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by 초이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서 등산을 갔었다. 집 근처의 여러 산에 올라가 봤지만 가장 강렬한 기억은 지리산 등반이다. 그때의 기분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스름한 새벽에 출발하여 끝도 없이 걷고 또 걸었던 것만 생각이 난다. 무튼 등산은 부모님을 따라가야만 했던 시절의 경험이고 성인이 되어 스스로 산에 가보고자 했던 적은 없었다. 작년 가을 소백산에 갈 때도 나는 등산이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지난 영주 여행 중에 바라본 소백산맥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고 남편과 둘이서 여행 가는 것이 정말 간만의 일이었기에 가겠다고 했다.


이번 여행은 남편이 준비를 한다고 하여 그에게 모두 맡겼다. 남편은 따로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많이 걸어 다니기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쯤은 해파랑길이나 지리산 등반을 하기도 했다. 나도 나름 체력준비를 한다고 우리 집에서 20분이면 올라가는 뒷산을 몇 번 가보고는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남편은 등산용품을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는데 최단코스라면서 그리고 그리 어려운 코스도 아니라면서 뭘 사느냐고 엄마에게 등산스틱만 빌린 채 떠났다. 남편은 나에게 우리가 갈 코스정보를 비롯한 블로그 후기들을 보내줬었는데 '어차피 가보면 알 텐데 왜 자꾸 보라는 거지' 생각하며 읽어보지 않았다. 나는 산을 올라가며 한 번은 읽어볼걸,,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걷고 있지 않을 텐데 생각했다.


오전 6시에 등산코스가 시작하는 곳에 도착했는데 너무 깜깜해서 조금 밝아지면 올라가기로 했다. 7시가 조금 넘어서 등산을 시작했다. 살짝 춥기는 했지만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리고 말 그대로 상쾌한 아침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거리가 벌어졌다. 할 수 있겠냐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다정한 질문에도 화가 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둘 거 같냐고 잘 따라갈 테니까 먼저 가라고 했다. 남편이 멀어지면 힘들어 죽겠다고 혼잣말을 하며 올라갔다. 남편은 이 코스가 최단시간 코스라고 했었는데 그 말을 들을 때 한번쯤은 산 정상을 최단시간에 올라는 법에 대해서 생각했어야 했다. 초반의 나무데크를 지나고 나서는 자갈밭, 돌계단, 나무계단, 철제계단.. 아이들이 하던 게임 무한의 계단 실사판이 바로 여기였다. 계속 올라간다. 물소리와 새소리는 사라지고 청진기로 심장박동을 듣는 것처럼 내 숨소리와 심장소리만 들렸다. 남편이 보내 준 정보들을 읽지 않고 온 내 탓을 하다가 나중에는 나 등산 안 하는 거 모르냐고 초보자를 이런데 데려오면 어떡하냐고 또 짜증을 냈다.


끝없는 계단을 올라서 내가 생각하던 산길(흙과 낙엽이 있는 울퉁불퉁한 좁은 길)을 조금 걸으니 소백산 정상 능선에 다 달았다. 드디어 눈앞에 계단이 다 사라진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우선 몸이 편하기도 했지만 좌우를 다 둘러봐도 내가 서있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라 하늘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고 산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다란 산맥을 눈으로 좇으며 새로운 풍경을 보는 재미에 빠질 수 있었다. 비로봉에 도착했을 때보다 시야가 탁 트인 능선을 걸을 때가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등산 준비물을 챙기면서 한라산에서 버려지는 라면국물 때문에 생태계 교란이 우려된다는 기사가 생각나 나는 라면을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소에 라면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뜨거운 물까지 챙기면 가방도 무거워지고 나는 안 먹겠다고 했는데 남편이 무슨 소리냐고 국물 남으면 본인이 다 먹던지 다시 보온병에 넣어오면 된다고 꼭 가져가야 한다며 챙겨갔는데 정상에서 먹은 컵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시원한 바람에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은 다음엔 어느 산 정상에서 이 맛을 느껴보나 잠시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 날 직접 만든 토마토수프도 가져갔는데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컵라면이었다.


한 번 걸어봤다고 눈에 익은 아는 길이 되어버려 하산은 덜 힘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내 의식보다 살짝 풀린 다리가 더 빨리 움직여서 금방 내려올 수 있었다. 흔히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하고 어떠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잘 내려오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글로만 봤을 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는데 산에 올라보니 잘 모르겠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번 등산은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올라가는 길은 그저 힘들기만 했고 내려오는 길은 어딘가 익숙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한 속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인생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 힘듦이 배가 되고 올라간다 한들 그 능선을 얼마나 걸을지 드디어 정상에 가서 라면국물을 한 모금이라도 먹고 내려올지 갑자기 강풍이 불어 라면은 뜯지도 못하고 급히 내려올지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지 않는가. 인생은 등산이 아니라 어느 산맥에서 길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면 좀 더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쓰는 표현에는 그동안 쌓아온 다수의 동의가 있으므로 더 이상 캐어보진 않을 것이다.


인생을 언제부터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다들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정말 모르는 사람과 사실은 알고 있지만 겸손의 표현으로 잘 모른다고 하거나 인생을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며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모르는척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인데 살고 있으면서도 알 수가 없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아니면 인생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생각을 보통 나이가 들었을 때 시작하니 알아보기에 시간이 모자란 것은 아닐까. 조금 일찍 인생을 알아내 보려고 한다면 알 수 있을까. 인생은 알아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사는 것 그 자체니까 모를 수도 있는 건지. 등산을 더 해보면 나도 알게 될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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