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고 보여주지 않았다
예고도 없이 문 앞에 당도한 매거진 <B>.
이번 달은 필름 카메라의 전설 라이카 Leica다. 반가웠다.
워낙 고가의 카메라 장비로 사진에 큰 관심이 없으면 접하기 힘든 브랜드지만,
나만의 카메라라곤 스마트폰 밖에 없는 내가 이번 호 라이카가 반갑게 느껴진 건
라이카에 찍혔던 추억과 그런 나를 찍어준 N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N형은 작은 회사에서 같이 일을 할 때 만난 사람이다.
그 당시 난 컴컴한 고시원 생활과 재정난에 지쳐 심적으로 유약한 상태였고, 형님은 가끔 나의 투정에
'너는 돈을 못 벌겠다. 너무 감상적이잖아.'라고 핀잔을 주었다.
반박할 수 없는 지적에 어쩔 수 없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N형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은 일이 생겼다. N형이 백만 원에 가까운 거금의 카메라를 산 것이다. 그것도 중고로. 그것도 필름 카메라로.
그게 라이카와의 첫 만남이었다.
주변의 돈 아깝다는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카메라를 매만지며 해맑게 웃던 N형의 미소가 떠오른다.
내 기억에 형은 처음 가는 뉴욕 여행을 위해 큰 맘먹고 장만했던 걸로 기억한다.
온전한 추억을 담기에 라이카 만한 게 없다고 여겨서였을까. 여행 후 수많은 필름통이 진열된 N형의 책상이 떠오른다.
그걸 보며 당시 난 필름의 인화비를 걱정했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면 형은 사진을 찍고 나서 피사체에게 절대로 주지 않았다.
가장 그 사람답게 나온 사진 (형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의 초상'을 찍은 뒤 10년 후에 편지로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이 일하는 모두가 N형의 모델이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필름이라 더더욱.
야근을 하던 어느 날, 살면서 가장 슬픈 순간은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깨닫는 때라고 참담하게 말하던 형.
형은 밤을 새웠지만 좋은 시놉시스를 내놓지 못했고 잠도 못 들고 괴로워했다.
자신의 한계가 견딜 수 없었는지 N형은 독일로 유학을 택했고, 공동대표였던 회사를 나오고야 말았다.
내가 그만 둔 이후의 일이라 얼굴도 뵙지 못해 아쉬워하던 어느 날.
N형은 SNS상으로 나에게 사진 한 장을 주었다.
깎아지르듯 주택이 즐비한 흑석동 특유의 경치를 배경으로 나를 찍어준 한 장이었다.
퍽퍽한 서울 살이에 지친 시골 놈이 가장 서울스러운 곳에서 해맑게 웃으며 서있다.
이런 사진 찍어놓고서 나에게 감상적인 인간이라며 지적해도 되는 건가.
자조 섞인 농담이었단 걸 뒤늦게 깨달았다.
오래 전이지만 듣기론, 형님은 독일 유학을 잘 마치고 좋은 회사에서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돈을 못 번다는 얘기는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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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