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렇게 지내요.

어느새 4개월 차 무직자

by 초이

브런치도 블로그도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어쩌면 핑계일 수도? 발전하는 모습 자체로도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ㅎㅎ 블로그는 수익화를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컨셉이 안 맞는 거 같다. 브런치는 역시나 로그인도 하기 전에 제목부터 남다른 다른 작가들의 글에 먼저 손이 간다. 그리고 그 글들을 읽다 보면 저만큼 쓸 자신이 없어지고 안 써버리기.. 또 11월부터는 코인을 들여다보느라 다른 활동을 할 여력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직장에 다닐 때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작한 일에 한계를 느끼고 포기하려고 하는 것과 한 가지 일을 핑계로 다른 일들을 제쳐두는 것. 직장에 다닐 때 나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직장에서는 워킹맘이라는 핑계로 어느 지점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았고 또 집에 와서는 직장에서 지쳤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들을 못 본 척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디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고 힘들어했고. 퇴사를 할 때 걱정했던 것들 중 하나가 이제 어떤 핑계로도 한 발짝 뒤로 빠질 수가 없는데 발가벗져지는 듯한 그 기분을 내가 극복할 수 있을까였다. 잘해서 발가벗겨지지 않으려 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하고 안 벗겨지길 바라는 이 마음.


무튼 아무리 기준을 낮추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져도 그것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고 있어서 작은 목표라도 세우고 해 나가는 일상을 지내려고 노력 중이다. 평일 중 3일은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어딘가에 글을 남기고 영어공부도 하루에 10분씩은 하기 매일 투자수익으로 얼마 벌기 등등. 모든 일을 다 채워서 하지는 못하지만 똑같은 30%의 달성률이라고 하더라도 3개 중에 1개만 하는 기분이랑 10개 중에 3개 하는 기분은 또 다르기 때문에 일단 To-do List에 많은 일을 넣고 본다.


일상 중에 가장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은 운동이다. 아파트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닫는 월요일에는 동네 뒷산 등산을 하고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열면 가서 한 시간쯤 운동을 한다. 걷기 좋아하는 동네친구랑 신나게 걷고 먹기도 하고. 인바디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재밌고 처음 시작했을 때 바들바들 떨면서 했던 그 무게가 가뿐하게 느껴지면 신이 난다. 그러다가 만약 내가 회사에 다닐 때에 새벽이나 밤에 시간을 내어서 운동을 했다면 또 다른 결정을 하게 됐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글쎄, 내가 왜 잠까지 줄여가며 운동을 해야 하느냐고 며칠 하다 때려치우지 않았을까.


다니던 직장에는 여자 선배들이 많았는데 다들 비슷한 삶이다. 친정엄마 80%, 시가 10%, 돌봄선생님 혹은 본인과 남편만으로 키우기 10%? 사실 시터나 남편의 양육은 5%도 안될 거 같지만.. 나 사회생활 하겠다고 엄마에게 애들을 맡기자니 엄마가 희생자가 된다. 우리 엄마의 경우에는 하고 있는 활동도 많아서 애 둘을 보라고 하면 그것들을 포기해야 하기에.. 시가는 일단 거리가 멀고 나도 편하지가 않다. 돌봄선생님은 정말 구하기가 어렵고 내 마음엔 들어도 아이랑 안 맞으면 아이가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남편을 집에 앉혀놓을 수도 없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이 된다는(직장을 때려치울 수 없다는) 숨 막힘.


나는 첫째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했을 때에는 친정부모님이 100% 봐주었고 둘째를 낳고 복직했을 때는 오전에는 엄마가 오후에는 돌봄 선생님이 가끔씩은 시부모님이 오셨고 학교/유치원 행사에는 대부분 남편이 참석했다. 이제 내가 직접 돌보고 있으니 4명이 나눠하던 일을 나 혼자 하게 되었다. 전담인력 1명의 빈 곳을 4팀이 채우고 있었다니 나는 대체불가한 인력인 것이다 ㅎㅎ 체력적으로 힘든 날도 있지만 나도 내 손으로 내 할 일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하고 어딘가 불안해 보였던 아이들의 일상도 안정되어 보인다.


그래도 돈을 벌다가 이제 돈을 벌지 않는다는 점은 힘들다. 20살 때부터 나름 고액알바만 해왔고 직장 또한 연봉으로는 어디에서도 아쉽지 않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버는 돈의 규모를 떠나 돈을 버는 활동을 멈춘 것 자체가 낯설다. 당장 어디 나가서 돈 벌 생각이 없으면서도 나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돈을 버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었던 것은 아닌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투자활동으로 ETF와 코인도 하고 있는데 이것도 쉽지가 않다. ETF는 길게 보고 하고 있으니 월급처럼 바로바로 들어오는 수익이 되지가 않고 코인은 하면서도 이것이 투기와 다른 게 무엇인가 싶지만 이제 제도권으로 들어온 수단이 되었으니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투자는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거기에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반대하면서 방위산업에 투자를 한다거나 이번 계엄사태 같은 위기상황에도 저점 잡을 기회라며 기대하는 것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진다. 양자컴퓨팅 관련된 ETF에 투자를 하고 동시에 코인거래도 한다. 얄팍한 철학이 안 그래도 어설픈 투자활동을 더 어렵게 한다. 이것은 내가 철학도 주머니도 가난한 투자자이기 때문 아닐까? 지금 돌리는 자금이 돈을 벌지 않는 내 상황에 비해 조금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 좀 줄여나갈 생각이다. 내 생각이 정리가 되면 그때 규모를 키워보는 것으로.


8월까지 일을 하고 9월부터 11월까지는 캠핑이며 등산이며 짧은 여행으로 가을을 가득 채웠다.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출근 걱정이 없다는 게 좋았고 다녀온 짐들을 일주일 내내 내팽개쳐 두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의 여운이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도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의 장점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며 남편은 모두 자기 책임을 하는 곳으로 돌아가고 집에 남겨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늘어지고 싶으면 늘어져 있을 수도 있지만 학교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남편이 퇴근하고 왔을 때 뭔가 달라져 있는 모습이 아니라면 나만 게으른 하루를 보낸 것 같은 부끄러움이 들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움직인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지내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할 일 내가 했으면 만족감이 들어야 할 텐데 나 스스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일까?


무튼 나 스스로 채워진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어느 날, 어느 순간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날짜를 보니 이제 딱 4개월이 지났다. 퇴사를 고민할 때 가장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내가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데,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데.'였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 많은 생각을 하는 중에도 '더 빨리 그만둘걸'하는 마음이 가장 큰 걸 보면 좋은 결정을 한 것 같다. 언제나 어려운 글의 마무리..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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