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자

신데렐라가 다 말하지 않은 것.

by 은림



우리가 새 집에 가던 날은 햇살이 눈이 부실 정도로 따가운 아주 맑은 날이었다. 마차가 달리는 길가에는 물오른 나무 가지들이 통통하게 잎을 벌리고 있었고, 그 너머로 펼쳐진 밭과 언덕과 농노의 오두막이 몹시도 정겹고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가 달리는 큰길은 언덕을 따라 곧게 뻗어 있었다. 그 큰길 끝에서 시작되는 대 저택의 모서리를 훔쳐보았을 때 나와 동생은 우울하면서도 약간 들떠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귀족 미망인이었다. 그것도 몹시 젊고 아름다운... 주변의 남자들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들은 어머니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들은 매일 같이 집을 찾아왔고, 어머니가 그다지 반기지도 않는 멋진 선물들을 보내며 나와 동생을 식사와 파티에 초대하곤 했다. 나는 장녀로서 모든 일에 의연하려 애쓰고 태연하게 처신했지만 내 동생 에린은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소심한 성격에 통통한 체격을 가진 아주 평범한 소녀였다. 얼굴은 빼어난 어머니를 닮아서 밉상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유쾌한 인상이라곤 할 수 없었다. 에린 자신도 그것을 의식해서 사람이 많은 곳에는 그다지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를 탐내는 많은 남자들은 언제나 우리를 가만해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들은 거의 매일같이 우리를 핑계 삼아 어머니를 자신의 고성이나 영지, 혹은 별장으로 불러내었다. 그리고 매번 어머니가 다시 사교계에 나올 것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어머니는 ‘여자’였지만 그전에 두 딸들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다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특출 나게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평범한 두 딸이 그 어깨에 얼마나 버거운 짐이 되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안 밖으로의 압박과 세 사람의 생계를 너무 근근이 이어주던 유산, 그리고 여자란 것은 장식용 꽃이자 애 낳기 도구일 뿐 도무지 인간으로서의 노동과, 그 노동만큼의 대가를 기대할 수 없던 세태는 결국 어머니를 밀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영원히 홀로 일 것 같던 아름다운 미망인은 마침내 누군가를 선택해 버렸던 것이다.

신데렐라의 아버지는 대부호였다. 그는 귀족은 아니었지만 대대로 부자인 오래된 집안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집안에서 자란 사람답게 호쾌하고 사리분별력이 뛰어났고, 언제나 주제 파악을 잘했다. 아마 어머니는 그가 보통 귀족처럼 능력 외로 으스대지 않는다는 것이 꽤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너무 위세 당당하거나 잘난척하지 않으면서 여린 미망인을 부드럽게 떠안아줄 남자가 필요했던 거였다. 그리고 이쪽이 미망인이란 것이 거슬리지 않게 그 또한 상처했으며 그 사이에 난 귀여운 딸이 있다고 했다.

“어깨를 펴라, 조금도 주눅 들 것 없어. 나는 그의 하녀나 첩이 아니고 아내가 되기 위해 가는 거다. 너희는 그의 귀여운 딸들이 되는 거야.”

새아버지의 집 대문 앞에 우리를 실은 마차가 멈춰 서자, 하인들이 짐을 내리고 주인을 부르는 등의 분주한 틈을 타 어머니가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내내 다소곳이 참고 있던 나는 기어코 울컥하고 말았다. 앞의 모든 상황은 충분히 이해, 납득할 수 있지만 난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속마음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사랑하면 좋겠다, 그럼 서로서로 행복할 것이다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슴 뒤편에 미진하게 남은 것은 서러움이었다. 어머니는 벌써 아버지를 잊은 것일까? 돌아 가신지 아직 3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나는 사나운 눈초리로 그녀에게 대들려다가 멈칫했다. 금빛 머리를 단아하게 추켜올린 어머니의 뒤 목선이 떨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슴속으로 차분히 삭혀내느라 아주 강하고 애처롭게.

“드와시 언니...”

말수가 적은 에린은 이미 어머니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녀의 눈에도 약간의 홍조가 어려 있었다.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자. 어머니의 말처럼,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야.”

마차에 짐을 싣고, 그리 오래는 아니지만 꽤 정들었던 우리 집을 떠나올 때 나와 동생은 약간 울었었다. 거기서 울었으니까, 우리는 서로 여기서는 울지 않기로 약속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 앞을 가로막은 육중한 문이 열리기까지 우리는 꽤나 긴장하고 있었다. 시종이 기다리라고 말하고 먼저 사라진 좁은 문틈을 보면서 동생과 나는 서로 잡은 손이 흥건히 땀에 젖는 것을 느꼈다. 그 어둡고 칙칙한 문안에서 어떤 커다란 괴물이 불쑥 튀어나와 우리와 어머니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그때 ‘그녀’가 그 문안에서 나왔다.

“어서 오세요, 새어머니.”

우리는 그녀를 보고 한 동안 숨을 멈추고 서 있었다. 눈앞에 살아 있는 진짜 요정을 보는 것 같았다. 등뒤에서 일렁이는 햇살처럼 찬연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기던 그녀. 홍옥처럼 붉은 입술에 반짝반짝한 적금색 머리를 가진 열다섯이 조금 넘었을까 한 그 소녀가 바로 새 아버지의 딸이었다.

“너무너무 기다렸어요, 정말 아름다운 분이시네요. 반가워요 두 언니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에린과 나는 그 아름다운 소녀가 ‘언니 언니’하고 친근하게 우리를 부르며 존중해 주는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그녀는 정말 우유와 사탕만 먹고사는 천사 같았다. 그런 사람과 한 집에 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쯤에서 먼저 말해 두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그녀를 재투성이 소녀라고 놀리며 못살게 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되 먹지 못해도 그곳의 안주인이 그녀란 걸 모를 정도로 우둔한 사람은 우리 중엔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예의와 경우를 알고 있었다.


우리의 심술은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새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얼마나 위하는지, 어머니의 미모를 반도 빼지 못한 우리는 그의 눈에 얼마나 먼지 같은 존재인지는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머니만 행복하다면!

일은 바로 그것에서 발단이 되었다. 새아버지의 딸은 우리에게 무척 다정하고 친절했지만, 솔직하진 않았다. 어느 저녁이던가, 왕궁에서 열리는 조촐한 만찬에 새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가기로 하셨다. 그 일로 신데렐라는 약간 심통이 난 것 같았다. 우리가 올 때까지 그녀는 줄 곳 새아버지 옆에서 작은 신부 노릇을 했던 것이다.

신데렐라는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를 아름답게 장식할 장미가 필요하다며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가시가 많은 장미를 하녀에게 꺾어 오라 시켰다. 작은 여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어린 하녀 애의 손이 빨갛게 상처투성이가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장미는 어머니의 머리와 옷에 치장되어 어머니를 소스라치게 찔렀다.

“앗!”

“무슨 일이오?”

새아버지가 물어오자 어머니는 얼른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를 숨겼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데렐라가 선물한 장미가 너무 싱싱해서 가시가 좀 있네요.”

어머니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 했지만 새아버지는 금방 노발대발했다.

“아니, 당신은 지금 내 딸이 어머니에게 일부러 가시 돋친 장미를 선물했단 밀이요?”

“여보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

“듣기 싫소.”

그때야, 우리는 새아버지가 얼마나 자기 딸을 아끼는지, 그리고 얼마나 생각이 짧고 갑갑한 사람인지를 알았다. 더한 일이 일어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이가 약간 불편했어도 함께 만찬에 나갔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좀 걱정하면서 저택에 온 뒤로 주욱 방에 틀어 박혀 있는 에린을 위로하러 그녀의 방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 세 딸들의 방은 모두 한 층에 있었는데 어느 방이든 우리 방으로 가려면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신데렐라의 넓은 방을 지나쳐야 했다. 그 방 근처를 지날 때면 난 나도 모르게 발자국 소리를 줄였다. 죄지은 건 아니지만 굳이 누구의 신경도 거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들으라는 듯이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꿰뚫었다.

“아직도 아버지는 우리 엄마를 사랑하셔. 새로 온 계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계모의 화장 덕지덕지한 얼굴을 뭐가 좋다는 건지. 그 딸들을 봐.. 화장을 벗겨내면 개네 엄마도 딸들이랑 똑같을걸? 나는 우리 엄마를 쏙 뺐다고 아빠는 늘 말씀하셨어. 그러니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고, 아버지가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니겠어? 아버지는 새로 온 계모의 딸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아. 흥. 그런데 아버지 앞에서 사랑해 달라고 꼬리 치는 모습이란.... 마치 시궁창에 빠진 강아지 새끼 같지 뭐야?”

나는 벼락을 맞은 기분으로 그 자리에 꼿꼿이 굳어버렸다. 어떻게 그렇게 천사 같은 입술로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안이 벙벙해서 나는 한동안 내 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 청력은 무자비할 정도로 깨끗했다. 뒤이어 들려오는 하녀의 인기척에 재빨리 그 자리를 피했지만, 에린과 함께 있으면서도 나는 한동안 그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언제나 언니들은 정말 아름답다고, 어머니를 닮아서일 거라고, 자신을 사랑해 줄 언니들이 한꺼번에 둘이나 늘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언니들은 다 알 수 없을 거라고 웃었던 그 애가 정말 저 애일까?

나는 그때부터 큰언니의 권리와 힘을 행사하려고 마음먹었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 단순한 일이었다.

“신데렐라!”

나는 에린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신데렐라를 불러 난로에 떨어트린 반지를 찾게 하고 밀어버리는 거야. 재투성이가 되면 다들 웃겠지. 그럼 그 앤 재투성이 아가씨가 되는 거야. 소심하지만 마음씨 착한 에린은 퉁퉁한 턱을 흔들며 나를 말렸다.

“언니 난 그렇게 못해. 절대로 못해.”

그러나 이미 내 마음은 서슬 퍼런 칼을 갈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깨닫게 해 주겠다. 어떤 방법으로든.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결혼식 때 섰다면 비단 면사포를 훔쳐내었다. 그것은 신데렐라가 목숨처럼 아끼는 거였다. 그리고 신데렐라가 울고 있을 때 말했다.

“언니 말을 들어. 나는 네 언니니까 내 말에 순종해. 안 그러면 네 엄마의 면사포는 불에 홀라당 타 버릴 거야? 아버지한테 이르고 싶지? 일러보렴. 그럼 네 엄마 면사포는 한 줌의 재가되어 알아볼 수도 없게 될 거야. 어차피 우린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었어. 그러니 아무 상관없지만 너는 착한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누명 쓰게 될걸? 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면사포 둘 다 잃게 될 거야.”

신데렐라는 분개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반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인들의 동정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순종적인 척 착한 척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의 분노는 더 불붙었고, 그녀를 괴롭혀서 어떻게든 그녀의 본성을 끌어내어 사방에 공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예쁘고, 고집 세고, 그리고 불행하게도 머리까지 좋았다! 그녀가 우리의 구박을 참는 것은 인내심이 아니었다. 제 아버지와 똑같은 고집에서 비롯된 비융통성과 주변의 동정 어린 시선을 구하기 위한 교묘한 계략의 방편이었다.

소심하던 에린은 나 모르는 새 그녀에게 구박당한 것이 많았던지, 아니면 단순히 언니인 나에게 합세해 주는 것인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우리 하는 양을 보고 야단치려던 어머니도 우리말을 전해 듣고는 분노에 떠셨다. 어머니는 우리의 나쁜 장난에 끼어들진 않았지만 대체로 눈감아 주거나 약간의 소스를 뿌려 주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며칠 전 성으로 돌아온 왕자님을 위해 무도회를 연다는 전갈이 왔을 때, 우리 자매도 여느 처녀들처럼 들떠 있었다. 물론 왕자님의 눈에 들거나 아름다운 귀족 도련님을 만날 거라는 허튼 꿈은 꾸지 않았다. 우리 자매는 둘 다 주제파악을 너무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억누르려 해도 그렇게 쉽게 억눌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밤새도록 옷장의 옷을 골라 입어보고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신구를 꺼내어 맞춰보느라고 부산했다. 신데렐라는 여느 때처럼 착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어머 아름다워요 언니!’를 연발해 주었지만 그녀의 파란 눈 속에 숨은 시기와 복수의 불길을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나는 보란 듯이 이번에 새로 장만한 가장 아끼는 리본과, 동생이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진주 목걸이를 한껏 늘어놓고 그녀를 더욱 골려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가 남의 물건에 손댈 수 있을 정도로 간이 크다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언니, 전에 빌려간 내 목걸이 돌려 줄래요?”

에린이 이렇게 완곡하게 물어오기 전까지 나는 그 물건들이 없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목걸이는 내 손에 없었고,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날은 무도회 당일이었다. 아무리 느리고 참을성 많은 에린이라도 몸이 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물건들이 신데렐라의 방에 그림처럼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정말 기절하도록 놀랐다. 그녀는 쥐들이 훔쳐와 준거라고 변명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거짓말 장이 계집애!”

재투성이가 되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그 애는 정말 한 점 후회의 빛도 없이 우리에게 호소했다.

“언니, 정말이에요. 제가 무도회에 가고 싶다는 혼잣말을 듣고 쥐들과 새들이 가져다주었어요.”

그녀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나는 갑자기 며칠 전 내 방에서 나오는 신데렐라의 모습을 보았다는 시녀의 이야기가 얼핏 떠올랐다. 내 방엔 무슨 일인가 해서 하녀가 신데렐라를 불렀더니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거였다. 그 말이 기억난 순간, 나는 처음으로 신데렐라의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신데렐라의 어머니는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했다. 마치 악마처럼.

“쥐와 새들이 가져다주었다고? 거짓말도 정도 것 해야지! 갖고 싶다면 빌려달라고 말하면 됐잖아? 우리가 그렇게 나쁜 언니들이었어?”

나는 히스테릭하게 그녀를 꾸짖으며 내몰았다. 하지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공포에 질렸다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신데렐라에게 내가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들킬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비단옷과 함께 장식된 그 부수물들을 갈가리 잡아 찢었다.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소중한 것이었지만 두 번 다시 그것들을 몸에 걸 용기가 없었다.

“이 따위 더러운 것, 이제 필요 없어. 재투성이가 만져서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을 걸?”

나는 보란 듯이 비웃음을 남겨주고 그녀에게서 돌아섰다. 그러나 뒷목이 서늘해지는 시선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실은 그날, 어머니와 우리 자매는 의논을 해서 그동안 우리가 신데렐라를 너무 못살게 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그녀를 무도회에 데려갈 새 드레스를 몰래 주문한 것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그것을 받고 우리 자매와 함께 오해를 풀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사이가 좋아질 거라는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아마 초대장으로 들뜬 기분에 다들 마음이 좀 부드러워져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기분은 내 손에 잡아 찢어진 비단옷처럼 갈가리 찢겨 버렸다.

“무도회에 가고 싶다고? 가게 해주지. 난 너무나도 너그러운 언니니까 말이야.”

내 말의 가시를 눈치채지 못하고 신데렐라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때 타이밍을 맞춰서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머, 신데렐라도 데려간다고? 좋은 생각이구나. 이 애는 예쁘니까 우리 가족은 정말 자랑스러울 거야. 그리고 말이다...”

어머니는 인자하고 아름답게 웃으면서 등뒤의 드레스 상자를 그녀에게 내 보이셨다.

“너를 위해 우리가 새 드레스를 주문했단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구나.”

색색의 실로 수놓은 가벼운 호박단 옷은 정말 보는 사람은 군침을 흘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실은 좀 덜 좋은 것으로 주문하려다가 신데렐라와 사이좋아질 것을 생각하고,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하고 좀 너그러워진 마음에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할 옷을 골라버렸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무척 후회되었지만.

“어.. 어머니 너무 아름다워요! 정말 감사합니다.”

신데렐라는 황홀해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드레스에 손을 댔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어머, 그런 손으로 만지면 소중한 드레스가 더러워지잖니. 가서 씻고 오려무나.”

신데렐라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하며 방을 나섰다. 그때 나는 가능한 한 가장 부드럽고 다정한 언니의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애, 신데렐라야. 미안한 부탁 좀 하나 할게, 어머니가 잿더미 속에 콩 한말을 쏟으셨다더구나. 씻기 전에 그것을 좀 골라내 주겠니? 내가 하려 했지만 나는 에린의 치장을 도와줘야 해서 말이야. 네가 알다시피 에린은 너무 못생겨서 네가 치장하는 시간의 백 배는 더 필요하거든? 하녀를 불러서 네가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할게.”

너무나도 부드러운 어조와 정직한(?) 청을 신데렐라는 차마 거절 치는 못했다. 속이야 어쨌든 그녀는 겉으로는 무척 착한 아이였으니까 말이다.

“예, 그럴게요 언니.”

그녀는 순종적 인사를 하고 가 버렸다. 그 등뒤에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잿더미 속에 흘린 콩 한 말은 무슨 수로 다 골라낸단 말인가? 게다가 하녀를 붙여두는 것은 그녀를 도우라는 의도가 아니라 감시하라는 의도였다. 정말 신데렐라가 다른 짓(?)을 못하도록 말이다. 만약에 쥐 떼라도 돕겠다고 달려온다면 하녀는 당장에 비명을 지르면서 부산을 떨겠지.

나의 이런 모든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아서 에린의 치장을 끝내고 마차가 도착할 때까지 신데렐라는 잿더미 속에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어머나 신데렐라야. 아직까지 씻지도 못했니? 이를 어쩌면 좋아, 무도회에 늦겠네.”

내가 너무나도 미안하고 당황한 투를 보이자 신데렐라는 너무나도 착한 동생의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어머니, 언니들 다녀오세요. 제가 너무 게으른 탓인 걸요.”

그 말에 나는 또 한 번 분노했다. 신데렐라를 향한 측은한 시선들이 의식되었던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나를 경멸하는 시선도 함께였다. 저 악랄한 계집애는 어쩜 저렇게 말도 잘하는 것일까?

“그래? 너무나 상냥하구나. 고맙다. 그러잖아도 네가 너무 늦어서 새 드레스를 묵히게 될 것 같아 그냥 에린에게 입혔어. 괜찮지?”

괜찮을 리가 없다. 에린도 너무 코르셋을 꽉 조여서 거북해했고, 신데렐라는 자기 아름다운 호박단 옷이 살찐 에린에게 입혀진 것을 모욕스러워하는 눈치가 뚜렷했다.

“그럼 집 잘 보렴 신데렐라. 가자꾸나 얘들아.”

어머니는 너무나도 호흡이 잘 맞게 그 미묘한 공기를 떨쳐내고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마차에 자리를 잡고 출발할 때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긴장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차가 저택이 보이지 않는 길가로 접어들어서야 간신히 편안하게 숨을 골랐다. 혹시나 신데렐라가 무슨 마술이라도 부릴까 봐 긴장해 있었다고는 에린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붉은 노을이 감도는 저녁을 달려 마차가 도착한 성은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별처럼 아름다웠다. 시종의 시중을 받으며 열두 계단을 올라 무도회장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한번 환호성을 울렸다.

“와...”

천상의 것처럼 장중하고 화려한 수십 개의 대리석 기둥이 높은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고, 그 사이마다 에는 화가의 정성 들인 손질로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불과 그림자의 일렁임에 뒤엉켜 살아 있는 것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도회장은 다섯 개의 모서리를 가진 야외 궁전이었는데 이중 두 면만이 벽이 있어서 그곳에 임금님의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옥좌는 모두 금과 은으로 번쩍번쩍해서 나는 한동안 그곳에 사람이 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참을 노려본 끝에 그곳에 의자와 똑같이 금과 은으로 치장한 두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주변에는 색색의 비단과 호박단 옷을 차려입은 여자들이 물에 뜬 꽃처럼 음악을 따라 흘러 다니고 있었다. 귀족의 만찬이나 살롱의 파티에는 가봤지만 이 정도로 화려한 곳은 처음이어서 우리는 무도회가 끝날 때까지 입도 다물지 못하고 홀려 있을 뻔했다. 그러나 다행히 어머니의 가벼운 꾸짖음으로 에린과 나는 표정을 수습해서 우아한 귀공녀들 흉내를 내며 무도회장으로 들어갔다.

“저분이 왕자님이야.”

“외국에서 공부를 하시다 이제 막 돌아오셨대.”

“어쩌면 저렇게 늠름하고 잘 생기셨을까?”

어디를 가던 그날의 화제는 온통 왕자님 이야기뿐이었다. 에린과 나도 호기심에 춤 신청을 받기 위해 무리 지은 귀공녀들 틈에 끼었다. 그곳이 가장 많은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었고, 왕자님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처녀들의 수줍은 소곤거림과 간간한 손짓을 지표 삼아 번쩍번쩍한 금붙이 속에서 왕자님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순간 두근거리던 내 기분은 싸늘히 식어 버렸다. 너무나도 시시한 얼굴로 길게 하품을 하고 있는 남자가 바로 왕자였다! 부왕의 건장한 체구와 왕비의 빼어난 미모를 물려받은 그는 외관상으로는 별로 흠잡을 곳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그가 서 있는 자세였다. 삐딱하게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몸에는 어떤 장식을 갖다 붙여도 빛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벌써부터 만취한 듯 달아오른 코끝과 핏발이 선 흐리멍덩한 눈동자는 뒷골목의 주정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유학을 가서 무엇을 얼마만큼 배워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의 얼굴에서 나태와 불규칙한 일상에 찌든 너저분한 내음을 한 번에 읽어내 버렸다.

“저런 왕자라면 내 쪽에서 사절이야. 다들 눈에 뭐가 씐 거 아냐?”

나는 옆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혼자 분통을 터트렸다. 평소라면 누가 듣건 말건 크게 소리쳤겠지만 어머니의 당부를 들어서 지금은 아주 조심하는 거였다. 어머니는 내가 왕자의 눈에 든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지만 최소한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만 하지 않기를 부탁하셨다. 내 성격과 외모는 친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아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가는 임금님이 한눈에 내가 내 아버지의 딸임을 알아볼 거라는 거였다. 내가 창피한 것은 상관없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것만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신경을 바늘 끝처럼 세워가며 나와 에린을 꼼꼼히 가다듬었다. 물론 가끔 춤도 한 두 곡씩 추면서 말이다. 에린은 대게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에 넋이 나가 있었으므로 그녀가 과식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이렇게 나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해야 했으므로 삼일 간의 무도회에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던 그 아가씨의 첫 등장은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호....”

환호와 동시에 갑자기 주변이 잠잠해진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들이 무심코 비켜서서 무도회장의 중앙이 이미 텅 빈 다음이었다. 그곳에서 은색 깃털 같은 드레스에 보석을 치장한 천사 같은 아가씨가 왕자님의 단 둘이 손을 맞잡고 춤추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이국의 공주님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목과 등을 깊게 파서 곡선을 자랑하는 대신에 맨 피부는 드러나지 않도록 금과 은을 쏟아질 만큼 장식하고, 한 장 한 장 얇은 천을 겹겹이 깃털처럼 재봉한 치마는 발목에 가서는 점점 얇아져 안에 신은 황금 신이 번쩍번쩍하는 게 다 보이도록 만든 옷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의 몸에 그렇게 많은 금장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

회장 여기저기서 탄성과 한숨 소리가 피어올랐다. 음률에 맞추어 두 사람이 춤추는 것은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또 아슬아슬해서 나는 바로 옆의 남자가 군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아가씨의 옷은 겹을 댔어도 좀 얇았다. 아마 가까이에 있는 왕자님이라면 그녀의 젖꼭지까지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당연히 예상했던 대로 우리는 무도회의 주인공은커녕 시선 한번 끌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그날의 히로인이 되지 못했다. 왕자님은 무도회가 끝날 때까지 한 사람하고만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열두 시가 되자 이름도 말하지 않은 채 쏜살같이 달아나 버려서 결국 아무도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끝나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남은 이틀간도 무도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매번 다른 옷으로 몸에 걸친 금과 은의 양은 더욱 늘었고, 대신에 옷감이 차지하는 면적은 비례적으로 줄어가서 빼어난 미모보다도 시선 끌 곳이 많았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녀의 변화가 재미있어서 빠지지 않고 어머니를 졸라 무도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달아나던 그녀가 어설프게 황금신 한 짝을 놓고 달아났을 때는 정말 소름 끼치는 유치함에 배꼽 잡고 웃었다. 근래에 일어난 일들 중에 이 정도로 나를 즐겁게 한 에피소드는 없었다. 살짝 얽히기만 해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금은 덩어리는 흔적도 없이 고스란히 가져가고 그렇게 과격하게 춤을 추어도 발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던 신발 한쪽을 잃어버리고 갔다면 어느 누가 납득할까? 떨어트리고 간 것이 손수건 보다 많이 비싼 황금 신이란 것만 다르지 남자의 관심을 끌고 쫓아와 달라고 꼬리 치는 요부가 쓰는 수법과 다를 바 없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그 부분에서 나에게 낙점을 받았다. 그러나 왕자님께는 적당히 잘 먹혀든 모양이었다. 왕자님은 너무나도 소중하게 그 신을 안아 들었던 것이다. 하긴 젊고 아름답고.... 섹시한 것이 전부일 왕자님의 평가 기준에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이제 곧 귀추가 주목될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 황금 신이 꼭 맞는 여자를 저의 신부로 하겠습니다.”

아, 왕자님의 이 생각 없는 선전포고도 함께 넣어서 말이다.


그 바로 다음날부터 온 나라는 발칵 뒤집혔다. 황금 신을 비단 방석에 받쳐든 하인이 집집마다 방문을 해 발이 꼭 맞는 처녀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옷이 분명히 이국의 것이었는데 국내에서 그녀를 찾는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스러웠지만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꼭 달라붙어 춤추면서 서로에게 어떤 힌트와 암시를 주었을지 알게 무언가? 그리고 내 생각에 왕자님이 이국의 공주님과 능숙하게 말이 통할만큼 학식이 깊을 것 같지도 않았다. 순전히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서 전국을 거의 다 뒤졌음에도 처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리고 기어코 우리 집까지 시종들이 들이닥치게 되었다. 원래 귀족의 딸들부터 신을 신겨 보았지만 우리 집은 맞을 사람이 없어서 어머니가 일찌감치 불필요한 헛수고를 하지 않도록 시종장에게 말해 두었던 것이다. 무도회 내내 어머니는 우리와 같이 있었고, 또 외관상 절대로 우리 일리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집에 시종들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창가에 놓인 탁자에 앉아 자수 색실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수선한 창 밖을 내다보면서 아마도 왕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아내지 못한 거라고 짐작했다. 나라 안의 수 만 명의 처녀들 중에서 그 신발이 맞는 여자가 하나도 없었을 리는 없다. 오히려 여럿 나와서 당혹스러워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게 소리도 없이 궁전으로 불려 가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처녀가 몇 있다는 것을 나는 부엌 뒤 편에서 들었다. 왕자님은 아마 어떤 식으로라도 스스로의 경솔한 발언이 진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언니! 어머니가 내려와서 신을 신어보래!”

집에 없는 것으로 하려 했는데 아마도 시종들이 어머니를 꽤나 귀찮게 다그쳤는지 에린이 2층까지 나를 찾으러 와서 우리 자매는 하는 수 없이 아래층 응접실로 가야 했다. 응접실에는 이미 꽤 많은 구경꾼이 몰려 있었고 황금 신을 받쳐든 그 유명한 시종과, 내가 달가워하지 않는 얼굴도 함께 있었다. 속이 뒤집힐 것처럼 느끼한 왕자님. 그러나 그도 한 달 동안 꽤나 고생했는지 얼굴이 약간 핼쑥해져서 전보다는 나은 인상이었다.

“딸이 셋 있다고 들었는데.. 더 없습니까?”

막 그 앞에 도착한 우리를 보고 기록부를 들고 있던 하인이 물었다. 어머니는 무심코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황급히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 두 아이는 저의 아이고 남편의 아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애는 마음씨가 고와서 집안일을 도와주느라고 차림새가 좀 엉망이랍니다. 부끄러워서 나오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는 나름대로 아주 그럴싸하게 둘러댔다. 그리고 거짓말도 아니었다. 마음씨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집안일을 하느라고 차림이 엉망인 것은 진실이니까. 그러나 시종은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고 우겼고, 결국 낡은 옷을 입은 신데렐라까지 불려 나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행여나 사람들이 집안의 냉기를 눈치챌까 봐 신발 신는 것도 보지 않고 들어가 버리셨다. 나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서운해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 중엔 신발 주인도 없으니까.

“자, 신어보시지요. 아가씨.”

하인이 가져다준 의자에 몸을 묻고 무심결에 발을 내밀다가 나는 갑자기 뒤통수에 번뜩한 불안을 느꼈다. 뭔가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나는 옆에 서 있는 신데렐라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싸늘한 파란 눈이 요기를 띄우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야 나는 내가 잊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신데렐라는 첫날 외에는 단 한 번도 무도회에 데려가 달라고 조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 허영덩어리에 사랑받는 것에 욕심 많은 계집애가!

“저는 발이 큽니다. 이런 신발을 신으면 발이 뭉그러져 버릴 거예요. 제에게는 맞지 않는 신발입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면서 시종에게 말했다.

“그래도 신어 보셔야 합니다. 아가씨.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시종은 계속해서 거절해도 끈질기게 권유했다. 나중에는 왕자까지 나서서 억지로 내 발에 신을 끼워 맞추려 했다. 신데렐라의 입술에는 회심의 미소가 돌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내 신이 아니야! 이게 내 발가락을 먹었어!”

황금신의 길이보다 훨씬 긴 발에도 불구하고 신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신기해하던 시종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얼른 발을 빼게 했다. 그러나 이미 보기 흉하게 잡아뜯긴 내 발은 빨간 살점 틈으로 허연 발가락 마디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고통에 울부짖었다. 너무 아파서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한 생각도 이 기괴한 일에 대한 질문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홀린 것처럼 그 시종이 내 피가 고인 신발을 그대로 에린에게 신기는 것만 보았다. 나는 말리려 했지만 이미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황금 신이 동생의 뒤꿈치를 먹어버린 후였다.

“언니!”

동생의 고통스런 비명에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 발보다 그 애의 상처가 눈에 더욱 아팠다. 나는 발을 끌며 달려가 에린을 끌어안았고 그녀를 진정시켰다. 주변에서는 의사를 불러오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 소란 통속에 너무나도 냉정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신어보겠어요.”

그것은 신데렐라의 목소리였다. 순간 우리는 고통도 잊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피가 흥건한 구두에 발을 밀어 넣었던 것이다.

“호-!”

주변에서 환성이 울렸다. 그녀의 발은 황금 신에 꼭 맞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발을 넣자 울컥 넘쳐난 피만 보고 있었다. 그건 우리, 나와 에린의 피였다.

그다음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에린을 안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던 것 같다. 후에 그녀가 주머니에서 다른 한쪽 신을 꺼내어 신고 왕자님과 함께 성으로 갔다는 소리는 병상에서 들었다. 어머니는 슬픈 목소리로 우리의 발가락은 영원히 재생되지 않을 것이며, 에린과 나는 평생 절름발이로 지내야 한다는 뼈아픈 말을 스스로의 입으로 전하고 계셨다. 에린은 밤새 지칠 때까지 흐느껴 울었지만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지금의 통증보다 앞에 다가올 일들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신데렐라가, 그 마녀의 딸이 우리를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아마 우리가 못살게 군것의 몇 배로 잔혹하게 복수를 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것이 미치도록 무서웠다.

그리고 내 예상보다 빨리 그녀는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눈처럼 하얀 신부의 옷을 입고 피처럼 빨간 입술을 바르고 말이다.

“사랑스러운 언니들, 괜찮으세요? 저는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언니들과 제 행복을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왔답니다. 제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 주시겠어요? 언니들은 너무 좋은 분들이니까 기꺼이 이 결혼을 축복해 주시겠지요?”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번뜩이는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혀끝이 굳었다. 적당히 둘러대려 해도 그녀의 뒤에 늘어선 병사들은 아직 발이 다 낫지도 않은 우리를 억지로 일으켜 치장시켰다. 결국 에린과 나는 다시 신발을 피로 물들이면서 그녀의 들러리를 서야 했다.

신데렐라는 자상하고 상냥한 동생인 척 우리에게 선의를 베풀었지만 그건 너무나도 잘 조율된 복수 극이었다. 그녀는 그간의 일을 호소해서 왕자님의 동정을 얻었다. 거기에 우리를 용서하는 아량까지 베풀어 주변의 덕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의 경멸과 질타를 받으며 그 사악한 마녀를 위해 들러리까지 서야 했다. 나는 그보다 더한 복수는 없을 거라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비록 몸은 아프고 밖에 나가기 두려울 정도로 평판이 험해졌지만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나는 고통을 억누르고 미소 지으려 애쓰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결혼식에 초대된 사람들은 다들 해사한 흰 옷차림이었다. 봄날은 눈 시리게 밝았고 신데렐라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 발은 너무나도 아팠다. 묘하게 씁쓸하고도 가벼운 그런 기분에 나는 울컥 눈물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소름 끼치는 괴성이 나를 덮쳐 들었다.

“까악 깍-!”

“악!”

에린과 나는 눈앞에 덮쳐드는 시커먼 물체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우리의 눈은 생으로 새에게 쪼아 먹혔다.

“아악 흑!”

그 예상치도 못한 사건 뒤로 두 번 다시 우리는 해사한 세상을 볼 수 없게 되 버렸다. 에린은 괴성을 지르고 공포와 고통에 떨다가 결국엔 미쳐 버렸다. 나는 내내 피눈물만을 흘렸다.

나는 진심으로 신데렐라의 복수극이 이것으로 끝나기만을 빈다. 그것이 그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림동화 원전에는 유리구두가 아니라 황금 신이었다. 디즈니나 여타 아동용에는 단순히 유리구두가 언니들의 발에 맞지 않았다지만 그림 동화에서는 언니들은 구두를 맞게 신기 위해 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라내서 결국 신데렐라가 신을 구두는 피가 철철 넘치는 피 구두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두 언니를 좋은 신랑에게 결혼시켰다고 하는데 이 역시 원전에서는 언니들이 신데렐라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다가 양 눈을 새에게 쪼아 먹혔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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