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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날개

by Silverback

어미 새는 아기 새가 어느 정도 자라면

나무둥지나 절벽에서 일부러 밀어내는 행동을 한다

아기 새는 무서워서 둥지 안에만 머무르려 하고

편안함 때문에 끝내 외부로 나가려 하지 않으니,

어미 새가 그러한 나태함을 끊어내고자

일부러 절박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아기 새를 급박한 상황에 노출시킨 어미 새는

스스로 날아다니는 법을 터득한 아기 새가 대견하였다

그리하여 자꾸만 자꾸만

더욱 높은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서

계속 떨어지는 연습을 시켰다


아기 새는 어떤 날은 실패해서

몸에 상처가 나고 괴로웠으며

또 어떤 날은 의외로 바람이 잘 불어서

잘 날 수 있어서 기뻤다

아기 새는 왜 자꾸 어미 새가

이렇게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는지 잘 몰랐지만

그래도 말을 잘 듣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미 새는 아기 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다른 어린 새들보다 우아했고

더 높이 오래 날았다

그것을 보는 것이 좋았고 신기했다

멈출 줄 모르는 성장은

멈출 줄 모르는 채찍질을 끌어들였다

어미 새는 계속 욕심이 났고

아기 새를 계속 훈련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무리 중에서 가장 빠르게 나는 새

무리 중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

무리 중에서 가장 오래 나는 새

그것이 자신이 낳은 새였던 것.


그리하여 밥도 먹이지 않고

친구들과 만나게 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더욱 높은 절벽과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서

사정없이 밀어대고 떨어뜨렸다


"이것이 너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것이 너가 스스로 성장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야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혼자서 날아야 다른 새들보다 더 우월해진다"


아기 새는 어느덧 점점 성장해 간다

끊임없이 계속 어미 새로부터 훈련을 받는다

그 와중에 문득 들었던 생각

"하지만 벌레를 잡고 뱀과 독수리를 피하려면

그렇게 까지 심하게 날지 않아도 될 텐데..."

아기 새는 점점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미 새에게 다가가 묻는다

"왜 저는 항상 이렇게 심하게 훈련을 받아야 해요?"

"왜 저는 항상 다른 새들보다 더 빨리 날아야 해요?"

"왜 저는 항상 다른 새들보다 우월해야 해요?"

"벌레를 잡아먹고, 맹수를 피할 수 있을 정도면 되지 않나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어미 새의 대답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

"다른 새들보다 우월해야 새답게 사는 것"

"벌레나 잡고, 도망만 치는 일은 하찮은 능력이지"

"언제나 너 높이, 더 빨리, 더 오래 날아야 해"

"가장 우러러 보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


그렇게 맹목적으로 훈련에 노출된 와중에 아기 새는

확실한 목적을 위해서 기능을 습득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

기능을 먼저 습득하고 목적을 나중에 생각하게 되는 딜렘마에 빠진다

몸집이 점점 커지면서 어른이 되어간 아기 새는

이제 무언가를 필요로 느끼기 전부터

맹목적으로 기능과 능력을 키우는데 점점 고통을 느끼게 된다


외부에서 스며드는 요구와 의무의 강제성으로 인하여

자의식과 깊은 사유가 내부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

훈련과 기능수행으로 인한 고통이

다양한 대화와 합리적 논리의 토양을 만나지 못하고

마치 몰래 숨겨둔 암덩어리처럼

점점 커다란 종양으로 자라나 자기 자신을 위협해 왔다


"아, 고통스러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우월함과 명성이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새로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왜 나에게 이걸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거지"


어미 새는 아기 새가 내부적으로 죽어간다는 것을 몰랐다

그 무엇이 어미 새를 그러한 집착으로 몰고 간 것일까


어쩌면 어미 새는

어릴 적 그 어미 새의 어미가

하늘을 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나무둥지나 절벽에서 밀어 스스로 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관심을 쏟아주지 않은 기억이 원망스러워

내가 새끼를 낳으면

기필코 저렇게 키우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오히려 아기 새가 자연스럽게 날게 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 대신

어미 새 자신의 괴로운 기억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아기 새의 고통스러운 성장과정을 강제한 것은 아닐까


아기 새를 혹독하게 가르친다면

아기 새가 능력을 갖추게 되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통해서 느끼는 본인의 성취감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몸집이 커진 아기 새는

어미 새가 항상 가르쳐준 절벽,

항상 데리고 간 나무둥지 위로 기어서 올라갔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아래로는 땅을 내려다본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힘차게 날았다


하지만 더 이상 날개는 펴지지 않았다

떨어지는 순간 문득,

왜 날개를 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엇이 사랑인가

무엇이 도움인가

도대체 그 무엇이,

순환의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건강하게 세상을 이겨내는 참 인생인가!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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