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와 함께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으로 이어지는 해설을 듣고 왔는데 물론 그 프로그램도 의미가 있었지만 이 싱아책을 읽고 있던 때라 작가가 살았던 동네가 여기 근처일 텐데, 끝이 안 보이게 길고 높은 담장의 앞마당에서 놀고 엄마에게 혼이 났다던 곳이 여기인지 저쪽인지 둘러보는 재미가 더 있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말부터 흥미로운 문장들이 있었다. 「가족이나 주변인물 묘사가 세밀하고 가차 없는데 비해 나를 그림에 있어서는 모호하게 얼버무리거나 생략한 부분이 많았다. 그게 바로 자신에게 정직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자서전 비슷한 거려니 했기 때문에 솔깃하게 들었다. 요컨대 좀 쉽게 써 보자는 배짱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바로 보기처럼 용기를 요하는 일은 없었고, 내가 생겨나고 영향받은 피붙이들에 대한 애틋함도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책을 다 쓰고 나서 적는다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을 하다니 또 얼마나 신랄하게 가족들을 적어놨을까 싶어 기대가 되었다.
책에서 작가가 가장 가차 없는 묘사를 한 가족은 엄마였다. 쥐뿔도 없이 거만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른 엄마, 어울리지 않는 짓 하는 데에는 선수라고 언급한 도무지 이상한 사람. 개성에 지내던 딸을 서울로 데려간다니 반대하던 개성 가족들에게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딸의 머리를 빗겨주는 척 뒤통수가 다 보일만큼 짧게 싹둑 잘라버린 엄마.
엄마는 본인조차 무엇인지 모를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며 딸을 밀어붙였다. 딸도 크고 나서 느꼈겠지만 나도 책을 읽으면서 신여성은 결국 스스로 서울에 입성해서 말뚝을 박고야 만 엄마가 아닐까 생각했다. 시골 양반집 맏며느리가 장손과 어린 딸을 데리고 서울로 떠나버리고 사대문 밖에 살아도 학교는 문안에 좋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위장전입까지 해두는 철저함에서 그 시대에 여자아이의 교육을 그 정도까지 염두에 둔 것도 실행한 것도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엄마 본인도 해독하지 못한 신여성을 자기에게 강요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무엇인지도 모를 신여성이 되려는 마음을 먹지도 않았지만 이어지는 책인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라던지 다른 작품들에서 그녀가 신여성이 되어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현대사를 지나오는 이야기, 개인의 자서전, 훌륭한 작가의 문장들로 이 책을 평가할 수 있겠지만 나는 엄마와 딸의 관계성에 계속 마음이 끌렸다. 내가 딸을 키우는 엄마이자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딸이기 때문일까.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끝없는 하소연이 될 거 같아 더 적고 싶지는 않다. 다만 딸로서 나의 바람은 내가 엄마를 부모에 대한 감사나 부채감으로 사랑하기보다 그녀의 허술하거나 귀여운 구석을 발견해서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것이다. 또 엄마로서는 딸들에게 조금은 따라 하고 싶은(롤모델이나 보고 배울 존재라고 하기엔 부담스러우므로..) 성인 여성으로 곁에 남고 싶은 바람이 있다. 사실 가장 바라는 것은 그녀들과의 나의 사랑은 나와 엄마의 사랑과는 다른 모습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