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 앨런

by 따끄

하나의 장식을 다른 요소와 어우러지게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은 장식이 맞을 때까지, 조금 키우고 확인하고 조금 키우고 확인하는 반복. 시간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왜 이걸 여러번 키우고 앉아있어, 크게 확 늘렸을 때의 모습을 보고 중간 지점을 감잡으면 되잖아?'라고 스스로를 질타했다.
어떤 일이든 작은 것부터 키워와 조심스레 답을 맞춰온 내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넘쳐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흘러 더러워질 바닥을 걱정하곤 했다. 한계 너머를 과장하고 그곳에 도달하는 속도를 늦추었다. 사자이기를 원했지만 아직도 낙타처럼 사막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다. 어떤 것에도 인내하지 않고 발산하는 이를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어떤 정신과 습관이기에 저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걸까.
목구멍에서 탁 막혀 나오지 않았던 말들이 앙금이 되어 쌓이다보면 한발짝 뎌디기도 힘들어진다. 그럴때면 차라리 나는 잠을 자고 싶다, 생각을 한다. 이미 중력에 떨어지는 몸이지만, 이왕이면 공포로 몸서리치며 깨어나는 꿈 속에서 추락하는 편이 낫다. 잠시나마 살아있음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니.
슬프면 눈물을 조용히 흘릴 뿐 오열하지 못했고, 기쁘면 빙그시 웃을 뿐 춤추지 못했다. 화가 나면 이를 악물 뿐 주먹을 뻗지 못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도 잡지 않았다.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두려움은 가진 자의 것이라지만 스스로 가진 것이 없다고 여기는데도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을 놓지 못했는가. 그것을 놓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나의 밑바닥을 보게될까. 만약 그곳이 나의 임계점을 지나치고도 한참을 지나쳐 돌이킬 수 없는 너머라면, 지나온 곳 중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기억하고 찾아갈 수 있을까.
두 발로 딛고 일어나 아이처럼 울 수 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카진차키스 역자 이윤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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