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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비 Jun 25. 2023

서양사회에서 내향인으로 살아남기

나는 친구가 많다. 글 초반부터 갑자기 자랑이냐고 느낄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느낀다. 부모 복은 좀 없었지만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듯, 한국에서나 영국에서나 나는 참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고 있다고 느낀다.


나를 미디어로만 접하는 사람들은 내가 외향적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만 사실 그와는 정 반대다. 나는 내향인이다.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좋고, 여러 명과 함께하는 미팅보다는 혼자 일할 때 집중이 훨씬 잘 되며, 친구들과 약속을 연달아 잡은 날이면 꼭 하루 정도는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러한 나의 성격 때문에 영국에 온 첫 1-2년간은 친구가 거의 없었다. 코로나라는 특수 환경이 있기도 했지만 서양사회 특유의 왁자지껄한 파티나 여러 명의 다양한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야 하는 자극이 버거웠던 나는 그런 기회들을 계속 피해왔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 내성적인 것과 내향적인 것의 다름을 이해하면서 그리고 시간을 들여 대인관계 능력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그런 상황에 나를 노출시키면서부터, 서양 특유의 그런 사회적 모임들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내성적인 것과 내향성은 다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내성적인 것과 내향성은 다르다. 내향성과 외향성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냐는 차이에서 온다. 내향인들은 에너지를 내부에서 얻고, 외부 자극이 적어야 편안하다. 외향적인 사람은 에너지를 외부에서 얻고, 외부 자극이 많아야 살아난다. 내성적인 것은 사회적 대인관계 능력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후천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고, 언제든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내향적이지만 대인 관계 능력이 좋을 수 도 있고, 외향적이지만 사회적 스킬이 부족할 수 도 있다.


이러한 '스킬'이 후천적으로도 얻어질 수 있고 여러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것임에 반해, 타고난 기질 (내향성, 외향성)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이 대인관계 스킬을 어떻게 늘리냐는 다음에 따로 다뤄야 할 주제고, 내향성이란 타고난 본인의 기질을 지키면서 어떻게 공적인 사회생활과 사적인 대인관계를 잘 다루는지 나만의 생각을 적어보겠다.



1. 스스로를 편안하게 느끼기 =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말 것


한국 같은 동양사회는 그래도 내향인들을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는 문화가 있지만 유독 외향적인 성격이 주목받고 격려되는 서양사회에서는 내향인이 자신에 대해 만족스럽고 편안하게 느끼기 힘들다. 특히 회사에서, 서양 사회는 문서보다는 미팅으로 일을 많이 해결하고,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미팅을 주도하며, 대부분의 윗사람들이 외향인인 경향이 훨씬 두드러진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내향인들조차 직장에서 살아남고 인정받기 위해 억지로 외향인을 연기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타인 흉내는 지속적이지 못하다. 결국 우리는 평생 남 흉내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회사에서는 사회적 가면을 쓴다. 그러나 그 사회적 가면이 사회생활을 위한 예의를 넘어 과도하게 자기 스스로를 옥죄고 힘들게 한다면 그건 사회적 퍼소나가 아니라 자기 파괴적 행동임을 스스로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를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자기 스스로의 관계가 편안한 이들이 타인과의 관계도 편안하다. 내향인인 것에 아무런 문제는 없다. 외향인 내향인 둘 다 고유한 특징이 있을 뿐 그것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사람들의 개인적인 가치 판단일 뿐이다.



2. 자존감이 높은 사람만이 타인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줄 안다.


어느 날 내 플랫 메이트가 내게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던 중 내가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을 끝내자마자 플메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리크루터로서 너에게 조언하는데 말이야, 3월이 가장 좋은 시기야. 그러니까 그때 이걸 이렇게 ~ 어쩌고 저쩌고. "


나는 플메에게 조언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플메는 내 분야의 특수성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있으며 3월이 타이밍이라는 그녀의 예측은 보기 좋게 틀렸다. 화제를 돌린 내가 승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 매니저를 완전히 압박해야 한다며 자신의 방법을 하나 둘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창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을 시절, 나는 우크라이나 인이었던 전 매니저가 걱정이 되었다. 플메와 별 시시콜콜한 스몰톡을 하다가 내 전 매니저가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플메는 러시아가 왜 전쟁을 시작해야만 했고 우크라이나가 왜 침략을 당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그녀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 문제의 본질은 '자기 중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항상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상대방이 이직이나 승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설파하고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서도, 대화의 본질은 '전 매니저가 걱정된다'는 것이 포인트인데 이 친구는 자신이 남들은 알지 못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뒷 이야기와 역사를 알고 있는 자신에게 심하게 심취하여 상대방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자랑만 뽐내는 것이다.


내 플메는 외향인이다. 외향인이 상대방에게 관심도 많고 사회적 모임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 사회적 스킬이나 공감능력, 자존감등을 높일 기회가 많고 실제로 그런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외향인이라는 기질적 특성이 대인관계를 좋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자신이 대화의 주인공이 되려고 하고, 남을 가르치려 들려는 사람은 자존심(에고)은 높으나 자존감이 결여된 사람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항상 관심을 받으려 하고 자신이 중심에 서야 하니 타인이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제대로 경청할리가 없다. 좋은 인성은 높은 자존감에서 나오고, 높은 자존감을 가진 이는 외향적, 내향적 기질과 상관없이 항상 좋은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든다.



3. 상대방을 깊게 이해하기



양보다는 질이다. 물론 친구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깊은 관계를 가지는 스텝 중에 하나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깊은 신뢰와 애정을 느낀다.


내향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은 신중함이 높고 관찰력이 좋으며 1:1의 대화에 능하다는 것이다. 상대방과 깊은 대화를 함으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람의 가치관,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들을 알아가고. 이런 것들을 통해 상대방과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다.


에너지의 방향이 자신에게 향하는 내향인의 특성상 상대방을 깊게 이해해도 표현하는 것에 서툰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는 내향인에게 편안하고 친숙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면 된다. 보통 외향인들이 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고 내향인들은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잘하는데, 그럴 땐 글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또한 시끌벅적한 파티나 네트워킹 모임이 괴롭다면, 그 안에서 조용한 장소를 찾거나 1:1로 대화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다시 한번 적었지만 내향인 = 사회적 능력이 적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향인은 내향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장점과 특징으로 친구를 사귀면 되고, 그 증거로 나는 나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친구들을 영국과 한국에서도 충분히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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