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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비 Jul 04. 2022

친구보다 낯선 이성의 관심이 더 중요한 당신에게

끊임없는 이성 집착의 굴레


남자만이 내 외로움과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


나도 그랬다, 과거에.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시간을 거슬러가 보면 대학생 초반이었던 것 같다. 홀로 지방에서 상경해 자취방에서 외롭게 지내던 하루하루. 가깝게 지내던 동성 친구들이 각자만의 이유로 사이가 소원해질 때. 물론 나 또한 이성친구에 집중해 동성친구들을 등한시하던 시절. 동성인 친구들에게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얻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성관계만이 나를 1순위로 집중해주는구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해 이성관계에 내 온 정신을 쏟고 정신없이 소개팅과 미팅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여자들이랑 잘 안 맞아.

이렇게 말하는 여성들이 있다.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시기가 있다. 나는 여중 여고 여대는 아니었지만 그에 부합하는 성비를 자랑하는 과를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 사이에서의 미묘한 감정선, 질투와 경쟁 같은 류의 상황들이 질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남녀평등 시대라고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대화를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나는 질문하고 싶다. 왜 줄곧 여성들에게서만 이런 패턴이 보이는 것일까? 남자들의 우정을 보면 나는 참 부럽기도 하다. 자기 불알친구에게 몇천만 원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서 가정관계를 파탄 내는 남자들이 있다. 절대 그게 옳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여성 친구와의 의리를 위해서 돈을 날렸다거나 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보통 자신의 남자 친구나 남편을 위해 경제적, 육체적 희생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여성은 여성을 위해 그 정도의 희생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남성이 이성관계 그리고 친구를 대하는 방식과 여성이 이성관계 그리고 친구를 대하는 방식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관찰해본 결과 남성은 자신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친구관계와 이성관계가 동등한 느낌이었고 (사귀는 초반 여자 친구에게 공들이는 시간을 제외하면) 여성은 자신과 이성관계가 동등한 선에 있고 그다음에 모든 관계가 두 번째 우선순위로 자리하는 경향이 있다. 




어렸을 때 내 외로움은 '남자'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었던 나는, 20대 중반에 겪었던 3-4년간의 어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나는 여성 (또는 남성)인 친구들로부터도 끈끈한 지지와 연대, 그리고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사랑을 느끼는 경험을 했고 이 일들은 내가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리고 내 생각을 바꿔놓았던 다른 이유들 중에 하나로, 나를 저버리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이성친구들의 배신들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과거에 내가 상처받았다고 해서 앞으로 내가 만날 모든 이성들이 못됐고 여자를 배신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과거에 내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고, 관계를 다루는 스킬과 경험이 부족했고 등등의 이유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관점이 바뀐 이유는, 이런 글을 어디서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남자 친구들이 아무리 여러 번 우리를 배신하고 상처 주고 실망시켜도 또 다음 남자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려고 하면서, 왜 여성은 똑같이 잘못을 해도 '여성' 자체의 문제로 결론짓고 여성친구를 버리려고 하는지?


나는 어느 순간 이게 공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자들이랑 잘 안 맞아'라고 말하는 그 말들. 근데 지난 남자 친구들과 아무리 잘못되고 삐걱거려도 그 남자 전체를 싸잡아서 평가하지 않으면서 왜 여자들끼리는 그렇게 하지? 나는 여자들이 결국은 약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자도 결국은 여자가 만만하다. 이민자들이나 유색인종들은 그 집단의 개인 하나가 잘못을 저질러도 그룹 전체가 싸잡아 평가가 된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새롭고 낯선 것들,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평가할 때 하나의 특징을 잡아서 그 전체를 일반화하려고 한다. 그래야 편하고 내가 그것에 대해 '알 것 같고 통제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강자들은 평가되지 않고 그룹화되지 않고 개인으로 존재가 가능하다. 



지난 2년 동안 데이팅 앱을 완전히 끊고, 남자를 만나는 게 목적인 것보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여자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내가 글 첫 부분에 기록한 사이클에 딱 부합하는 믿음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여기에도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아시안 여자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 현재 문제와 외로움을 남자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 (또는 누군가와 특정한 시기에 무조건 함께 짝이 돼야 한다는 믿음) -> 그 결과로 남자들을 쉴 새 없이 만나고 다님 -> 그 결과로 여자인 친구들을 등한시하거나 저버리는 행동을 함->상처받은 친구들이 떠나니 친구가 없어져서 결국 외로워 짐 ->그 결과로 결국 여자들은 믿을 수가 없고 남자로 그걸 채워야만 한다는 생각이 더 강화됨  


유럽이나 영국인 여자인 친구들보다 아시아 여자들에게서 유독 이런 패턴을 많이 보이는 건 나는 그 사람이 속한 사회, 문화권이 주입하는 가치와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서양 여자들은 남자친구나 남편이 생기든 말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기의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인 성향이 많다. 그러나 동양문화권은 아무래도 집단주의적인 사회라, 내가 어디 회사에 다니고 누구와 관계를 가지고 있냐가 자신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와 빨리 짝을 지어 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더 강한 것 같다. 이건 정말 재밌는 사실인데, 최근에 이력서들을 쭉 봤더니 서양친구들은 자신의 role 직책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회사를 쓰는 반면, 동양문화권 (인도 포함)은 회사를 먼저 쓰고 그다음에 role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 


어쨌든 결국 이들도 사회가 주입하는 가치에 영향을 받고, 그 사회가 맞다고 생각하는 "ideal"함, 이상향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여자들과의 친구관계가 그렇게까지 행복하지도 않고 믿음직스럽지 않아



나는 과거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두 명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와 어떤 사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들은 그냥 여자인 친구들끼리의 우정과 사랑을 믿지 않았다. 이성관계 물론 중요하다. 나는 지금 이성친구 또는 남편이 생겼다고 연락에 소홀해지는 거나 뜸해지는 것을 죽을 것 같이 나쁘다고 비판하려 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잠깐 인생의 어느 시기를 지나면서 서로 관심과 연락이 자연스레 뜸해지는 것과, 대놓고 "이 관계는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라고 결론짓고, 그걸 당사자인 상대방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들으면.. 당연히 친구니까 아프다. 상처가 된다. 여자도 사람이다. 내가 이 친구관계에 진심이라면 저 말을 듣고 별로 아무렇지 않은 게 나는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야 "나는 너를 믿지 않아."라고 해도 그걸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이런 사람들도 있었을 테지만.. 친구관계는 누군가로부터 어떤 '공식적인 타이틀'을 얻고 누군가와의 독점적인 관계를 위해 경쟁하다가 최후의 1인이 되는 결론으로 발전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에게 얻는 그 불같은 (일시적인) 사랑과 관심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친구로부터 받는 관심과 사랑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정도 종류나 형태가 다른...사랑이다. 


이 두 친구들은 특히나 내가 먼저 다가갔고 이들이 내게 연락을 먼저 하던 말던 내가 지속적인 관심을 먼저 보여주려고 애썼고 그렇게 어렵게 얻은 소중한 친구관계라고 느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후 큰 상처가 됐다. 그래서 거리를 두었더니 지금은 서먹서먹한 상태가 되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다. 내가 몇 달간 지속적인 관계를 위해 노력을 했는데 상대방이 그 가치를 알아보지 않는다면, 떠나는 것이 낫다. 정확한 건 이들은... 아무리 여자인 친구관계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여자인 친구들에게만 받을 수 있었던 사랑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심과 우정을 교류하고 받았던 시간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그걸 인정하거나 감사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는 이 변화하는 시간들 속에서 나와 더 잘 맞고 같이 있으면 행복하고 더 좋은 에너지를 서로 주고 받는 이들과 교류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리를 두면서 지내면 된다. 이들이에게 남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선택을 한다면 나는 그걸 말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이 있었고 의미 있는 친구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우리와의 관계들을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을 한다면, 속상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대고 따지고 화내진 않겠지만, 사람이니까 슬프고 상처도 받고 허무하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여자가 그렇다는 생각은 안 할 것이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고 그건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선택과 생각을 하던 나는 그것을 바꿀 힘도 없고 왈가왈부할 문제도 아니다. 


다만 내가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지난 나의 이성관계를 되돌아봤을 때 결국 건강한 이성관계도 단단한 사회적 자원 위에서만 세워진다고 강력하게 믿기 때문이다. 힘들 때 언제든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관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가족관계, 애완동물과 느끼는 유대감이나 회사, 동호회에서 느끼는 소속감 등등 이런 사소해보이지만 다양한 사회적 자원 없이 세워진 이성관계는 모래의 성과 같아서. 결국 남자친구 하나가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되는 순간 그 사람도 지쳐서 결국은 나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렇게 내 블로그에 글을 쓰지만, 나와 결국 멀어지게 된 그 친구들을 잡거나 되돌릴 수 없듯. 결국 선택은 개인의 자유일 뿐. 선택은 결국 당신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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