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이다. 사계절이 변화하는 시간마다 시공간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먹이와 욕망을 재촉하는 동물의 호들갑에 대하여 해탈이라도 한 듯,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여 극한의 온도를 견디어내면서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인내하는 존재에 대한 송가(頌歌).
한나아렌트는 생전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철학가가 아닌, 정치 이론가라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알려진다. 독단적인 시선으로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응시하는 구도의 일방향적인 자세가 아닌, 지구라는 땅덩어리를 서로 공유하면서 지내야 하는 인간의 공생적인 관계에 대한 상호의존적 가치에 대한 일종의 선언. 스테파노 만쿠소의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는 그러한 한정적 지구공간에서 서로 공생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들의 숙명적 의무감을 상징한다.
동물과 식물을 모두 섭취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서 볼 때, 이 책은 우리에게 마치 외계의 행성을 묘사하는 듯하다. 식물이 자체적인 질서를 만들어 생존하고, 시시각각 자신들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서 지혜롭게 방어하고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체계를 세운다는 것은, 언제든 이동하고 정복하고 파괴하는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식물의 눈, 귀, 가치관, 신념, 공동체를 엿보는 듯한 세계 속으로의 여행을 하는 동안 독자들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공간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호흡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식물에 대해서 아득하게 망각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동물이 없어도 식물은 살 수 있지만, 식물이 없다면 동물은 살 수 있을까? 그러니 이 지구의 어머니는 식물이 아닌가?
평소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식물은 동물과 달리 불안정하지 않다. 배고프다고 소리치지도 않고,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달음박질하지도 않는다. 정착과 인내, 복종과 결실, 그리고 노력과 헌신을 할 뿐이다. 단 10초라도 식물이 만들어내는 산소 없이 과연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가? 단 10초라도? 그 어느 것 하나 동물과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분산과 결집에 대한 분석은, 아무런 대책 없이 신문기사 한 줄에 울고 웃으며 인생의 행복을 도박하는 인간들의 경박한 자화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식물은 포식자 앞에서 도망가지 않는다. 식물은 자양분을 탐색하러 가지 않는다. 식물은 더 안락한 쪽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식물은 곤경에서 벗어나려고 동물이 주로 사용하는 해법인 '이동'을 할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다면 어떻게 포식자에게 저항할 수 있을까? 동물의 경우 기능들이 특정 기관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반해 단독, 이중 기관이 없는 식물은 몸 전체로 보고, 듣고, 호흡하고, 추론한다. 근본적인 차이점은 집중화 대 분산화 전략인 것이다.
에너지를 집중하고 모험을 거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환경파괴 행위에서부터 시작해서, 과학적인 데이터와 논증, 각종 이론과 현상에 대한 뛰어난 분석들이 이 책을 빛내준다. 식물세계의 시스템에 대한 내용을 명제화하여 읽기 쉽도록 챕터가 펼쳐진다. 저자는 이탈리아 식물학자. 뛰어난 번역가와 해박한 감수자가 손을 보태었다. 독자의 이해도를 위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독서였다.
날이 갈수록 자신의 창자와 심장의 욕망에 좌우되는 이 추운 동물의 세상에서, 엄숙하게 음미하고 흐뭇하게 찬양할 수 있는 존재인 식물에 대해 심도 깊게 고찰해 볼 수 있는 고마운 명저라고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