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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l 22. 2024

김민기

그의 처절한 투병생활은

불과 1~2년 전 일부 배우들의 언급과

최근 방영된 특별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간신히 공개되었다

그 영상 어느 챕터의 말미에서 보인,

본인이 두 손으로 감싼 뒤 얕은 흙 속에 심은

한 모종의 작은 꽃보다도 더욱 움츠러든 그의 신체가

보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마치 자신의 일생을 두 손으로 보듬어

자신이 헌신한 학전 뒷켠에 묻어두려는 듯

그는 오늘 그렇게 흙으로 되돌아갔다.


수줍음이 많은 청년,

쓸쓸한 모습

무심한 듯한 표정

그러나 함박웃음 속의 순수...

오염되지 않은 깨끗함으로

결국 수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래전 언젠가 누군가는

그의 노래들을 일컬어

이른 새벽 드 넓은 대지 위에서 스며 나오는

진실한 흙냄새 같은 원시성을 떠오르게 한다고 평했다


동일한 시절, 동일한 공간에서

누군가는 위로 날아오르는 음악과

외부로 분출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동안

김민기는

우리 정서 안으로 삭여지고

대지 아래로 차분하게 가라앉는

침묵을 노래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인기와 명분,

허세와 선동,

처세와 유행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의 상업적 대중예술 속에서

끝내 그는 무대 뒤로 숨어 들어가고

자기만의 굴을 파고 들어앉아

스스로를 '뒷것'이라 자처하면서

배우라고 하는 '앞것'들의 앞날과 성장,

그리고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순수한 문화 예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단단히 벽을 쌓고, 욕망을 절단한다.


습기를 머금은 이른 새벽의 토지 위에서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을 본 적이 있는가

그는 그러한 이슬 같은 사람이다.

그 어떠한 것에도 오염되지 않고

오로지 신성한 땅 위를 유영하는 안개의 무리들이

응축하고 결집하여 결국

맑은 이슬 한 방울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아침이슬'이라는 곡에서

정체 모를 순결함과

슬픔이 깃든 우리 고유 정서 속 애달픈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의 인생이 그 노래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거머질 수 있었던 명예와 부

마음 먹는다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던 권세와 지위

하지만 그는 죽는 그 날까지도

아니, 죽은 그 이후 까지도

그러한 것들을 사양하고 거절함으로써

세속의 권능에 압도당하는 현대인들의 물질적 속박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어느 순간 나는,

얼핏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매번 쏟아지는 유명 인사들의 뻔한 질문들 속에서

그가 항상 같은 대답으로 일관해야 했던

그 수줍음의 정체라는 것은

그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어느 누가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마치 예고 없이 비와 가뭄을 난사하는

하늘의 무자비함을 탓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하게 자신이 손수 심은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서

온 몸을 던져 어떻게든 지켜내고자 하는

우직하고 헌신적인 농부의 태도처럼

자신 스스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아주 개인적인 소망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다는 것.

그리하여, 가진 것 없는 이들과

잘 모르는 이들과

이용당하는 이들과

자신을 찾아가려는 이들에게

자그마한 힘이라도 될 수 있을까 하여

그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어린 씨앗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사람 농사에 대한 그만의 고집스러운

일종의 자기 확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세상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좇아서 갈팡질팡할 때,

아무도 찾지 않는 황망한 광야 한 가운데를

혼자서 일직선으로 걸어가는 그의 고집스런 걸음걸이는

매번 두드려대는 심장박동만큼이나 잔혹한

도시인들의 번뇌와 집착과 욕망을

어루만져 주면서 진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학전 초기 시절,

혈기 왕성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단조로운 박자를

손바닥으로 두드려대면서

따분해하는 배우들의 표정을 감내한 채

묵묵하게 대본을 녹여내려는 그의 무거운 모습에서

나는, 이 시대가 잃어버린 고유의 속도,

다시금 되찾아야 할 우리 정서의 향수가,

마치 그 먼 북소리와도 같은 일정한 리듬의 에너지로 인하여

고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온

일종의 유랑민의 슬픔 같은 것을 환기시키면서

끝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연극의 마지막 같은

어떠한 소망에 이르고자 하는 신념과 헌신이

그것을 지키는 마지막 단 한 사람에 의해서

간신히 지켜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시대에 영합하려는 예술가들이

너도 나도 명예와 부에 매달리는 동안

우리가 진정,

속박에 처절하게 저항하고

욕망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단 한 명의 진실한 창작예술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진정한 행운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진짜라 내세울 만한 것이 없고

그 어느 누구 하나

본받을 만한 이가 없는 시대에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김민기라는 존재와 동시대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정서적인 메마름을 해갈해 주었던

유일한 오아시스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것은 감히 영광이라 부를 만하다.


오늘 그는 완전히 그 다운 모습으로 영면한다

초연하고 고요하며 품위가 깃든 퇴장...

수 많은 권세가들이 자신들의 명분을 구입하기 위해서

그의 앞에 던져놓던 막대한 후원의 덫,

수 많은 지성인들이 자신들의 선의를 판매하기 위해서

그의 뒤에서 붙들고 늘어지던 인맥의 족쇄,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기 위해서 눈을 질끈 감은 그의 고집,

모든 비판과 상처를 처절하게 끌어안은 채 완성시킨 자신만의 길,

결국 그는,

타인의 길 위에서 비굴하게 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길 위에서 떳떳하게 죽음으로써

진정으로 살아남았다.


우리가 마음 속에 어떠한 스승을 떠올리면서

스스로에게 단단한 약속을 하고

비속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길,

즉, 부와 명예를 목적으로 하는 작업이 아닌

오로지 인간을 생각하고 정의와 진실로 이루어진

그 순수한 창작의 예술을 추구하는

의지를 다질 수만 있다면

그의 가치는 계속 빛을 발할 것이다.

그는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부디,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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