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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이문숙 Apr 04. 2023

비 오기 전

-구름의 선반

윤나리계곡은 물이 얼마나 불었을까. 파서탕은 어느만치 더 깊어졌을까. 어유지리魚遊池里는 얼만큼 더 멀어졌을까.


물고기 혓바늘이 돋는다. 물풀 발바닥이 퉁퉁 붓는다. 축축한 무연고자 바람이 분다. 구름이 구름을 바짓단처럼 뜯으며 흐른다.


호수의 물 앞에 쭈그리고 앉아보니, 실어失語의 하얀 물안개 올라온다. 백일몽 같은 벚 떨어진다.


그때 그 계곡에서 만났던 찬규라는 이름과 주홍이라는 이름의 그들은 어디서 뭘할까.


우리는 물이 한껏 불어난 계곡에서 같이 물을 건넌 적 있다. 공무도하한 적 있다.


그때 구름의 선반에서 꺼내 신은 신발은 찔꺽대었고 바지는 척척해서 종아리 휘감으며 우리를 물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무슨 아집으로 좋은 날 다 고이 놔두고, 물 편도선처럼 붓는 그 으르렁대는 위험한 계곡을 찾아나섰을까.


되려, 장마 때 구름이 풍성하고 괴기하여 그림 그리기 좋다던 그들은 지금도 그림을 그릴까. 지금도 사람을 집어삼키려 했던 그 콸콸대는 계곡을 찾아나서고 있을까.


이후 수묵화 속에는 그때의 폐자재 트럭 같은 구름이 척척 쌓여있다. 그러다가 급속으로 주행을 하거나 커브를 하면서 못자국 쑹쑹한 널판지 하나를 나에게 던져준다.


온전한 백지 말고 여기다 뭔가 그려봐. 할 수 있다면 해 봐.


그런 날에는 구름의 실어증과 구름의 자폐가 있어 나는 그날 보았던 몇 명을 집어삼켰을 지 알 수 없이입 쩌억 벌린 넘실대는 물살을 그려본다.


그걸 뜯어먹던 뚱뚱한 물고기나 이끼들. 아니다. 그리지 않고 널판지에서 뽑은 대못 하나로 새기고 파낸다.


물 속 일은 나 몰라라 우아하게 긴꼬리제비나비 세찬 물살 물굽이를 끌고 어디론가 넘어가는.


그날의 윤나리계곡은 뻔덕뻔덕 벚꽃의 백일몽 위로 쏟아진다. 우리는 물 없는 계곡 속에도 익사할 수 있다.


익사하여 백년잉어 밥이 되거나 인조 바위 위에서 축축한 등 말리고 있는 자라의 두꺼운 피부가 될 수도 있다. 호수에 한쪽 발 담그고 있는 벚나무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고찬규, rainy day, 한지에 채색

#봄날은간다#이상기후#기후행동#고찬규#명지산#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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