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갖고 있는 생명력에 대해서 온전하게 음미할 수 있는 선언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흙 속에서 단 한 방울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하늘을 향해 줄기를 내어놓는 그 순간을 목격하는 이가 느끼는 경이로움과도 같이, 막스 피카르트를 통해서 우리는 침묵이라는 거대한 대지위에서 고요하게 솟아오르는 언어의 힘을 음미할 수 있다
소음 같은 단어가 도처에 난무하고 아무런 뜻도 없는 문장이 여기저기 흘러넘치는 이 시대에, 언어는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막스 피카르트의 명상은 신의 권능과 창조된 언어 사이에서 맺어지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지만, 우리는 언어라는 것이 유일하게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권이라는 것과, 인류의 역사가 말과 언어에 의해서 세워졌음을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결정된 신의 의지. 또한 그것이 찬란한 햇살 아래에서 형상을 드러낼 수 있도록 설계된 운명. 그리고 그러한 형상에 부여된 언어가 존재로 상승하면서 펼쳐지는 연속성이, 말과 사물의 긴밀함을 약속하며 언어의 고유성을 더욱 확고하게 해 준다.
모든 피조물은 인간의 말을 통해서 존재적이 된다. 인간이 언어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언어 자신도 들어 올려진다. 이미 태초부터 언어는 결정을 위해 있어 왔다. 언어는 결정의 말을 기다린다. 인간은 결정을 내림으로써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서 침묵하는 것들과 연결을 끊고 작별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이것이 모든 자유의 기초가 된다.
마치 대지 위로 아낌없이 전체를 적시면서 흘러넘치는 폭우의 과잉이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생명력의 충분한 근원이 된다면, 인간은 신의 축복을 통하여 언어의 선험성을 잉태한다. 시종일관 이 책에서 강조되는 '과잉'과 '선험성'의 바탕은, 침묵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나는 언어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입 밖으로 던져진 하나의 말이 세상의 질서와 어떻게 조응하는지 집중하게 만든다. 동물 가죽에 비해서 너무도 나약한 피부를 갖고 태어나 그야말로 옷 하나 걸치지 못하면 사계절을 날 수 없는 지극한 헐벗음이라는 것이, 흘러넘치는 언어의 축복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면서 창조주와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은총으로 해갈되는 부분에 작가의 시선이 머문다. 인간과 말은 어디까지나 은총과 배려의 관계인 것이다.
창조론과 신학, 또한 언어와 침묵의 관계를 평생동안 정밀하게 파고든 현자의 고도로 집중된 명상을 통해서, 말(言)의 힘을 다시 생각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그 본연의 의미를 다시금 꼽씹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이렇게 사색적인 글을 그 어떠한 하락없이 오롯하게 독자의 심상 속으로 밀어넣어 그 뜻을 보전한 대단한 번역가의 노고에도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