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입니다만

같은 집으로 가니 걱정 마세요

by 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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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케이크를 사러 네 발 식구와 함께 길을 나섰다.


집에서 15분쯤 걸어가면 꽤 괜찮은 쇼핑플라자가 있다.

북미에 흔한 엄청 큰 대형 쇼핑플라자는 아니고 작지만 알찬 보기 드문 아기자기한 로컬플라자이다. 럭셔리 리빙을 목표로 만들어져서 초반에는 서점도 있었지만, 몇 번의 상점 교체들이 이뤄지고 외부에서 점점 더 많이 오게 되면서 성격이 조금 바뀐 곳이다. 중앙에 작은 광장을 기준으로 커피숍, 아이스크림 가게, 레스토랑, 옷가게, 영화관 등이 있는데 미술전시, 요가클래스 등 문화행사를 종종 열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플라자이다. 이 플라자는 럭셔리 슈퍼마켓이 있는데 여기 케이크들은 보기에도 예술 작품처럼 이쁘고, 보통 다른 마트 케이크처럼 어지럼증을 느낄 것 같은 당도가 아니라서 우리 집에서 생일마다 이곳에서 케이크를 산다.


네 발 식구와 둘이 나왔기에 정문 옆에 있는 기둥에 줄을 묶어 놓고 안으로 들어간다.

케이크를 고르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살짝 길어지는 포장을 기다리고 바로 계산하고 나왔다. 나오는 문은 코너를 돌아서 있기에 얌전히 앉아서 정문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위아래로 스캔하고 있을 울집 네 발 식구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돌아서 오냐는 궁금한 눈빛을 할 거다. 그러면서 슬쩍 일어서서 나에게 다가오면 난 반갑게 칭찬하고 줄을 정리한 뒤 다시 집으로 함께 걸어갈 거다.


코너를 돌자마자 보이는 것은 울집 네 발 식구가 아니었다. 익숙한 검은 개 옆 낮은 나무 화단에 긴 머리의 십 대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 누가 개를 두고 가 듯 여자애를 두고 간 건가?'

순간 그 모양새가 비슷한 두 생명체에 웃음이 났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짧은 찰나의 순간에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빛에서 감동하는 눈빛이 되었다가 안심하는 눈빛이 되었다. 그녀는 검은 개에게 다가가는 줄을 푸는 나를 보고 일어서며 말했다.

" 정말 다행이에요. 누가 개를 묶어놓고 도망가버렸는 줄 알았어요."

이번에는 내가 놀랄 차례였다.

"그럴 리가요. 전혀 아니에요. 케이크 사러 간 거예요."라고 말하며 줄을 정리하는 나를 보더니 어려운 문제는 풀었지만 아직 궁금증이 남은 표정으로 친구들에게로 걸어갔다.


'내가 토론토를 떠나 있던 몇 년 사이 사회가 바뀐 건가?'

반려견이 많은 토론토에서 개를 잠시 묶어두고 짧은 볼일을 보는 일은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니라 종종 목격하게 되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카페 앞에 묶여있으면 반려인이 커피를 사러 갔나 보다 생각하고, 도서관 앞에 묶여있으면 책을 찾으러 갔다보다 했는데, 이런 사회는 십 대 소녀가 아는 사회는 아닌가 보다. 유기견이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는 고마웠지만, 그런 불안함을 갖고 있다는 게 생각할수록 의아했다.


'왜 유기했다고 생각했을까? 토론토에 유기견이 늘어났나?'


얼마 전에 보니 은행에 반려견 출입이 가능해졌길래, 울 네 발 식구를 지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은행 일을 보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생경한 느낌이 있었지만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눈살 찌푸리는 사람은 없어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실은 도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난 그저 마음이 특별히 여린 십 대 소녀를 만난 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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