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엄청난 추위가 예상된다고 했는데 초겨울에 잠시 춥더니 지금껏 그리 추운 날은 없었다. 1년에 한 번 하는 등굣길 녹색교통봉사날인 어제 갑자기 아침기온이 뚝떨어졌다. 작년엔 오전반차까지 써서 교통봉사를 갔는데 절반은 안 왔길래 나도 올해는 가지 말까 생각도 했으나 몇 주 전부터 교통봉사날을 세어주는 첫째 때문에 옷을 껴입고 나갔다.
이번에는 교문 앞 사거리에 배정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이 차에서 내렸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에서 1km 이내에 살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주변 엄마들이 걸어 다니기 멀다라고 하거나 차로 데려다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니 무슨 1km 걷는 거 가지고 유난이지' 생각했다.
나의 초등학교 등굣길을 말해보자면 1학년 때는 집 앞에 시멘트공장이 있었다. 늘 그랬듯 우리 집은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는데 어느 날은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갔던 날이 있었다. 큰길에는 레미콘차들이 주로 다니고 인도는 당연히 없고. 조마조마하며 걸어갔는데 시멘트공장 앞에 엄마가 나와있던 기억이 난다. 1학년때의 기억은 거의 지워지고 없는데 혼자서 집에 걸어갔던 그날만 기억이 난다.
2학년 때도 다른 동네이지만 여전히 산속에서 살았는데 그래도 그 동네는 여럿이 모여 살아서 아빠 직장에서 학교까지 통학버스를 운영해 줬다. 등교는 편하게 했어도 하교는 알아서 해야 했는데 가을이면 큰길을 지나서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에 말라죽은 뱀들이 많았던 기억이 나고, 3학년 때는 진짜 시골학교를 다녔는데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논길이어서 둑길을 따라 걸으면 벌레나 곤충이나 작은 뱀도 가끔 만났다. 그래도 그 길들이 무섭기보다는 가다 보면 누구든 한두 명은 만나서 이야기하며 장난치면서 걷는 게 재밌었고 오늘을 누구랑 집에 가게 될까 설레기도 했다.
5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도시에 살게 되었는데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래도 여전히 산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 제일 빠른 길로 통학을 하려면 지금으로 말하면 관악산 둘레길 같은 짧은 등산코스를 지나가야 했다.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바리맨도 만났다. 무튼 나는 서울에 사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어느 날은 어떤 부자가 우리 집 앞을 지나면서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이런 집에 살아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 또 다른 동네에 살 때에는 대부분 엄마아빠가 차로 데려다주시긴 했지만 걸어서 집에 오는 날은 근처 아파트 공사장에서 톱이 날아온 적도 있었고 여름엔 집 바로 옆에 있는 하천이 넘쳐서 자다가 대피하는 날도 있었다. 습할 때는 자고 일어나면 집에 버섯이 핀다거나 문지방 구멍으로 두더지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나 혼자 쓰는 방이 생겨서 좋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드디어 나도 걸어서 5분이면 학교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게 되었다. 8시 30분에 일어나도 옷 입고 세수하고 지각이 아니라니 고등학교 시절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큰 이유 중 하나다.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봐도 평범한 등굣길은 아니었다. 요즘같이 별별 범죄뉴스가 쏟아지는 세상에 우리 딸들이 저런 길들을 지나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리고 나한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커서 이런저런 얘기를 부모님에게 했었는데 두 분은 깡시골 출신으로 더 극한 통학환경이어서인지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있는 학교에 줄줄이 차를 타고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그러는 나도 가끔은 차로 1분이면 가는 거리를 태워다 준다. 더워서, 가방이 무거워서, 비 와서, 추워서, 그냥을 이유로 10번 말하면 한 두 번 태워다 주는데 이해는 안 되지만 이 정도 번거로움으로 너의 아침이 기분 좋을 수 있다면 못할 일은 아니니까 생각하며 데려다준다. 그래도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서 신나게 수다 떨며 가방 무게를 잊은 채 걸어가고 더운 날 땡볕에 걸어오다 아껴둔 용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을 느껴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