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포스트잇

부표

by Silverback

바다 위에 부표가 하나 떠 있다


수면이 낮아지면 부표가 내려간다

수면이 높아지면 올라온다

그 부표는 항상 수면을 따라서만 움직인다

그는 종속되어 있다


그리하여

자신은 언제나 수면 위에 달라붙어 있으면서

온갖 소음과 파도의 간섭에 시달린 채

하늘의 기쁨도

심해의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


육지에서 보면 그 부표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

막상 부표 그 자신은

높이 드높여진 것도...

혹은

낮게 끌어당겨진 것도 모른 채

언제나 현실에 지쳐간다고 믿는 것


어떤 날은 파도가 와서 위로해 준다

이봐 친구

오늘은 어제보다 물이 높아

그러니 자네도 성장한 것이지


또 어떤 날은

바람이 와서 으름장을 놓는다

이봐 친구

오늘은 어제보다 물이 낮아

그러니 자네도 단단히 대비하라구


도대체

뭐가 높고 뭐가 낮다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하루하루

이 지겨운 수면에 얽매여서

저 하늘이

항상 내 머리 위에만 떠 있고

깊은 심연이

항상 내 발아래로만 가라앉아 있는데!


높은 파도가 왔던 날도

하늘은 언제나 갈망의 대상이었고

낮은 파도가 왔던 날도

심연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지 않았는가!


나는...

막상 나 자신은...

나의 위치를 모른다

내가 어디에 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내가 이 부표에서 해방되어

저 단단하고 고요한 육지에 발을 딛고 서서

지금 이 요동치는 바다를 응시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무거운 내 의식의 위상과

아득한 존재의 고유성으로

변화하는 모든 것을 인식하고

손과 몸에 스치는 역사를 느끼면서 살 수만 있다면...


나의 절대적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고

나의 기쁨과 행복

고통과 슬픔을 기꺼이 확신할 수만 있다면...


흔들리는 물살의 표면에서 해방되는 날

그때 나는,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