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성격 문제가 아니라 문화 차이 때문일 수 있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 차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파인애플 피자를 보고 경악하는 이탈리아인이라거나 한국의 엄청 빠른 인터넷 속도를 보고 놀라워하는 서양인의 반응 정도만을 예상하는 것 같다. 서양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양인인 나는 문화 차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가 모르는 부분에 어디든 숨어있고 도사리고 있는 정말 사소하고 보이지 않지만 그 확실한 존재와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스웨덴 게이트로 인해 인터넷이 뜨거웠다.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손님이 어린아이 일 지어도 밥조차 주지 않는다는 그 놀라운 이야기. 그 이슈가 터지기 훨씬 더 오랜 옛날(?) 스웨덴에 잠깐이나마 살아봤던 나로서는 스웨덴 게이트가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나 또한 스웨덴인의 집에 몇 번 초대받아 간 적이 있지만 내가 만난 스웨덴인들은 대부분 유학 경험이 있거나 외국문화에 열려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저녁식사시간에 초대해놓고 저녁을 주지 않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몇 번 데이트를 했던 남자들이 자신의 집에 초대해놓고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 일들은 몇 번 있었는데, 나는 그게 지금 빨리 집을 나가라고 무언의 눈치를 주거나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사람들은 나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구나 지레짐작을 하고 연락을 서서히 끊었다. 그러나 스웨덴 게이트를 보고 나니.. 그들은 당시에 나에게 밥만 안 준 것뿐이지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긴 했던 것 같은데.. 이게 문화차이었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드는 것이다.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자주 만나서 식사를 하는 예전 직장동료 친구들이 있다. 나 외에 이 3명은 모두 백인 여자인데, 나는 이들과 한 번도 평소에 큰 생각의 차이나 문화 차이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4명이 모두 모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너무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분위기가 많이 무르익었다. 술도 몇 잔 들어갔겠다, 당시 J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듣고 평소 대화 목소리톤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에이! 그건 아니지!!"
라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갑자기 J의 표정이 싹 굳으면서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마."
라고 무례하지 않지만, 단호히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민망했다. 내가 뭘 잘 못했나? 내가 J의 기분을 어떻게 상하게 한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를 제외하곤 동양문화를 잘 모르는 백인 여자였기 때문). 그러고 J는 곧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렸고 그 사건은 금세 내 기억에서 잊혔다. (J와 나는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서양문화권에서는 굉장히 무례한 일로 치부된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내가 지난 브런치 글에서도 썼지만 (https://brunch.co.kr/@silver-rain/168) 내 매니저가 나의 기를 잡아야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던 건 내 말의 내용이 비논리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목소리를 높여서 그 사람에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서양사람이 아닌 일반 한국사람들도 타인에게 화내고 소리를 지르면 상처를 주고 무례한 일이라는 건 안다. 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나도 이미 그런 건 영국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영국에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야기하는 그 모든 것에는-
1. 예를 들어 동료나 부하직원이 실수를 했을 때 "아니 이런식으로 하면 어떡해요!" 또는
2. 술자리에서 농담 식일지라도 한국인들끼리는 자주 하는 "야! 너 장난해?!" 또는 "에이! 그건 아니지!"라는 말투일지라도
그게 평소의 목소리톤보다 많이 높고 크다면, 그게 서양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의 범주로 포함되고 자칫하면 "흥분을 잘하거나" "감정 컨트롤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나라에 살아보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게 정말 많다. 어렸을 때 아무리 팝송을 좋아하고 영국 락 문화에 빠져 살며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섭렵한 나로서는, 영화에 나오는 서양인 부모들이 자식들을 가르칠 때 단호한 말투로 "너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하지만 절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모습 (느낌표가 아니라 마침표로 끝나는 말투)을 몇십 번이나 보고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엄마가 아들의 등짝을 때리면서 "이 웬수야! 너는 뭐가 되려고 그래!"는 우리 정서상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요즘 우리 세대의 백인 영국인들 중에서는 체벌을 받고 자란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내가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인인 내 친구와 영국인인 남자가 연인이 됐다가 지금은 헤어졌다. 한국인인 내 친구는 영어는 굉장히 잘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정서가 있었고, 둘과의 갈등과 마찰이 있었을 때 내 친구는 여느 보통의 연인과 같이 목소리를 높여 화를 냈다. 하지만 어렸을 때 가정에서 거의 단 한 번도 부모님이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영국인 남자는 내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이 굉장히 큰 감정적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국 둘은 헤어졌다. 물론 이 둘의 헤어짐에는 이것 외에 여러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 둘의 생각의 차이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 시작에는 문화 차이라는 작은 씨앗이 존재했음을, 지금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어떻게 가족들이 함께 살면서 부모님이 소리 높여 싸우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수 있냐고? 물론 서양문화권에서도 그렇게 싸우는 가정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보거나 경험해본 결과, 서양문화가 무조건 동양문화보다 우월하진 않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을 하거나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서양문화권에서 자란 이들이 대화하는 방식이 훨씬 더 성숙하고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순화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습을 해볼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훨씬 어린 세대는 다르겠지만 내 세대만 해도 이미 가정, 직장, 학교에서부터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가르친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거나 체벌을 하는 걸 경험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곳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별개다. 직장에서 아무리 자신의 부하직원이 큰 실수를 했다고 해서 목소리를 높인다면 이곳 문화에서는 unprofessional 하고 감정조절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보통의 평범한 스웨덴 가족과 5개월 정도 호스트 패밀리 생활을 해본 적이 있는데, 5개월간 단 한 번도 그들 부부가 목소리를 높여 싸운다거나 다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모든 서양인 부부가 환상궁합이겠냐고? 동양보다 훨씬 높은 이혼율을 본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이들의 마인드는 동양문화권과는 조금 다르다. 동양문화권은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고쳐야 돼, 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잘못된 행동은 매를 들어서라도 뜯어고치려고 하지만 이곳은 개인을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좀 더 보려고 한다는 점, 그리고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걸 감정 날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굉장히 정제되고 순화된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이 다른 것 같다.
이런 문화 차이는 영국 생활 1,2년 차에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문화 차이가 그 사람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닌 애초에 왜 '문화 차이'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려면 서양문화권에서 자란 이들과 웬만해서 깊은 감정적 교류를 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을 겪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냥 개인의 성격차이라고 생각해서 더 이상 연을 이어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고 - 이런 경우 문화 차이라는 것을 배울 기회가 영영 없어지고 - 아니면 외국생활을 하더라도 현지인과 깊은 교류를 할 기회가 없다면 그것 또한 문화 차이를 배울 기회가 없고, 결국 현지인과 계속해서 교류하고 실수도 하고 갈등도 하면서 그 관계가 조금 무르익어갈 때 - 그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문화 차이인 것이다.
물론 어디 나라를 가나 이상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고 계속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가 있다면 그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내 기준에 조금 다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한 두 번의 사건이라면, 내 본능이 자동적으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해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잠깐 멈추고, 그 사람에게 직접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웨덴인에게 초대를 받았는데 밥을 안 줬다면 그 사람이 그냥 "무례하네" 또는 "날 안 좋아하네" 지레짐작하지 말고 그에게 직접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너네 문화는 원래 이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야?"라는 식으로. 나는 지금 J가 내게 왜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하지만 내가 당시 그때로 시간을 돌릴 수 있었다면 J에게 물었을 것이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뭔가 신나고 재밌을 때 목소리를 높여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혹시 내가 너에게 말한 것 중에 어떤 것이 기분이 나빴던 거야? 이해하고 싶어."
나와 다르게 생기고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과 교류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이유는 '판단'이다. 런던과 같이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이는 대도시에서 일하고 사랑하고 교류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화 차이들을 겪을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에게 직접 대화하고 물어보며 오해를 풀기보다 나만의 판단으로 사람을 거르다 보면,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배울 일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물론 대도시에 살면서 나만의 세계를 갖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런던에 온 이유가 다양성 때문이었다. 다양한 시각과 생각은 나를 더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한다. 나는 그걸 배우러 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갈등과 의견 충돌이 생길 때 그 사람과 대화를 한번 더 해보는 걸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사람과 관계를 맺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그 대화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이미지 출처: https://en.pizzadixit.com/do-italians-really-hate-pineapple-pizza-no-i-dont-think-so-heres-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