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규제의 역학관계
지난 1월 30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AI SEOUL 2026은 "전환의 시대, 도입을 넘어선(The Transformation Era: Beyond Adoption)"이라는 주제 아래, AI 분야 세계 최고 석학들과 글로벌 기업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AI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했는데요. 특히 규제와 안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세션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수 없는 질문을 마주칩니다.
우리가 만든 이 강력한 도구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
주권 AI를 확보를 위해 다양한 국가의 수장들도 주장하는 말인데요.
일론머스크도 xAI 설립초기에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에서는 지금은 핵무기를 만들지 말자에서 제대로 개발하는 쪽으로 선회하였습니다. 일론 본인이 하는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비영리기업인 영리를 추구한다면서 설립취지를 이행하지 않은 OPEN AI를 고소하였습니다.)
이 날 규제(Reaulation) 세션의 키노트 스피커를 맡은 요수아 벤지오(Yoshua Bengio) 몬트리올대 교수의 기조연설은 청중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제프리 힌튼, 얀 르쿤과 함께 AI 3대 거장으로 불리는 그는 현재 비영리 AI 안전 연구조직 'LawZero'를 이끌며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데요.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AI의 파괴적 위험(Catastrophic Risks)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닙니다.
벤지오 교수는 AI가 단순히 일자리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생화학 무기 설계, 대규모 여론 조작, 치명적인 사이버 공격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그가 든 비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AI를 핵무기에 비유한 것이죠.
원자력 기술이 인류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제공했지만, 그 위험성 때문에 '핵비확산 조약'과 같은 국제적 합의가 필요했던 것처럼, AI 역시 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적·국제적 협력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지난 다보스 포럼에서도 그는 비슷한 경고를 했는데요. 5년 이내에 인간보다 똑똑한 초지능 AI가 등장할 수 있으며, 우리는 아직 이를 통제할 기술적 해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AI가 인류에 풍요를 가져다 줄지, 재앙을 가져다 줄지는 지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제프리 힌튼 교수도 비슷한 언급을 했는데요. AGI시대가 도래하면 늦기 때문에 지금 AI에게 모성본능을 학습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성본능만이 생태계에서 상위 지성체가 하위의 지성체를 보호하고 돌보게 하는 유일무이한 특성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독점을 위한 발전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뼈를 때리는 돌직구 이면서 어찌보면 소름돋는 철학적 분석이기도 합니다.
CISCO의 하이럼 앤더슨(Hyrum Anderson) 보안 총괄이 제시한 역설같은 관점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보통 규제하면 혁신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는 오히려 규제가 안전한 AI 도입을 앞당기는 '가속기(Fast Track)'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보여줬습니다.
현재 AI 생태계는 폭발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오픈소스 플랫폼 허깅페이스(Hugging Face)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13초당 1개꼴로 새로운 AI 모델이 업로드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상상이 가시나요? 이렇게 쏟아지는 모델들 속에서 기업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보안입니다.
앤더슨은 '역직렬화(Deserialization) 공격'의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용어가 좀 어렵죠? 쉽게 비유하자면, 택배로 물건을 받았는데 상자 안에 상품뿐만 아니라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몰래 전송하는 도청 장치가 숨겨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AI 모델 파일 안에 악성 코드를 심어 실행시키는 이 공격은 기업의 기밀을 한순간에 유출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서 규제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한국의 'AI 기본법'이나 미국 NIST(국립표준기술연구소)의 프레임워크처럼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기업은 "이 기준만 지키면 안전하게 쓸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불확실성으로 기술 도입을 주저하는 대신, 가이드라인 안에서 적극적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2026년 들어 글로벌 기업들은 AI 거버넌스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ISO/IEC 42001 같은 AI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도입하고, AI 모델 인벤토리를 구축하며, 리스크 평가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규제가 오히려 기업들에게 명확한 로드맵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죠.
KISDI(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고상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전 세계가 벌이고 있는 AI 규제 패러다임을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각국의 접근법은 극명하게 다릅니다.
AI 행정명령 'Winning the AI race'을 발표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AI경쟁을 경주에 비유합니다. 규제는 혁신을 저해요소로서 판단하고, 'AI 레이스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목표 아래 규제의 문턱을 낮추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AI 안전 연구소(AISI)의 약자를 'AI Safety Institute'에서 'AI Standards Innovation'으로 개명한 것만 봐도 미국이 규제 중심에서 혁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25년 7월 발표된 'AI 행동계획'은 규제 완화, 수출 장려, 인프라 건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연방정부는 주 정부의 개별 AI 가이드라인을 철폐하려 함과 동시에 주 정부 차원에서는 캘리포니아가 독자적인 AI 안전법을 제정하며 연방정부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쓰면 세계가 쓴다. EU는 이른바 '브뤼셀 효과'를 노립니다. 규제를 먼저 만들어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이죠. 수십년을 유지한 전형적인 유럽의 전략입니다. 2026년 8월 2일부터 'EU AI Act'의 주요 규정이 본격 시행되는데요. 고위험 AI 시스템과 범용 AI 모델에 대해 엄격한 투명성, 문서화, 감독 요구사항을 적용합니다. GDPR 수준의 막대한 벌금도 예고되어 있죠. 하지만 규제가 너무 엄격해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프랑스의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미스트랄(Mistral)'은 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을 길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고위험군 AI에 대한 직접규제는 2027년까지 유예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중국답게 국가가 완벽하게 통제하면서도 강력한 오픈소스 배포 전략으로 동남아,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통합하며 AI BIG2의 세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정부 주도의 AI 거버넌스 대화를 추진하며 다자간 안전 프레임워크를 옹호하고 있죠.
한국은 이 세 진영 사이에서 독자적인 길을 찾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22일 시행된 'AI 기본법'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정된 AI 법인데요. 시행은 첫번째로 1월에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 1년 이상 규제를 유예하고, 해외 동향과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해 유예 기간을 추가로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EU가 AI법 적용을 2027년 12월까지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글로벌 규제 완화 흐름과 스타트업계들의 반발을 반영한 것입니다.
2024년 11월 27일, 성남시 판교에 인공지능안전연구소(AISI)가 문을 열었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기관으로, 영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에 이어 세계 여섯 번째입니다.
초대 소장으로 선임된 김명주 서울여대 교수는 나비 넥타이가 트레이드마크인 AI 윤리와 신뢰성 분야 전문가인데요. 그는 취임 당시 "우리 연구소는 규제기관이 아니라, 국내 AI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장애가 되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도록 지원하는 협력기관"이라며 "히말라야 등정을 돕는 셰르파(Sherpa) 같은 연구소가 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김명주 소장은 AI의 위험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세이프티(Safety): AI 시스템의 오작동이나 편향으로 인한 위험
시큐리티(Security): 해킹이나 악의적 공격으로 인한 위험
내셔널 시큐리티(National Security): 국가 안보 차원의 위험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레드팀(Red Team)' 운영입니다. 레드팀이란 조직의 약점을 찾기 위해 가상의 적군이 되어 공격해 보는 팀을 말하는데요. AI가 얼마나 위험한 대답을 하는지, 보안망을 어떻게 뚫는지 직접 공격해 보고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이죠.
엔트로픽(Anthropic)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최근 에세이 '기술의 청소년기(The Adolescence of Technology)'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규제는 신중해야 합니다. 부수적 피해를 막고, 가능한 단순해야 하며,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소한의 부담만을 주어야 합니다.
그는 규제는 필요하다, 규제는 최소한으로 적용해야 하고, 최소한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규제당국자가 AI를 잘 알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는 인류가 지금 '기술적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다고 비유했는데요. 청소년기는 격동의 시기이지만, 이를 잘 통과하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비유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요수아 벤지오 교수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AI가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줄지, 재앙을 가져다줄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답은 무엇일까요: 규제와 혁신의 균형
컨퍼런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균형'이었습니다. 규제를 자동차의 안전벨트나 총기의 안전장치에 비유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사용하는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는 총기의 안전모드를 총기 사용전에 알아야 하고, 또 안전벨트가 있어야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듯이, 규제는 AI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한, 그리고 우리의 안전을 위한 필수 장치라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장치가 아닙니다.)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혁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가드레일이 되어야 합니다. AI SEOUL 2026 현장에서 느낀 점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었습니다. 이제 그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할 책임 또한 우리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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