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니 장기수급자로 분류되어 9개월간 실업급여를 수령하게 되었다. 실업급여를 수령하기 위해서 초반에는 온라인 강의만 몇 개 들으면 됐는데 수급기간이 끝나가니 구직활동을 필수로 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지금 취업을 할 생각이 없지만 수입이 끊긴 상황에 소중한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꼭 해야 하니 꼬박꼬박 이력서를 제출한다.
이력서를 제출해 보는 것도 십여 년만이다. 그때는 꼭 내 자기소개서를 읽어주길 그리고 뽑아주길 바라며 자기소개서의 내용부터 깔끔해 보이는 문단모양까지 생각하면서 제출을 했는데 지금은 혹시나 나를 뽑을까(?) 걱정을 하며 이력서를 제출한다. 실업급여 때문에 지원을 하긴 했는데 혹시 면접에 오라고 하면 가서 할 말도 없고 가는 것도 귀찮은데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면 실업급여를 당장 못 받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받은 것까지도 환출한다고 하니 (쓸데없는)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지금 당장 일을 안 하고 싶다고 해도 이력서를 제출한 이상 결과는 궁금하다. 차라리 업체에서 이력서 열람을 안 했으면 괜찮은데 불합격은 간절했던 예전이나 지금이나 타격이 크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이제 곧 마흔의 기혼여성으로 어디 딱히 갖다 붙일 곳 없는 경력의 소유자로 요즘 같은 취업난을 헤쳐나가기에는 스펙이 너무 구리다. 지금까지 지원한 모든 곳에서 서류탈락을 하고 나니 '어, 나중에 진짜 일하고 싶어 졌을 때 못하면 어떡하지.'생각에 긴 겨울을 힘들게 보냈다.
일과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다 일을 그만뒀으니 이제 육아와 집안일만 한다.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저녁시간 전까지 할 일을 마치게 하고 싶은데 그들도 나름의 사회생활을 끝내고 집에 와 그저 쉬고 싶기만 한 눈치다. 그 시간이면 나도 오전부터 무언가로 시간을 보내고 조금 지치고 딱 쉬고 싶은 시간이다. 힘을 내서 아이들을 다독이며 같이 하기에 나의 에너지가 부족하다. 근데 화내고 협박할 에너지는 남았는지 일주일 중 3일 이상은 서로 기분이 상한채 저녁시간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학원에 다니는 습관은 만들지 않겠다고 학원을 안 보내는데 이러다 요즘 중요하다는 공부정서를 망쳐버릴까 걱정이다. 공부정서는 둘째치고 일할 때는 함께하는 시간이 적으니 늘 미안한 마음을 깔고 같이 있는 시간에는 즐겁게 지내려 애썼던 거 같은데 이제는 같이 있는 게 일상이 되니 그런 마음과 노력은 사라지고 짜증과 버럭버럭 화만 남았으니 기본 정서도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다. 집안일은 말해 무엇하랴. 원래도 집안일에 취미가 없는 나는 이 상태를 유지하는 청소만으로도 쉽게 지친다.
돈을 계속 안 벌기는 좀 그런데 꼭 노동으로 벌어야 하나? 집에 있다고 돈 벌 방법이 없나? 나는 원래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 금융소득이 많아져서 종합소득세 대상이 되면 건강보험 등 무엇이 달라지는지도 벌써 알아봤다.(일단 올해는 종합소득세와 일체 무관하다). 작년 말부터 투자계좌가 널뛰기 시작하면서 나의 멘털도 같이 날뛰었다. 실업급여도 끝나가고 이제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올 수가 없는데, 내가 믿는 것은 이 계좌 두 개뿐인데 여기에서도 돈이 사라지고 있다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월급은 참 소중한 것이었다. 월급을 받을 때는 아무리 계좌가 반토막이 나도 위험한 투자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이럴 때 더 사서 평단가를 낮추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얼마 안 남은 예수금으로 버텨야 하니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투자를 좋아한 것은 잘 되어서 수익이 좋았을 때만을 말한 것이다. 어떠한 투자상품도 원금보장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선택한 상품은 내가 생각한 시점(상당히 단기간..)엔 수익이 되어있을리라 그저 믿었다.
퇴사를 하고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육아와 투자였다. 내가 맡은 일을 '잘' 해야 하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하는 것 같지 않고 이 두 가지 항목에서 잘한다는 기준은 또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몇 달간 마음이 힘들었다. 사회성이 아주 좋지는 않아도 어딜 가든 적응력 하나만큼은 뛰어나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준비하고 퇴사한 이후에도 아직 이 삶에 적응을 못하는 것을 보면 적응력도 영 아니었다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