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만에 돌아온 추억이 청춘에게 묻는다.
슬램 덩크.
80.90년대생이라면 농구는 잘 몰라도 강백호, 서태웅, 불꽃남자 정대만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1990년 시작~1996년에 완결된 이 만화는 전설의 명작치고는 비교적 짧게 마무리 되었다. (원피스 26년째 연재중) 작가는 제발 외전, 2부를 그려달라는 전세계적인 요청을 단호히 거절한다. 슬램덩크와 강백호의 여정은 불완전한 채로 끝나야 완전해진다는 이유로.
27년만에 돌아온 소년들. 그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어른이 되었냐고. 어릴 적 꿈을 이뤘는지. 그 뜨겁던 열정을 여전히 품고 살아가는지.
북산고 농구부 채치수, 송태섭, 권준호(안경선배), 그외 다른 부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산왕과의 경기 이후에도 농구 선수로 살고 있을까.
일본에서 농구는 야구와 축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하고 인프라도 적다. 전체의 0.1% ? 아마 해마다 전국 고교선수 중 10명 정도만 대학 혹은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가 될 것이고 그중 8명은 후보생활을 하다 곧 농구를 그만둘것이다.
최강이라 불렸던 정우성, 이명헌, 신현철, 능남의 윤대협. 지학의 별 마성지. 해남의 이정환, 김판석. 이 천재들 역시 대부분은 농구가 아닌 평범한 샐러리맨이나 자영업자가 되었을 확률이 더 높다는 말이다.
북산고 농구부 대부분 또한 그럴 것이다. 산왕공고와의 전설적인 경기, 환호성과 조명, 인생 최고의 순간을 추억으로 간직한채, 내가 한때는 말이야~ 그 왜 전국대회에서~ 라는 누가 묻지도 않은 자랑을 지겹게 떠들곤 하는 어른이 되었을지 모른다.
출 퇴근과 육아, 지겨운 일상속에 맥주를 마시며 상사욕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며 낄낄대는, 우리와 똑같은, 지루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이미 청년을 지나 중년의 나이가 된 우리에게 작가는 27년만에 다시 한번 묻는다.
‘농구를 좋아하세요?’
탕, 탕
농구공을 튀기는 소리는 흡사 심장이 뛰는 소리를 닮았다. 이미 농구보단 돈을 좋아하고, 은행대출을 걱정하는 아저씨가 되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탕, 탕 이 소리는 송태섭의 드리블 소리가 아닌 27년만에 울리는 내 심장의 고동임을.
중학생 시절. 나도 강백호나 서태웅, 정대만처럼 인생의 주인공이 될것만 같았다.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특별하고 멋진 인생을 살거라 믿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어릴적 소망하던 것의 10분의 1도 이루지 못했고 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 번아웃과 매너리즘에 빠진 보통의 배나온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어떤가. 추억은 시공을 넘어 이미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여겼던 꿈의 편린, 청춘의 한 장면을 내게 보여준다.
비록 27년전만큼 뜨겁지 않더라도, 삶의 보람과 이루고 싶은 것. 꺾이지 않는 마음을 다시 떠올려본다. 더 이상 내 삶이 특별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이 아닌 후보나 2군이라도. 힘들고 고되지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책임감이야말로 소년이 비로소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비록 그들만큼 화려했던 순간은 없었지만, 천재가 아니라도 도내 no.1가드가 아니라도 남은 인생의 작은 불꽃과 열정을 이어가려고 한다.
울려라 심장이여, 내 청춘의 고동과 태동이여. 인생의 순간과 공간속에 영원히, 영원히 사무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