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어떤 시인은 울다 목젖이 망가진다.

by 시인 이문숙

8월 8일. 선생님이 먼곳으로 가신 날. 국제 고양이 날 하루 전 날.


8월 9일은 국제 고양이 날, 데이빗 호크니가 그린 고양이는 그림 속 남자의 무릎에 앉아 창을 내다본다. 고양이야, 무얼 보니. 너와는 달리 불편한 자세로 삐끗 앉아 있는 남자의 벗은 발은 왜 보지 않니. 발가락 없이 기이하게 뭉툭한. 양탄자의 보글거리는 털실에 묻힌. 사람들은 데이빗이 발을 그릴 능력이 없어 그렇게 그렸을 거라고 한다. 농담이다. 농담 한 송이가 피어난다.


8월 10일, 국제 고양이 날이 하루 지난 날. 무엇보다 황현산 선생님이 아주 가신 날.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시인들은 착한 사람들이예요.'


어떤 화마도 태우지 못한 선생님의 치아 보철물에 부딪쳐 돌아나왔을 선생님의 음성을 그곳에서 들었다. 선생님은 안 계신데 들었다. 발가락 없는 뭉툭한 발처럼 정말 들었다. 착하다는 건 무얼까. 농담이다. 농담 두 송이가 피어난다.


오래전 요즘처럼 무섭게 무더운 날, 이진명 시인의 주선으로 선생님과 최정례 선생님, 김혜수 시인과 공초 오상순 시인 묘소에 갔었다. 그날 우리는 주먹밥과 아주 작은 휴대가 가능한 소꼽용 잔에 아주 조금씩 중국차를 나누어 (주먹밥도 한 알갱이씩 오물오물) 마셨다. 더울 때마다 찔금찔금. 그 소풍을 잊지 못한다.


수유라는 불가능한 이름의 어느 골짜기, 궁중 여인들이 남몰래 빨래를 철퍼덕대며 놀았다는 그곳. 우리는 그곳에서 같은 물 소리를 듣고 그곳 반석 위에 수백 번 팽겨치고 패대기치고 팔목이 시도록 헹군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무염의' 착한 생각들과 시간들을 각자 나누어 널어두고 왔다. 화염처럼 뜨거운 그 바위들에.


선생님, 그곳에서도 계속 지켜봐 주세요. 우리 정신의 알갱이들이 까무룩거리며 뭉툭해질 때, 세상이 검은 이불을 강제로 덮고 재우려는 기괴한 어린이집 보모 같을 때, 그렇게 너나없이 모두들 보채고 투정하고 떼를 쓸 때, 그곳에서 보았고 들었고 만져보았던 맑고 시원하고 시끌했던 그 물 흘려 보내 주세요. 우리들의 감은 눈 위로, 동공 속으로, 온몸을 흘러 발가락으로.


그 혼탁하고 더럽고 때묻은 검은 이불을 들추고 나오라고, 기어서라도 나오라고, 나와서 제대로 된 얘기를 하라고 말씀해 주세요. '시인들은 착한 사람이예요'라고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은 시인들과 목포 따순개미에도 포천 집에도 가보자고 하셨다. 그러나 가보지 못한 포천 집 꽃나무 아래 꽃이 핀다. 그날의 소꼽용 찻잔 같은 작고 오목하고 찔금찔금한. (선생님이 그 꽃나무 아래 계실 지도 모른다)

*

'당신 별은 추워요, 설비가 엉망이예요.'


아람누리갤러리 '예술가의 책장'전에서 황현산 선생님이 살림이 아주 어려웠을 때 번역했다는, 열화당 간행 '어린 왕자'를 보았네.


선생님은 통장도 보험도 죄책감이 들어 하지 않았다는데, 그 무거운 책장을 끌고 걸어오는 산길, 가난한 부족장의 아름다운 투구를 쓰고 후투티가 텅빈 둥치를 쪼고 있네.


너는 기껏 수액 한 점 흐르지 않는 가난한 상수리에 오지도 가지도 않은 12월을 예탁하고 있구나. 그리 슬프고도 맑은 요철 닳은 동전 소리를 내고 있구나.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요.


#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

#황현산#최정례#이진명#이문숙#김혜수

#밤이선생이다

팀 아이텔의 'Untitled(Observer)'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