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1주기를 추모하며
책방프리. pri(primitive) 혹은 free. 대놓고 원초적인 ‘책빵’도 좋다. 그곳에선 책이 진력날 때 빵을 먹으면 된다. 빵을 베고 진홍 호밀 밭으로 가서 누워 책을 읽는다.
다 떨궈버린 책방무無, 책방허무nihil에 초록 잎이 심폐소생술로 일어선다. 설탕호두조림이 다시 나무가 된다. 누군가 그것에 ‘걸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곳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간밤 꿈에 그곳에서 주최한 시 낭송회에 다녀왔다. 목소리가 가랑가랑했다. 그 목소리를 뜯어와 벽에 붙여두었다. 보고 싶을 때 그쪽으로 돌아누워 그 목소리를 재생했다.
그곳에선 행복이란 오지 않은 끔찍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글자에서 '바람이 ‘ㅣ’를 나포해 갔다. 행복에서 떨어져 나간 ‘ㅣ’가 시를 읽는 그녀의 머리칼 위에 붙어 반짝였다.
내 시를 그들은 ‘surreal’하다고 하더라. 내가 알고 있던 초현실주의와는 너무 달라.
초록 캥거루가 권투를 하고 개천에서 노랑 용이 푸르르 일어났다. 새파란 토끼가 행복에서 탈출한 ‘ㅣ’를 되새김질하며 씹었다.
어느덧 행복에서 ‘ㅣ’가 떨어지니 ‘항복’이 되었다. 그렇게 ‘항복’이 좋은 순순하고 연한 호밀 빛 아침이 드디어 도착했다. 그 빛기둥에 기대 그녀가 속삭였다.
계속 시를 써. 나 대신. 입고 있는 스웨터 무늬 속으로 흰 당나귀들이 걸어다니고, 핑크빛 코끼리가 돌아다녔다. 설거지통 호두나무 수저가 달그락대다 물관을 끌어올렸다.
내가 시인이 맞기나 한가요.
같이 시를 소리내어 읽는다. 둘러앉아 있던 호두나무 테이블에서 줄기가 솟고 호두가 열린다. 그녀가 그 호두를 따서 독자들에게 나눠준다.
상인들은 현명하기도 하지. 호두 껍질을 부수는 도구를 호두와 같이 팔더라. 시도 그러면 좋겠어.
그 도구로 호두를 깬다. 일반적인 망치와 다르게 호두 망치는 두 개의 손잡이를 꽉 죄면, 호두가 들어간 그 안의 뾰족뾰족한 돌기가 껍질에 균열을 내준다. 껍질을 벗겨내면 뇌의 회백질 같은 호두가 고스란하다.
자, 하나씩 드세요. 심지어 입 속에 넣어주기까지 한다. 시가 모르겠는 분들은 호두 망치를 생각하세요.
그걸 지켜보던 시를 분실했던 내 손가락에 불이 붙는다. 뜨겁다. 누가 소화기 좀 갖다 이 불 좀 꺼주어요.
#최정례시인#호두#흰당나귀들의 도시#낭송회
#파울라 모더존 베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