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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왕수 May 11. 2018

나는 진짜 겸손한가

얼마전 중견기업의 회장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회사는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시장에서 거두고 있는 제법 유명한 중견 제조업체다. 기업이나 경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회사뿐 아니라 대표님의 이름도 들어봤을 정도이니 꽤나 유명하신 분이다. 회장님은 박사학위까지 수료했지만 교수를 포기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신의 수학적인 재능을 봤을 때 교수로서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 확실해서, 실패가 증명되지 않은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미소를 자아내는 독특한 출사표다. 어쨋든 회장님은 맨손으로 사업을 일궈내신 분이다보니 자연스레 사업과 경영 노하우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두시간 넘는 시간동안 회장님은 질문 하나하나에 열정적으로 답변 해주셨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화 한토막을 공개하려 한다.


기업은 결국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기업이 내부자들의 이해나 즐거움을 위해 있고, 고객을 포함한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면 그 명이 다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사회가 그 기업을 살릴 것이다. 

그런데 사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객의 니즈파악은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솔직히 말하면 사업가들이 대개 처음 만나게 되는 아이템은 우연의 산물이다. 우리 세대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방식에 의한 기계제어를 배웠다. 전공은 스스로가 정하지만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는 사실 공급자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우연히 디지털 기계제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동일 전공으로 대학원과 박사까지 마쳤다. 사업을 시작하고 다양한 아이템에 손대봤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회사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은 디지털 제어가 핵심인 전자기기다.

사업가에 따라 누구는 큰 기회를 만나기도 하고, 작은 아이템을 손에 쥐기도 한다. 하지만 시작은 대개 우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기업이 한 아이템으로만 20-30년을 살아갈 수는 없다. 결국 두번째 사업을 찾아야 하는데, 두 번째 우연은 찾아오지 않는다. 이 때 '의도적으로 사업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 이 필요하다. 

이 능력은 어떻게 키우느냐? 사회 현상에 대한 관찰과 해석의 힘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평소의 훈련량이 중요한데, 첫번째 사업으로 대박을 치고 스스로의 실력을 자신하면 대개 훈련을 게을리한다. 내게 주어진 것이 단순한 실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우연적인 요소가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미래를 준비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을 지속적으로 키울 수 없다


'역시 겸손해야해'


긴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비교적 간단했다. 집에 돌아와 다시 펴본 노트에도 유독 겸손이라는 단어 주위에만 몇 겹의 원이 그려져 있었다. 노트에 적힌 내용들을 하나씩 되짚으며 회장님의 말씀들을 천천히 떠올려봤다. 잊지 않고 꼭 가져가야 할 한 두가지 배움(그 이상은 기억할 수 없다)을 정리하다가 생각이 다시금 겸손이라는 단어앞에서 멈춰섰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단어가 겸손이 맞을까? 


30년을 넘게 살다보니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더러 마주쳤다. 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날선 비판과 욕설도 들었다. 먹은 욕들을 뒤로하고 못들었던 욕을 자랑처럼 꺼내는게 우습지만, 아직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잘난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없다. 실제로 스스로가 잘났다는 생각보다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했던 것 같다. 겸손은 아주 중요한 미덕이라 믿고 있고, 막말로 재수없는 이미지를 만들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도 하는 편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겸손해야 하는것인가? 나는 겸손이 본인의 실력향상에도 좋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겸손은 굳이 따지자면 자신에 대한 약한 저평가의 영역에 가깝다.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배우고 습득해야할 것을 더 크게 보려는 마음가짐 자체가 그렇다. 건강한 겸손은 막연한 '난 못해' 보다는 '나에겐 잘하는 분야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더 잘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아' 정도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겸손한 사람은 스스로에게 배우고 발전시킬 분야가 있음을 인지하기 쉽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겸손을 통한 부족함의 인지를 넘어,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겸손은 끊임없이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지만 실제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는 엔진은 가치가 없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만하고, 실제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나는 과감하게 그것은 쓸데 없는 겸손이라 하고 싶다. 애초에 실력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스스로의 능력을 낮추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적인 평가인 것이다. 


겸손은 어려운 과제다.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팀으로서 일한다. 겸손한 사람과는 한 팀이 되어 일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만약 그가 실력은 없고 뛰어난 인성만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떨까? 실력과 겸손은 새의 양 날개와 같다. 그 둘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비슷한 크기로 뻗어 있을 때 비로소 균형감과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겸손이라는 단어에 숨어있는 실력이라는 글자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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