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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Oct 03. 2018

내 주름은 내가 알아서 할게

2-3 

 

   언젠가부터 시간이 내 얼굴 위에 남긴 흔적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눈가에 짙게 그어져 버린 웃는 주름에 대고 "여자 애가 관리 좀 해라" 라며 줄기차게 지적하는 남자 사람 친구 때문이었다. (웃으면 생기는 주름인데 어쩌라고, 웃지 말라고?) 좋다는 아이크림을 모조리 섭렵하며, 유행하는 뷰티 프로그램을 챙겨봤다.

   한 번은, 즐겨보던 프로그램에서 눈가 주름을 없애는 노하우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소개할 방법으로 몇 년간 꾸준히 관리한 일반인의 얼굴을 먼저 보여주었는데, 30대처럼 보였다. 맙소사, 그 여성은 50대였다! 이후 당연히 들뜬 마음으로 지켜봤고, 곧이어 공개된 방법은 간단했다. 바세린과 식염수를 일정 비율로 섞어 화장솜에 듬뿍 바른 뒤 반창고를 이용해 눈가 주름 부위에 15분 정도 붙이고 있으면 된다. 그 자리에서 이 방법을 시연해 보이며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즉각적인 효과도 어필했기에 여성으로 구성된 방청객들과 출연진들도 그 노하우를 따라 하기 바빴다. 여기까진 좋았다.

  “부지런한” 관리가 여성을 아름답게 만든다면서 자기관리를 통해 젊어 보이는 그 여성을 추켜세웠다. 순간, 내 안에서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여성을 추켜세우는 패널들의 모습에, 눈가에 주름이 생겨버린 나는 그 50대 여성보다 못한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누구나 같은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기에 누구나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 주름은 지난한 세월이 오롯이 자리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유독 여성들에겐 이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예뻐 보이고 싶은 것은 여성의 본능이기도 하다. 나도 그 본능에 따라 여성으로서 당연히 예뻐 보이고 싶고,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뷰티 프로그램의 주름방지 스킬을 아주 자세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지속하기 위한 여성들의 높은 관심의 본질이 여성의 본능에서만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여성은 나이를 먹지만 나이 들어 보이면 안 되는 것, 그것이 이 사회가 여성이라는 젠더에게 기대하는 바이기에,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는, 나이가 들어 주름이 생긴 여자는 아름답지 않다며, 나이보다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는 것은 자기관리를 잘한 훌륭한 여성으로, 제 나이보다 많아 보이는 것은 자기관리를 못한 게으른 여성으로 만든다. 그저 자연의 섭리일 뿐인데 그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것이 위대한 일인 듯 부추기고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죄책감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이 점을 더 자극적으로 이용한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여성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재앙이고 주름살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주름살이 재앙이 된 여성 젠더들에게 안티에이징 제품은 필수품이 되어가고, 그들의 뜻대로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안티에이징 제품이나 뷰티 프로그램의 본질이 가져오는 더 큰 문제는 나이 듦이 어느 순간 정말로 재앙 같이 느껴져 나와 타자를 쉽게 평가해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적 시선은, 스스로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타자를 바라볼 때는 주름이 있는 여성이 마치 관리를 하지 않은 게으른 여성인 것처럼 가치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유독 여성의 나이와 주름에 민감한 사회의 부조리함을 자각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스로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여성의 나이에 민감한 사회가 단박에 바뀔 리 없으므로, 사회에 발 딛어야 하는 한 사람이자, 미에 대한 본능을 지닌 여성으로서 여전히 최소한의 관리는 하고 있다.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연스러움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날이 올 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나이와 주름이 주는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내 눈가 주름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주름 쨍하게 웃으며 당당히 말한다.

  

 내 주름은 내가 알아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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