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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이문숙 Jan 18. 2023

그럴 리

-내 사랑 안느AANE

*

‘그럴 리’가 만무해요

뒷바퀴에 물컹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수양벚나무는 썬팅 잘된 차창 같았아요

운전대에 올려놓은 손이 가즈런한 행성 같았어요


퍼둥대던 하얗고 뽀얀 덩어리가

급기야 바닥에 누워 버렸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사랑하는 안느가 그럴 리

가로등 모형안구가 실핏줄이 터지며

반짝 켜졌어요


그제서야 차주인은 안느를 멈추고 나와

차 키로 덩어리를 쿡쿡 찔러 보아요


얘야 얼른 일어나

안느는 살해범이 아니야

착하고 우아하고 온순하단다


벚꽃 젤을 칠한 모조손톱으로

덩어리를 뒤집어 보다가

경직된 덩어리를

다시 한 번 광물성 차 키로

쿡쿡


그러더니 안느를 주차하고는

뒷처치도 없이 냅다 가버리고 말아요


호수 수면은 순간 파고 없이 꼼짝 않았고요

뒤에 남은 킬힐 소리가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무연고 죽음에 모르는 추모객으로 남아 있었고요


그 즈음에 사춘기 청소년들이

차 로고에서 V와 T를 떼어가는 게

유행이었죠


V:victory

T:triumph

승리라는 의미로

행운의 부적 삼아요


그래서 차 이름은 안느가 되었어요

참한 여자의 이름이죠

웃을 때는 덧니가 매력적이죠


안느는 더 이상 쇠붙이가 아니어요

주인은 그녀를 세상의 무엇보다 사랑해요


그날의 ‘그럴 리’는 반짝이는

천체의 덧니 같아요


축포가 터지고

인공 호수에 꽃배를 띄우는 첫날이어요

뽀샤시한 얼굴로 별들이 수면에 지고요

호수에 저마다 배 한 ‘척’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아름다움이 우리를 배’척’할 때가 더 흔하죠

우아하게 터지는가 하면 어느덧

폭죽의 좌초


안느는 시동이 꺼진 뒤에도

한참 엔진을 끙끙대었지만


**

그렇다면

‘그럴 리里’는 어떤 마을인가요


어떤 주민들이 살고

어떻게 장례를 하나요

어떻게 그들을 떠나보내고 잊나요


아니면 떠나보내지 못하고

당신의 눈 콩팥 심장

췌장 동맥 혈장 속에


아니면 뻔뻔한 아첨 겉치장

사기꾼 눈매 다감한 냉랭 변명 판단 보류 헛된 사과문 속에

그들을 묻나요


‘그럴 리’는 끔찍하게 조용하고요

물은 물결을 배척하고요

달은 달빛을 추방하고요


물결은 물결을 떠밀어 모르는 곳으로 보내고요

자동 회전문이 홱홱 돌아가고요


사춘기 애들이 킬킬대며

V와 T를 공구로 뜯어내요


차체가 움푹 패이고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자

안느가 몹시 아프고요


내 목표는 99개야

그럴 리에 최강자가 되는 것이지


‘그럴 리’에 가고 싶어요

로고 하나라도 얻어서

시든 월계수잎 관

한 번이라도 써보고 싶어서요


‘그럴리’의 지역 신문 부고란에는

행려병말고 다른 죽음들이 게재되고요

아마도 그럴 리의 주민들은

그걸 ‘로드킬’이라고 부르나 봐요


그날 열나흘 달은 기이하게 번쩍거렸구요

그때부터 아깽이 이름을

‘달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달이야

달이야아아


아파트 벽체에 부딪쳐

그 한 번도 귀 세워 듣지 못한 이름이

푸슬푸슬 떨어졌구요


***

달이가 경직되는 순간

달에서 하얀 내장이 흘러내렸어요

슈퍼문 그 분화구 안에 ‘달이’를

묻어주었구요


호수에 꿀렁꿀렁 복수가 차고

꽃배가 수면을 가를 때

차 키로 표면을 드르륵 긁는

샛된 철썩 소리가 났어요


벚나무에서 인조손톱들이

주르르 떨어져 내렸어요


지하주차장에서 줄행랑하는 아이들

방범등 모형안구에 공구를 던졌어요


그 와장창 소리에 거리의 벚꽃

지지도 못한 채

기이한 잎사귀 뻗어내구요


‘그럴 리’가 만무해요

우리 착한 안느가 그럴리가요

저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되려 아깽이가 바퀴 아래로 걸어들어온 거라구요


알려거든

제대로나 아시라구요


*본래 차 이름은 AVANTE, V와 T를 잃고 더욱 사랑받는 존재 ‘안느AANE’가 되었다. 나는 가끔 사람보다 더 사랑받는 안느를 질투했다.


* Marc Chagall, The Cat

#고양이#로드킬#냉혈#동물권#prayfor이태원#추모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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