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증학교 5학년 아들은 부쩍 엉덩이가 가벼워져간다. 한살 터울의 누나는 무겁게 앉아서 그날의 과제들을 묵묵히 해 나가는데 반해 아들은 그것이 참 힘든가보다. 방학을 앞두고 1학기 수학문제집을 빨리 끝내면 방학때까지 실컷 놀아도 좋다고 했다.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 하고선 계획했던 날까지 끝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 결과 이틀 더 할 일이 남았고, 방학 전 자유시간은 이틀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러자 아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2회 분 남은 수학문제집을 푸는 도중, 1회분은 풀고 나머지 1회분은 답안지를 보고 아주 이쁘게 깨끗하게 적어놓은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풀어놓은 흔적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불러와서 물었다. 연습장에라도 풀었다면 가져와 보라고 말이다. 그러나 없었다. 모든 상황을 확인한 뒤, 물었다. 답안지를 보고 답을 적었는지 차분히 물어보았다. 주춤주춤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을 보고 썼다고 말을 했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분명 자신을 속이고 엄마를 속이며 거짓말을 한 것이니 혼나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매일 해야하는 자기주도학습이 힘든 것이 아니라 하기 싫고, 놀고 싶고, 무엇보다 이걸 왜 꼭 해야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단 생각이 자꾸 들었다. 혼내고 풀으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그것에 대한 이유를 모른 채 그냥 하는거라면 언젠가 또다시 이와 같은 일은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공부든 일이든 취미든 좋아하지 않고,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아들에게 그저 수학문제의 답안지를 보고 풀었다는 것이 잘못된 방법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다시 풀어보라고 토닥여주고 싶은 맘도 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스스로 하고 싶은 무언가를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그것이 가르친다고 되는 것인지를 나도 잘 모르겠다. 좀더 고민을 해 보고 이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하고, 그저 검사 받기 위함이 아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 엄마의 걱정과 고민과 답답함을 모르는 아들은 여전히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