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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B Feb 04. 2018

아름다운 파리의 밤

프랑스 Day-10

이곳 숙소는 파리시내와 조금 떨어진 탓에 일정 일수이상 머물면 바토무슈라는 유람선 티켓을 준다.

오늘이 바로 파리의 야경을 보기로 한 날이기 때문에 어제 든든히 보충한 체력으로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 바토무슈 탑승권을 받아 길을 나섰다.


프랑스에는 한국에만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몽쥬약국'이라는 곳이다.

왜 약국이 유명한가 하면 프랑스의 약국 즉 Pharmacy에서는 약보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우리나라에서 화장품은 화장품을 판매하는 곳이 따로 있지만 이곳에서는 대부분 약국에서 판매한다.

때문에 몽쥬약국은 약을 사는 곳이 아니라 저렴한 가격으로 소문난 화장품 가게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세금이 붙어 비싼몸값자랑하는 각종 화장품들이 이곳에서는 반값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딱히 쇼핑할 생각은 없었지만 온김에 선물로 몇개 사들고 가자며 아침부터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품목을 정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몽쥬약국은 이른 아침부터 이미 사람들로 만원 이었다.

개인적인 방문은 물론 패키지 여행사에서 마치 관광지처럼 단체로 방문한 탓에 전문적으로 텍스리펀을 위한 직원이 있을 정도다.

친구들과 엄마에게 선물할 립밤이나 크림을 몇개 구매하고 한국에서 120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유리아주 립밤을 반값으로 구매했다. 어찌나 한국인이 많은지 아예 한국말을 하는 프랑스 청년은 이미 유명인사다.

영양크림을 선물하려고 물어보자 유창한 발음으로 "어머니 연세가 몇인데요?"라고 물어보니 말 다했다.


한손 가득 노란몽쥬약국 봉지를 들고 노트르담 근처의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이곳은 15유로 정도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세가지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저렴한 레스토랑을 찾는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거리이다. 본디 한국에서 유명한 식당이 있다 했지만 현지 느낌이 풍기는 곳을 원했기 때문에 근처의 다른 식당으로 선택했다.

그게 문제였다. 유명한 곳은 이유가 있는 법인데 그러질 말았어야 했다.


메뉴판을 보고 에피타이저, 본식, 디저트에서 각각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코스로 요리가 나오는 방식인데 대부분 코스요리가 정해져 있고 고를 수 있는 가짓수도 한두가지 인 한국의 코스요리와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꽤 된다. 대여섯가지의 메뉴 중 각자 원하는 것만 골라서 주문하는 것이다.

친구는 가벼운 토마토 샐러드를 에피타이저로 시작하여 두툼한 감자튀김을 곁들인 스테이크, 갸또 쇼콜라가 나오는 디저트로 마무리 하는 코스를,

나는 프랑스에 오면 반드시 먹고 가야한다며 달팽이 요리인 에스까르고를 에피타이저로 시작하여 파스타를 곁들인 연어스테이크, 디저트로는 부드러운 커스타드를 선택했다.


첫 시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발사믹 소르르 곁들인 샐러드는 좀처럼 실패하기 어려운 음식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 몫으로 6마리의 에스까르고가 도착했을때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생각보다 비위가 약한 편이다. 비위가 약하다기 보다 식감과 향에 민감하다.

에스까르고 전용 꼬챙이로 한마리를 꺼냈을때 느낌은 그냥 까만 덩어리 같았다. 용기를 내서 한입 입에 넣자 골뱅이보다 더 물컹한 식감으로 가장 먼저 느껴졌고 그 다음으로는 에스까르고에는 반드시 사용된다는 바질페스토의 강한 향이 훅 밀려왔다. 복잡미묘한 식감과 향 때문에 좋은 표정이 나오기 어려웠다.

바질소스를 얹어 나온 달팽이요리, 에스까르고


용감하게 먼저 맛을 본 나를 살피던 친구에게 한마리 권했다. 6마리니까 한 사람당 3마리씩은 담당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도 소희는 한마디를 먹자마자 달팽이가 먹는 풀맛이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더구나 하필 사진을 찍기위해 켠 카메라에 영국에서 첫날 견한 달팽이를 찍은 사진이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나의 비위는 더욱 더 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깝기도 하고 한마리만 먹은 것으로는 어디가서 나 달팽이 먹었다는 허세를 부릴 수도 없기 때문에 나머지 4마리도 내 차지 였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어디가서도 허세가득 외칠 수 있다. 나 달팽이 먹었다!!


강렬한 에피타이저를 뒤로하고 드디어 본식이 나왔다.

투박하게 썰린 감자튀김과 고깃덩어리를 보자 군침이 돌았다. 내가 주문한 연어스테이크는 큼지막한 덩어리와 함께 크림소스에 버무린 파스타면이 함께 제공되었다.

연어스테이크는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이었다. 연어가 원래 부드러운 생선인지라 살은 부드럽게 부서지고 비린맛도 강하지 않았다. 원래 해산물을 좋아하는 덕분에 거부감없이 식사를 했다. 하지만 함께 나온 파스타는 파스타라고 하기보다는 파스타면에 가까웠다. 무슨말인고 하니 분명 크림파스타인데 소스는 거의없고 그나마도 간이 없어 정말 밀가루 맛이 나는 파스타면만 먹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의 파스타는 친구의 스테이크에 비하면 훌륭한 편이었다. 소희의 스테이크는 가위로 잘라야할 만큼 썰리지도 않았고 심지어 스테이크용 고기에 저런 결이 나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선명한 결이 보이는 것을 보아 분명 우리나라에서 장조림용으로 사용하는 홍두께살 같았다. 생긴것만 그런것이 아니라 맛도 그냥 장조림을 그냥 구운 식감이었다. 질기고 싱거운 탓에 결국 그나마 괜찮은 감자튀김으로 친구는 식사를 마쳤다.




그래도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식사양은 정직하게 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비싸든 싸든 1인분이라고 하기 민망한 사이즈의 음식이지만 유럽은 비싸든 싸든 맛이 있든 없는 양 은 참으로 푸짐해서 오히려 남길정도다.  디저트는 너무 달아서 한두입만 먹고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뤽상부르공원까지 걷기로 했다.

유럽의 햇빛은 우리나라 보다 더 쨍한 느낌이다.

프랑스의 공원은 조각상과 프랑스식 정원 느낌으로 단정하면서도 예술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분수대 근처에 자리를 잡고 꾸벅꾸벅 졸거나 햇살을 즐기는 일은 다시는 가지지 못할 여유와도 같았다.

5월 말이 다되어 가는 햇살이었지만 유럽의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하다.

그동안 긴팔만 입다 처음으로 반팔을 입었지만 가디건을 입어도 꽤 쌀쌀함이 느껴졌다.


뤽상부르공원
맑은 하늘의 뤽상부르 공원
맑은 하늘의 뤽상부르 공원


친구 P와의 바토무슈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기 때문에 프랑스의 파리바게트라는 Paul에서 밀푀유와 타르트를 구매했다.  이것이 정말 프랑스의 파리바게트라면 도대체 프랑스사람들은 얼마나 맛있는 빵을 먹고 사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특유의 버터 냄새때문에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내가 두눈을 뒤집듯이 먹으며 박수를 쳤으니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파울의 밀푀유와 레몬타르트


부드럽게 부숴지는 밀푀유의 식감과 적당히 달콤한 크림을 함께 음미하며 나는 잠시 이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을 했다. 유럽에 온 뒤 처음으로 접한 프랜차이즈였던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떼우고 나니 어느덧 약속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유롭게 다시 뤽상부르 공원근처 지하철 역으로 가던 도중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안그래도 긴장하면 화장실에 더 자주가는데 무료화장실은 커녕 유료 화장실 찾기도 생각보다 어려운 유럽이라는 환경과 아까 마신 아메리카노 덕분에 당장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공원 내 유료 화장실앞에 이용시간이 지났다는 안내문을 보자 눈앞이 캄캄했다.

결국 한참을 걸어 근처 맥도날드에서 머핀하나를 사고 얻은 화장실 비밀번호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바토무슈를 탑승하는 지하철 역 앞에서 친구P를 만날 수 있었다.

아마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 먼 타국에서 친구와 함께 파리의 야경을 보는 행운은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파리의 에펠탑을 보는 바토무슈는 언제나 인기만점이지만 특히 밤 10시 정각이 되면 불이 반짝이는 에펠탑을 지나는 시간대가 가장 인기가 좋다. 우리는 운 좋게 시간이 바로 맞아 반짝이는 에펠탑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유럽에 오기 전 친구P와 함께 한강의 야경을 본적이 있었다.

그 때처럼 우리손에 맥주는 없지만 내 어린시절을 함께한 사랑하는 친구 땅콩과 가장 즐거웠던 시절에 만난 친구P, 그리고 새로울 것 없던 시간속에 새롭게 만난 P의 친구까지 함께 한국이 아닌 먼 파리에서 야경을 보고 있다는 것이 비현실 적으로 느껴졌다.


바토무슈에서 바라본 파리의 야경
반짝이는 파리의 에펠탑


비록 숙소가 멀어 맥주한잔 하지 못하고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헤어졌지만 이렇게 또 다른 추억이 생긴 것 만으로도 내 추억상자는 풍족해 졌다.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하니 오늘 저녁이었는지 참치 비빔밥 두그릇이 뚜껑에 덮혀 식탁에 놓여져 있었다.

항상 일찍들어와 저녁을 먹던 우리를 위해 만들어둔 몫이었을 텐데 우리가 저녁을 먹고 온다는 이야기를 전해듣지 못하셨던게 분명했다.

괜한 미안함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먼 유럽에서 이제껏 가장 정들었던 한국인 이었기 때문에 고마움이 컸다.

혹시나 사람들이 깰까봐 소근소근 하는 목소리라도 들은 것인지 매니저 님이 졸린눈을 비비며 2층에서 내려왔다.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방으로 향하려는 우리에게 수박이라도 먹으라며 냉장고를 여는 모습에서 왠지모르게 엄마의 포스가 풍겼다.


조용한 마지막을 생각했던 우리는 매니저님,우리와 자주 수다를 떨던 남자간호사님, 그리고 도착한 여자손님과 함께 때아닌 파티를 했다.

여행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만큼 설레는 일도 없고 여행에서의 고생은 물에젖은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버린다.


나는 그 날밤 별없는 밤 처럼 캄캄한 나의 미래도 잊어 버린 채 오랜만에 현재의 순간을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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