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당근.
무엇이 우리를 굶주리고 충만하지 못하게 하는가?
글쓰기는 우리를 만족시키고 허기를 면하게 하는가?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우리가 소스를 제공한 결과물은 창조적 허영심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인가?
작가에게 더 많은 시간과 좋은 글로 마무리될 여러 과정을 보여주고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는 가장 최선의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버전 1.0부터
완성 3.5
다시 완성 4.5-6까지의 지난한 기록물 중에 마지막 출간물을 선택하는 수고를 줄여줄 것인가?
오타와 비문 없이 말끔하고 정중한 글로 보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할 것인가.
글 쓰는 작업으로
내속을 긁고 우려낸 결과물로 당신의 속도 긁어 상처 낸 자리에 새살이 돋고,
왜 글을 썼는가, 왜 굳이 그것을 찾아 읽었는가, 어떤 지점의 불편이 가시 박힌 자리처럼, 보석의 흠처럼 무의식적으로 자꾸 긁게 되고
의식적 사유로 변명과 대답을 찾아 작가와 독자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에 얼마큼 기여할까.
오랜만에, 작가라고 소개할 일이 생겼다.
잦으면 1년에 한두 번쯤, 작가라는 직업에 환상을 가지신 분들을 뵙고,
자신의 토지 같은 삶에 대해서 풀어써주시기를 요망하는 분들과 스치기도 한다.
자신이 먹을 밥을 스스로 짓지 않는 사람,
자신의 빨래를 스스로 하고 일상의 오물을 닦고 천천히 빛을 내는 과정을
시간을 들여 완성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자신의 인생이 타인과 다르게 찬란하며,
글로 남겨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의 인생은 빛나고 기록될 가치가 있다.
다만 나는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없는 작가고, 유료로 자서전이나 소설을 대필해 주는 직업적 작가가 존재하며
그들의 실력이 더 뛰어나고 비싸지 않은 값으로 고용할 수 있다고 정중히 방법과 협업법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챗 지피티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알려드렸다.
어르신은 그런 글이 매력적일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좋은 질문이었다.
(이분은 예술작업을 이해하고 사업적으로 만져보신 분이셨다)
나는 보통은 아니라고 대답해 드렸고, 그걸 빛나게 하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능력이고
그 빛을 발견하는 것 또한 독자의 몫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분이 내가 당근 한 30년 된 낡은 파버카스텔 색연필의 가치를 알아챘듯이.
내가 그 무수한 돌멩이속에서 나를 홀리는 보석을 찾아냈듯이.
이 글을 왜 쓰게 되었냐면, 기억하려고....
너무 오래된 물건은 당근 하지 말고 폐기해야겠다고 기억해야겠다. 그 안에 내가 너무 슬플 때 그린 낙서가 들어 있었고 발견하신 구매자가 다시 연락을 하셨다.
나는 너무 그림을 돌려받고 싶었지만. 그냥 종이에 그림이고 무심히 얽히려는 인연을 끓으러 버려야 한다면,
버리는 게 옳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소중한 것들도 많이 내려놓고 낙서 한 장에 울었다.
작년에 떠나보낸 내 고양이의 볼꽃 같은 눈과 색과 형태만 크로키한 거였다.
너는 이제 없다. 나는 너의 다정함과 부드러움을 잊고. 가끔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또 잊고 살다 나도 사라질 것이다. 때가 되면.
어제는 처음 떠난 보낸 멈머의 기일이었어요. 길지 않은 저의 삶에서 10년 17년 16년을 함께한 다정이 들에게 또 깊이 기도로 마음을 전합니다. 17년과 16년은 겹쳐 있는데요 각자 더하게 되어서 저는 긴 수명을 공짜로 산 기분이랍니다. 이런 식으로 제가 10살짜리 100명을 만나면 100살이 되고, 70 노인 두 분을 뵈면 140살이 되고.... 그렇게 영원까지도 무한히 수명을 셀 수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