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책사랑' 이라는 독서 동아리에 가입했다. 우리 학교는 교내 동아리 활동이 다양하고 활발하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동아리 모집 시기가 되면 축제를 방불케할 만큼 떠들썩했다. 면접 보는 날은 졸업생 선배님들까지 오셔서 동아리의 전통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가입한 독서 동아리는 아직 졸업생이 없는 신생 동아리였다. 게다가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그리 인기 있는 동아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독후감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관심 있던 활동은 일 년에 한 번 발행하는 독서신문 제작이었다. 실제 신문 규격으로 발행되는 독서신문을 보고 멋지고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름방학에도 학교에 나와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심란했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지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들은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힘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며 기사를 쓰고 사진을 편집했다. 그렇게 완성된 신문을 받아들고서 얼마나 뿌듯해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2학기가 시작되고 각반에 신문이 배부되었을 때 친구들은 신문에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쌓여있는 신문을 보고 있자니 내가 외면당한 것처럼 서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이들이 신문을 찾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강당에서 행사가 있을 때 깔고 앉을 것이 필요한 경우와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대신해 쓸 것이 필요할 때였다. 젖은 채로 쓰레기통에 처박힌 신문을 발견할 때면 비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2학년이 되었고 동아리 회장을 맡게 되었다. 올해도 독서신문을 제작해야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솔직히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을 소중한 방학기간에 학교에 나와서까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하루는 담당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작년엔 의욕이 넘치더니.."
".. 아무도 읽지 않잖아요.."
"읽고 싶은 신문을 만들면 되지. "
"어떻게 해요?"
"글쎄.. 한번 방법을 찾아볼까?"
선생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열정을 가지고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때 신문에 '명사 추천도서'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유명한 분을 섭외해서 인터뷰를 하고 책을 추천받는 코너였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은 학교 교장선생님이었고 두 번째 대상은 우리 지역 시장님이었다. 말 그대로 유명하긴 했지만 아이들은 관심이 없었다.
올해는 누구를 섭외할까 고민하다 여고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우리 학교 학생들이 뽑은 장래희망 1순위 아나운서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시 화제의 프로그램이었던 '도전 골든벨'의 손미나 아나운서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스포츠 중계석을 진행하는 신영일 아나운서를 섭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계획은 그럴싸했지만 문제는 '어떻게' 섭외하느냐는 것이다.
일단 무작정 홈페이지에 나온 kbs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나를 소개하고 아나운서님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일개 고등학생과 전화 연결을 시켜줄 리가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로 끝내기엔 아쉬워서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선생님, 아나운서님과 인터뷰 요청은커녕, 연락조차 닿지가 않아요. "
"안되면 되게 하라."
"네?"
"안되면 되게 하라."
선생님은 공자님 같은 말씀만을 빈복할 뿐이었다.
도와주지 않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지만 오기가 생겨서 이번에는 아나운서께 직접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읽지 않음'이라는 문구만 확인될 뿐이었다.
꿈이 너무 야무졌던 것 같다.
"선생님 아무래도 아나운서 인터뷰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안되면 되게 하라."
이쯤 되니 누굴 놀리나 싶어 화가 났다. 방학은 점점 다가오는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 동아리 회장까지 맡아놓고 후배들 앞에서 면이 서지 않았다.
결국 방송국으로 손편지를 매일같이 써서 보내기로 했다. 나와 우리 동아리 친구들을 소개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신문을 읽지 않아서 속상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모니터 한 내용을 보내기도 했다. 짝사랑하는 대상에게 러브레터를 쓰둣 답장도 없는 편지를 매일같이 썼다. 그리고 우리가 작년에 만든 신문도 소포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000학생인가요?"
"그런데요. 누구세요?"
"저 신영일 아나운서라고 합니다. "
".... 누구라고요??"
순간 누가 장난 전화를 하는 줄 알았다.
"저한테 편지 보낸 학생 맞죠?"
헉. 진짜 신영일 아나운서였다.
그동안 보내준 편지와 신문 잘 읽었다고 바빠서 연락이 늦었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하겠다며 kbs 방송국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수화기를 들고서도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며 한동안 얼떨떨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우리는 kbs 방송국에 가서 손미나 아나운서와 신영일 아나운서를 만날 수가 있었다. 함께 방송국을 구경한 후 식사도 하고 커피숍에 가서 인터뷰를 했다.
그때 신영일 아나운서께서 질문을 미리 메일로 보내주면 좀 더 성의 있는 답변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동받았었다. 실제로 만나서도 어떻게 아나운서가 되었는지,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 아나운서를 꿈꾸는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까지.. 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헤어지기 전에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정말 열심히 땀 흘려가며 신문을 제작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따끈따끈한 신문이 각반에 배달되었다. 우리 동아리가 kbs 방송국에 가서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했다는 소문에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신문을 구경하러 몰려왔다.
그 밖에도 야심 차게 준비한 코너들이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해 줘서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다음 해에 우리 동아리는 지원자가 넘쳐났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땐 선생님이 정말 원망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선생님은 몇 번 시도해 보지 않고 금방 포기하지 않도록 가르침을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 자신감으로 나는 하고자 하는 일이 잘 안돼도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보려고 하는 편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남편은 내게 '무리하지 마라'라며 걱정 섞인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늘 최선을 다한 후라 결과에는 후회가 없다. 요즘은 동아리 활동이나 학교 행사 참여 등을 귀찮아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도전과 경험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설득한다.
오늘은 예전 동아리 담당 선생님을 떠올리며 공자님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고 싶다.
"안되면 되게 하라~ 그 노력과 경험이 너희를 성장하게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