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도 기록하기
12월 중순이 넘어가면 슬슬 한 해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고 크리스마스와 동시에 일 년이 끝난 거 같다. 12월에도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고 또 31일 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한 해의 마무리를 미루기도 했고 또 24년도는 정리할 게 많기도 했다. 31일이 지났으니 이제 온전한 1년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23년 말, 퇴사 결정과 동시에 하와이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서 아이들과 되는대로 섬을 돌아보고 한국에 와서는 아이들의 새 학년 시작과 동시에 나의 새로운 생활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퇴사는 못했고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비행기를 타서 전날 일했던 복장 그대로 호텔 체크인을 했다. 그래도 신혼여행 때 그 기분에 한껏 취해했던 '우리 결혼 10주년에 다시 오자'라는 그 약속을 남편과 지켜낸 것이 뿌듯했고 조금 변하긴 했어도 대부분 그때와 비슷한 하와이가 참 좋았다.
긴 시간의 비행을 아이들이 견딜 수 있을까, 가서 잘 먹고 잘 놀까 조금 걱정했는데 나보다 더 여행을 즐기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큰 행복을 느꼈다. 일주일의 짧은 여행이었는데도 아이들은 일 년 내내 하와이 이야기를 했다. 이번 주말에 뭐 하고 싶냐는 질문에도 하와이를 가자고 했으니. 하와이가 보고 싶어 간 여행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너무나 즐거워 보였던 아이들의 모습이다. 우리 결혼생활 10년의 결실?인 둘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의 수십 년이 기대가 되면서도 내가 잘해야 할 텐데 하는 긴장과 부담도 느껴졌다.
여행으로 다잡은 마음으로 새로운 근무지에 적응은 잘했는데 적응을 다 끝내고 나니 더더욱 퇴사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이사도 많이 다니고 전학도 많이 다녔다. 이동이라면 낯설 것도 없고 적응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없었다. 그래서 때맞춰 근무지를 옮기는 이 직장을 다니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운명 같았던 직장에 한 번 마음이 꺾이고 나니 두 번째 꺾임은 다시 이어 붙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12년 동안 해왔던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직장을 정리하는 것은 작년에 했던 정리 중에 제일 간단한 일이었다. 퇴직 신청을 하고 남은 연차를 소진하고 책상정리를 해서 작은 종이봉투에 내 짐을 싸서 나오면 그만이었다. 직장을 정리했더니 인간관계도 통장도 정리가 되었다.
나는 한 곳에 3년 이상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 때 한 번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두 번째이다. 지금 사는 곳은 올해 2월이 되면 만 5년을 거주한 곳이자 내가 태어나서 가장 길게 산 집이 된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떠나는 철새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이사를 다녔더니 나도 2년쯤 한 곳에 있으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 이 집을 떠날 환경은 안되니 인테리어라도 바꿔볼까 하다가 그것도 알아볼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깔끔하게 정리된 통장이 내 마음을 잡아준다.
일단 문 닫으면 안 보인다는 이유로 내팽개쳐 두었던 팬트리와 드레스룸을 정리했다. 팬트리에는 그동안 사다 놓은 정리용품조차 정리되어있지 않았다. 어찌어찌 정리를 하고 나니 쟁여놓은 정리용품들이 또 많이 남았다. 이제는 정리를 위한 정리용품은 사지 않겠다 다짐했다. 제일 정리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던 드레스룸도 정리했다. 출근용으로 샀던 옷들 대부분을 버렸고 몇 년 동안 안 입었지만 비싸게 사서 버리기 아까워 가지고 있던 옷들도 버렸다. 신발도 가방도 손이 안 가는 것들은 거의 버렸다. 헌 옷 수거 업체를 불러 무게를 재었더니 100kg이나 되어서 4만 원을 받았다. 내가 그동안 정리를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내가 정리할 수 있는 용량 이상을 가지고 있어서였음을 깨달았다.
국어사전에서 정리를 찾아보면
1.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2.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함
3.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음
4.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지 아니하고 끝냄
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나는 일 년 동안 모든 종류의 정리를 한 것이다. 집안의 물건들을 질서 있는 상태로 만들었고 중구난방에 흩어져있던 서류들과 복잡했던 내 머릿속을 분류했으며 문제가 되던? 직장을 말끔히 없애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끝냈으니 말이다. 올해도 계속해서 정리를 하겠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정리할 엄두도 못 낼 만큼 미루지 않기, 정리하지 못할 만큼 사지 않기,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정리하기를 약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