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의 한 조각

묘한 이중 잣대

by 해날

교육자가 되는 교육을 받았을 때 'no'를 사용하지 않고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행동을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올바른 행동으로 연결이 되기는 힘들고 오히려 감정싸움이나 기싸움의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기에 이 방법을 적절히 잘 사용하면 상당히 유용하다.

"No running in the room, please." 교실에서 뛰면 안 돼요.

"No standing on the chair, please." 의자 위에 올라서면 안 돼요.

이런 말 대신에 아래의 디렉션으로 원하는 행동을 상기시키는 방법이다.

"Use your walking feet, please." 교실에서는 걸어 다녀요.

"Chairs are for sitting." 의자는 앉는 용도입니다.


놀이 중심 교육 커리큘럼 속에서 아이들은 그저 하루 종일 놀기만 한다. 간식 먹고 놀고, 나가서 놀고, 안에 들어와서 또 놀고, 점심 먹고 자고 놀고, 간식 먹고 놀고, 그리고 집에 간다. 그 놀이를 통해서 언어, 사회성, 사고력 등이 다 성장하게 된다. 다문화 사회이니 서로의 다름을 존중할 수 있게 서로를 헤치지 않는다면 제한하는 것은 거의 없다. 감정도 배우고 조절해야 하기에 자신과 같은 반 아이들이 겪고 있는 감정을 차분하게 알려주고 조절하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준다. 다종교 사회이니 선입견을 만들지 않도록 교육자의 종교는 보통 공유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물어보면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는 있다. 다양성 존중과 차별을 예방하기 위해 특정한 젠더가 옳다 그르다 논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젠더를 직접 선택하게 될 것이니 "boys and girls"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편애의 감정을 느낄지 모르니 "sweetie"같은 애칭은 사용하지 않고 아이의 이름을 사용한다.


일하는 센터의 정책과 커리큘럼의 방향을 교육받은 대로 충실하게 따르며 근무했다. 심지어 15분마다 교실을 살피는 부분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일어날 거의 모든 경우를 다룬 지침도 그대로 지켰다. 1. 아이를 진정시킨다. 2. 센터장에게 연락한다. 3.... 거의 4센티 두께의 안전과 행동 관련 지침 책에는 절차가 가득했다. AI 로봇이 와도 나랑 똑같이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그들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최대한으로 발달하고 성장하도록 보호된다. 하지만, 그들에게 교육자는 어떤 취향도 종교도 문화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 이들에게 교육자는 사람이 맞는가 하는 질문에 이르렀다.


타고난 성은 알아야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가 맞는지 아닌지 아는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떤 성으로 태어났는지 알 수 없다면 무엇을 놓고 선택을 한다는 것일까?

'우리 집은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는데 내 친구는 집에서 논다고 한다. 데이케어 선생님은 종교가 없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모든 데이케어 선생님이 종교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보호자가 애칭으로 부르는 이유는 아이가 자신이 특별하며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 위한 건데, 데이케어에서는 모두가 공평해야 하니 사랑을 주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과연 난 이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북미의 데이케어에서는 위생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특히나 sanitizing을 철저하게 한다. 코로나 때 많이 쓰던 물컹한 하얀 액체가 같은 일을 하는 약품을 사용하여 99.9%의 세균을 박멸한다. 장난감과 테이블, 의자, 책장 등을 모두 닦아 준다. 유해균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모든 균을 없애는 거다. 그래서 북미의 아이들은 알레르기가 많다고 한다. 청소는 철저히 하고, 아이들에게 균과 접촉할 수 있는 모래놀이를 권장한다. 아마도 교육자도 이런 환경의 한 부분처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유해한 부분'을 없애고, '모래 놀이'처럼 권장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난 내가 맡았던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고, 놀이를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자신이 친절하면 상대방도 친절하다는 것을 배우고,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져도 존중하고, 약자는 모두가 도와주면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에게 허락된 것은 여기까지였다.


아마도 그 이상의 개별성을 갖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유아들에게는 아직 해로운 일인가 보다. 유아교육에서 하는 일은 최대한 원석을 잘 캐서 다듬어지도록 넘기는 일인가 보다. '모래 놀이'로 면역력을 좀 더 키우면, 아마도 준비가 잘 되어서 '사람'인 좋은 교육자들을 많이 만나서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나 보다. 교육자에게는 'NO'가 많은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은 올바른 행동을 익히고,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펼치며 살도록 좋은 토양으로 함께 잘 다져줬으니 사회에서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 이 세상을 노는 듯이 즐겁게 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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