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를 위하여
물방울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마 위로 흘리는 고문이 있다. 똑똑똑똑.
절두산 내 마지막 산책지, 그곳에서 나는 뭘 봤나. 순교보단, 새남터의 새로 태어나기보단, 목 댕강하는 그 순간 그 찰나가 더 선명해. 더 확연해. 마지막 직장에서 지칠 때마다 혼자 걸어가던, 그곳 절두산.
빛이 들지 않아, 개천내나는 시장바닥 빨간 다라이 속처럼. 핏빛조차 잃고 희멀건 빛으로 담겨있던 콩팥, 쓸개, 내장처럼. 입 꾸욱 다물고 묵묵히 칼바람 맞으며 걸어가던 외인 선교사 묘지. 부러진 십자가, 닳은 묘석.
거기 어떤 마땅한 새로운 탄생이 있었나. 피를 쏟아야만 순교는 아냐. 매일매일 우리는 절두를 해. 그러나 도마뱀꼬리와 달리 머리는 다시 솟지도 쏟아지지도 않아.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에는 이런 고문의 형식이 있어. 목에 작은 상처를 먼저 내. 상처가 크면 안돼. 피가 똑똑 떨어질 만큼 작은 창상.
목을 옥죄지도 손톱에 가시를 쑤셔박지도 않아. 코에 물을 흘려놓지도 사지를 찢거나 비틀지도 않아. 그저 은근하고 미약하며 지속적이야. 아아, 결국 광란하고 말아.
이마에 주기적으로 똑똑 물방울 떨어뜨린다는 물방울 고문이 이와 같을까.
꺼꾸로 매달아. 파논 구덩이에 목까지 넣어. 널빤지를 덮어. 목의 작은 상처에서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해. 피가 똑똑. 간헐천처럼 똑, 똑, 똑.
덮은 나무 판에서 공명할 때마다, 똑똑이 뚝뚝으로 뚝뚝뚝뚝 점점 커지고.
결국은 부인하고 부정하고 모른다고 해. 배교라고 부르는 걸 하고 말아. 결국 그들의 강요에 승복하면서 다시 태어나지. 고통이 반죽된 흰핏덩어리로.
어느덧 순교라는 말보다 배교라는 언어가 더 긴밀해지고 말아.
나두 그 피의 소리를 들어. 이 하얀 배교의 도서관에서 가끔은 꺼꾸로 매달려 있기두 해. 목에 작은 상처를 내구 그 소리 들으며, 비틀구 왜곡하구 그러다 마구 꼬인 걸 다시 복원해 보기도 해.
어느덧 책장 위로 흰 피가 똑똑 져. 창 밖으로 이미 가지에 쌓였던 눈이 먼저 떠난 다른 눈에게 똑똑, 안부를 물어.
똑똑똑똑똑똑똑똑똑
흰 피의 안부를 물어.
이마 위로 똑똑똑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하얀 물방울의 안부를 물어.
#절두산#침묵#엔도슈사쿠#테이트브리튼
*A throwback to Shirazeh Houshiary's topsy-turvy tree at Tate Britain, exhibited in 1993 and again in 2016! Houshiary described her tree as 'taking earth back to hea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