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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범 Sep 03. 2017

씹어 삼킨 도화지

하얀 도화지를 먹는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수, 도화지를 먹는다.

그걸 먹으면 나는 도화지를 낳는다.

그러면 내가 도화지로 다시 태어날 것만 같다.


퍽퍽한 도화지를 먹는다.

목이 메고 숨구멍이 찢기며 도화지를 삼킨다.

그러면 나는 도화지를 낳는다.

그 위에 바위를 씻는 바람을 그린다.

바위는 씻기지만, 바람은 또 바람.

존재는 또 존재.


사람이 아니어도 존재일 수 있는걸.

도화지에 그려진 바람으로 배운다.

나는 씹어 삼켜진 도화지, 그 위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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