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와 삐약이 이야기

삶 속에서 만나는 친구 1

by 실버버드

어릴 적, 내가 정말 사랑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이별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오랫동안 남이 있다.


나는 동물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부터 많은 동물들이 내 곁에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작은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작은 누렁이 한 마리가 가족이 되었다.

좀도둑이 많은 주택가여서 그랬는지,

집 지키는 개로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 학교 앞에서 나는

어떤 아저씨가 상자에 넣어서 팔던

노란 솜털 같은 병아리들에 홀려 몇 마리를 데려왔다.


어머니는 병든 병아리들이라 오래 못 살 거라고 하셨고,

실제로 며칠 지나지 않아 대부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하지만 단 한 마리가 살아남았다.

‘삐약이’라는 이름을 얻어

‘꼬끼오’ 하고 울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자랐다.


삐약이 특기는 누렁이 밥을 뺏어 먹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누렁이는 그런 삐약이를 싫어하지 않고,

제 밥을 기꺼이 나눠주곤 했다.

삐약이는 수탉답게 기상이 강한 녀석이었고,

새벽마다 우렁차게 “꼬끼오”를 외쳤다.

반면에 누렁이는 조용하고 순한 녀석이었다.

삐약이가 다가와 장난을 걸어도,

누렁이는 귀찮은 내색 없이 받아주었고,

밤이 되면 녀석들은 함께 몸을 붙이고 잠들곤 했다.


그렇게 착했던 누렁이는 오래 살지 못했다.

정원에 놓인 쥐약을 잘못 먹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나고 말았다.

누렁이가 떠난 지 얼마 지나서 않아,

삐약이도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정원에 놓인 쥐약 때문에

누렁이처럼 위험할 수 있다는 걱정때문이었다.


여름방학이 오면 삐약이를 만나러 갈 수 있다는 말에,

매일같이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외가를 방문하던 날,

삐약이를 다시 만나 놀 생각에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었다.

외가에 도착하자마자 대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가

마당 이곳저곳을 살피고,

닭장이 있던 자리를 기웃거리고,

마루 밑도 엎드려 들여다보았지만,

삐약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잡아먹었다는 외할머니의 말에

나는 울며불며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내가 삐약이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에

부모님이 마음이 쓰였는지,

그 후로 우리 집에는 십자매, 문조 같은 새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주로 새 밥 주는 것이 내 몫이었는데,

새들은 혹시라도 끼니를 거르면

금세 기운을 잃고 아팠다.

그래서 제때 밥을 주는 게 중요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새 모이를 깜빡해서 새가 죽는 꿈을 꾸다

식은땀을 흘리며 종종 깨기도 했던 걸 보면,

그게 어린 나에게는 제법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밥을 잘 챙겨주더라도 새들은 연약했다.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며칠 동안 밥을 못 먹고

꾸벅꾸벅 졸다가 죽었다.

나는 왜 새가 갑자기 죽는지 이해하지 못해

마음이 무척 쓰였다.

갑자기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혹시 배탈이 나서 죽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어머니가 내 배가 아플 때 만져주시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


꾸벅꾸벅 졸면서 나쁜 조짐이 있는 새가 있으면

새장에 손을 넣어 조심스레 꺼낸 다음,

배를 손으로 살살 문질러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다음에는,

졸던 새가 기운을 차리고 살아났다.

그 뒤로도 새가 기운이 없어 보이기라도 하면

늘 꺼내어 만져주었고,

희한하게도 그 새들은 더 이상 갑자기 죽지 않고

꽤 오래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눈여겨보시던 어머니는

한 번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커서 의사가 되면 좋겠다."

어렸을 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어머니는 늘 나를 꼼꼼히 지켜보며

내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소질이 있다고 믿으셨던 것 같다.


돌고 돌아,

의업을 오래도록 해오고 있는 나는

가끔,

그때 나를 바라보시던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젊었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깨닫는다.


친구로 늘 오래 함께 있고 싶어 했던

그때의 어린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는 것을.


어쩌면 그래서,

이런저런 고달픔 속에서도

의업을 이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도 어머니는 그때처럼

따뜻하게 나를 지켜보고 계실 거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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