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과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아빠는 어딜 가도 그 지역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조선시대의 사건들을 줄줄이 꿰고 계신다. 늘 귀담아들은 건 아니지만 평생 흘려들어온 이야기에 곁들인 아빠의 사관이 내 기초지식과 상식의 기준이 되었다. 5천 년 역사에서 아빠와 의견이 갈리는 시점은 박정희의 등장부터다. 경상북도가 고향인 1960년대생 남성, 1980년대에 사관학교에 입학해서 30년을 근무한 군인인 아빠는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본인 세대가 극복해야 할 군인의 오점으로, 박정희는 과오가 있으나 우리나라를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 사람으로 말한다.
나 스스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첫 대통령은 김대중대통령인데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고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가수라는 마이클잭슨과 친구라고 하는 게 어린 마음에 엄청 대단해 보였다. IMF를 최단기간에 극복한 나라가 되었다는 뉴스도 그를 아주 멋지게 보이게 했다.(다 커서 IMF의 권고안을 알고 나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지만..)
고등학생 때는 학교 근처에 대통령이 방문하는 행사가 있어 간 적이 있는데 행사 전에 경호원들이 돌아다니며 대통령이 싫어도 물병 던지고 소리 지르고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때는 우리 또래에 프리챌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유행이었는데 댓글에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밈이 줄줄이 달리던 때였다.
고3 때 근현대사 수업을 들으면서 아빠에게 들어온 이야기들, 내가 기억하는 대통령, 탄핵위기를 넘긴 그때의 대통령까지 타임라인을 정리하면서 큰 재미를 느끼면서도 놀랍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으로 온 나라를 잘살게 해 줬다는 박정희가 사실은 지독한 독재 자였다는 게, 우리가 살았던 광주에서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게, 내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도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을 잡아가고 사람들은 또 시위에 나섰다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교과서에서 짧게 지나간 그 사건을 대학생이 되어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서 영상으로 보고 며칠 동안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나중에 영화를 다시 찾아보다 광주시민들은 그때의 잔혹함을 영화가 다 담아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욱 큰 충격이었고.
아빠가 먹고살만해진 그 시기의 대통령을 기억하듯 나도 평화로운 유년시절을 보낸 그때의 대통령을 기억한다. 한국 영화 최초의 천만관객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지루하기만 했던 엄마아빠의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오빠들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고, 월드컵 경기를 보라며 학교에서 일찍 집에 보내기도 했고, 격주로 토요일은 수업을 안 하는 놀토가 생겼다. 그리고 그때의 문화적 경험들은 더 넓은 세상을 궁금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나를 채워주는 취미생활이 되었다.
내가 조금 크고 나서 나의 성향이 뚜렷해지자 아빠랑 뉴스를 보며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선거철이 되면 서로 의식적으로 다른 얘기를 하고 평소에도 정치적 사건에 대해 말을 하게 된다면 서로의 발언 끝에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는다. 아마 아빠는 나를 보며 저게 요즘 진보 애들 생각인가 싶을 것이고 나는 아빠가 바로 찐 TK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습게도 나는 아빠를 통해서 역사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말이다.
내 딸은 2016년에 태어났다. 나중에 역사를 공부하며 본인이 태어난 해에 백만 명이 모여 촛불집회를 했고 결국 대통령이 쫓겨났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초등학교 2학년때는 대통령이 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내가 어릴 땐 나라가 혼란스러웠구나 어림 짐작하길 바란다. 아이가 자라면서는 잘못된 일이 뉴스에 나오다가도 곧 바로잡아 간다는 뉴스를 들으며 사회에서 안정감을 느끼길 바라고 질적으로 발전하는 문화 콘텐츠를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길 바란다.
아이가 커서는 누구와 같이 뉴스를 봐도 서로 입을 닫는 게 최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색을 가져도 큰 정의 안에서는 같은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쭉 적고 나니 굉장히 이상주의자 같은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자기의 이상향을 꿈꾸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게 이상적인 이상주의자 아닌가(바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