸들에 있는 스티치 촉감에도 놀랐고 에어컨 바람에도 놀랐다.
아이들은 아직도 지네 그림만 봐도 내 얘기를 한다. 자기들도 무서웠으면서...
미로공원에서 이러다 진짜 못 나가는 거 아니냐고 겁에 질렸지만 스탬프 미션은 다 해야 한다는 애들을 데리고 미로공원을 빠져나오면서 나의 방향감각에 혼자 뿌듯했던 날도 있었고 중산간 지역의 안갯속을 뚫고 노루도 보고 말도 보고 엄청 큰 달팽이를 보고 온 날도 있었다. 식당 웨이팅을 기다리면서 차 뒷자리에 셋이 앉아서 케데헌 노래를 따라 부르던 날, 4.3 평화공원에서 나만 놀라고 아이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날, 깜짝 방문으로 엄마와 남편이 동시에 찾아와서 좋으면서도 짜증이 났던 날도 있었다. 여행이 끝나가면서는 순간순간이 아쉬워졌다. 눈 뜨자마자 나가서 숙소에 들어왔다가 또 나가고 아이들이 여기 멈추자고 하면 멈춰서 대책 없이 물에 들어갔다가 쫄딱 젖어서는 뒷자리에 구부정하게 서서 가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 목소리도 생각이 난다. 벨트도 안 하고 카시트도 안 하고 차에서 서서 노래를 부르다니 엄청난 일탈로 느껴졌겠지.
내가 가고 싶은 곳 데리고 다니려면 소품샵에서 키링 하나씩 쥐어줘야 여행이 순탄해지니까 키링을 몇 개나 샀는지... 남편은 키도 없으면서 무슨 키링을 그렇게 사냐고 했다. 그렇게 끌고 간 우럭튀김집에서 의외로 애들이 바삭바삭하다고 맛있다고 하기도 했고 우도는 못 가도 우도가 보이는 지미오름은 갈 수 있다며 애들을 꾀어서 결국 한 번 더 오름을 올랐다. 금오름 보다 훨씬 높은 곳이었는데 두 번째라고 씩씩하게 올라가던 딸들이 기특했다. 귀여운 딸들을 데리고 성산일출봉에서 다 같이 말도 탔다. 설마 이게 끝인가 싶을 때 진짜 끝나는 짧은 코스였는데 소은이가 탔던 말 이름이 우도여서 셋이 또 깔깔댔던 기억. 마침 물이 빠진 광치기해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라게랑 게를 잡겠다고 다리가 저리게 쪼그려 앉아있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한 시간, 10분이 아쉬워지는 마지막 날은 날은 마음이 바빴다. 일 년에 몇 개월만 입산 가능하다는 한남 사려니오름숲을 예약해서 갔는데 몇 번의 오름 등산과 걷기로 단련된 아이들이 한 시간가량을 힘들단 말없이 신나게 걸었다. 마지막 만찬으로 유명하다는 파스타집에서 식사를 했다. 정원에 커다란 올리브나무가 있는 곳이었는데 제주도엔 정원에서 올리브를 키운다고 신기해하며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걷기도 하고 기다리면서 배고파서 다들 잘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욱 잘 먹었다. 다시 숙소로 가는 길에 성판악을 지나가는데 날이 좋아서 한라산이 한눈에 다 보였다. 여기서 출발하면 별로 멀지도 않을 거 같은데 한번 가볼 만하겠다 생각을 하며 지나갔다. 밥 먹고 운전을 하다 너무 졸려서 커피만 사러 간 송당동화마을에서 제주도 텀블러를 사야 한다고 해서 진짜 마지막 기념품이라고 하나씩 들고 나왔다. 끝없는 기념품 타령.
마지막 바다 구경을 하자고 해안도로로 운전을 해서 가는데 한 번만 바다에 가면 안 되냐는 아이들의 요청에 차를 세우고 늘 차에 실려있던 수영복을 갈아입고 월정리랑 세화 사이 어딘가에서 차를 세웠다. 해수욕장은 아니었는데 내려가보니 물이 빠져있어서 한참을 나가도 아이들 발목까지 오는 얕은 물이었다. 그림책에서 들어볼 법한 바다운동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바다였다. 사람도 없어서 셋이서 신나게 술래잡기도 하고 바다에 앉았다 누웠다 뒹굴면서 신나게 웃고 떠들던 마지막 날이 많이 생각이 난다. 다시 제주여행을 하더라도 그런 순간이 또 올까? 몇 번을 생각해 봐도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운 순간이다. 너무 신나고 좋았는데 진짜 다시 그런 순간이 없을 거 같아 조금 슬퍼지기까지 하는 그 장면은 아이들이 많이 커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앞으로의 아이들과 여행도 즐겁고 행복하겠지만 10살, 6살인 지금처럼 순수하고 해맑고 그저 귀여운 나이에 이토록 좋은 계절에 했던 이 여행만큼 인상 깊지는 않을 것 같다. 더우면 더운 날대로 흐리면 흐린 날 대로 노느라 바빴던 2주.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로 떠났던 내가 스스로 뭔가를 극복해 낸 거 같은 느낌도 들었고 이제 혼자서도 이 아이들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겠다 자신감도 생겼다. 제주도 얘기만 나와도 서로 할 말이 너무 많은 우리 셋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