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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민주주의 내란의 끝 / 전우용, 최지은 / 2025

책이라는 신화 출판

by Silverback


윤석열이 일으킨 십이삼(12.3) 계엄을 주제로 하여, 역사학자 전우용과 최지은 앵커가 대담형식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 문답형식으로 진행된 이 인터뷰는, 윤석열 탄핵소추가 의결된 시점을 지나 한창 탄핵심판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아비규환(이 시점의 기사들을 추후 다시 찾아본다면 이 단어의 뜻을 알 것이다)의 시국을 배경으로 12월 26일 이루어졌으며,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안갯속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정리되어 1월 말에 책으로 출간되었다. 어디까지나 문답 인터뷰이지만 읽기 편한 텍스트로 변환되어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생생함으로 어조와 뉘앙스를 전달한다.


이 대담을 통하여,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민주주의의 불완전한 태생을 목격할 수 있는데, 전우용 교수는 화두가 되는 단어들의 정확한 의미와 원류를 차근차근 되짚어가면서 독자들에게 정밀한 시각과 깊이를 가늠케 하는 친절함을 선사한다. 본디 정치철학의 가치관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범주의 명확성이고, 그 범주들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된 필수적 여건에 따라서 다양한 층위를 갖는데, 그 층위의 연결성 - 즉 맥락과 형성원인을 알아내는 것, 그리고 그러한 원인을 감안하여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와 현재의 밀접한 인과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능숙한 두 진행자는 역사의 맥락(context)에 집중하고 있으며, 독자들은 비로소 이(러한) 대담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특수하고도 기형적인 민주주의 체제와 그것이 현재의 모순적 구조를 떠안게 된 원인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군주제, 일제강점기 천황제, 해방 이후 유사 왕조체제인 독재체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몸과 마음은 '군주제'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형식적으로는 민주공화국 국민이지만, 의식 면에서는 왕조시대의 백성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았던 거죠. 물론 독재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사람들, 스스로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엘리트들이 핵심 지지세력이었고요.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국적 특수성과 맞물려있는 민주주의의 가치이다. 한국적 특수성이라 함은 자칭 공화, 혹은 민주국가의 보수(保守)라 칭하면서도 왕권체제와 귀족제도를 옹호하는 자들의 비민주성(非民主性) 혹은 독재성이며, 그것이 권력과 이익집단으로 군림하는 도중에 조준목표로 개입된 사회주의사상 혹은 공산주의세력이라는 정체의 부조리함, 일종의 느닷없음(?)이다. 즉,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억지로 형성시켜야 하는 편 가르기. 내편과 저편을 구분할 때 팔매질하기 위하여 필요한 적대적 허상.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다수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패륜집단의 야수성. 이 모든 것이 200년도 안된 짧은 변혁의 기간에 충분히 발효되지 못한 채 이 작은 한반도의 대기에 머물면서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고 느껴진다.


좌파-우파 개념은 프랑스혁명 때 생겼어요. 왕당파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한 사람들이 좌파, 온건한 입장을 취한 사람들이 우파였죠. 좌파와 우파는 공화파 내부의 대립이었고, 어느 쪽이든 왕당파를 용인하지는 않았어요.


임진왜란을 제외하고 한민족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관통하는 시기를, 노련한 역사학자와 명민한 언론인을 통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정해진 시간에 귀로 흘려듣는 영상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정리된 텍스트를 통하여 독자가 자신의 가치관 속에서 곱씹고 되새김질하여 인식을 재정립한다는 것은 또 다른 체험의 세계라는 생각도 해본다.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비현실적 내란의 아수라장 속에서, 2025년을 살아가는 성숙한 국민들이 차분하게 현상을 진단하고 이 모든 불장난의 뿌리가 어디에서 연유하였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기회는 이 민족의 역사와 비전에 보탬이 되지 않겠는가.


역사는 우리에게 내란을 제대로 진압하라는 '숙제'를 내줬어요. 역사는 자기가 준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에게 아주 가혹해요. 이번 내란을 계기로 '민(民)' 스스로가, 우리 모두가 새롭게 바뀌어야 해요. 훌륭한 민(民)이라야 훌륭한 나라를 만든다는 건 '민주제의 대원칙'이에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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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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